당신은 세찬 겨울바람결에도 하얀 밤을 지새우는 문풍지였습니다
영혼의 목소리로 늘 다가오시는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당신은 세찬 겨울바람결에도 하얀 밤을 지새우는 문풍지였습니다
당신은 발 밑 격랑의 물결을 보고도
두려움에 떨지 않고 먼 산을 바라보며
외나무다리의 외로움과 고독을 벗 삼아
지나가는 바람에도 의지하지 않고
세월의 가르침을 전해주려는
물가의 흔들리는 갈대였습니다
당신은 끝없이 밀려오는 폭우 소리에 묻혀
침묵의 향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켜버린 마음을 휘어잡고
기약 없이 기다리는 긴장감 사이에서
애간장을 녹이며 아들의 내일을 걱정하며
몸을 던지는 하얀 폭포였습니다
당신은 내리막길에서도 한 숨 쉬지 않고
절망의 밑바닥에서도 버티는 횡격막의 발작이며
정처 없어 떠돌다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 한 점이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며
삶의 한 순간이라도 붙잡아 의미를 찾아주기 위해
뇌까리는 알 수 없는 세월의 무게였습니다
당신은 모래알이 품은 그리움을 긁어내
새벽 먼동의 기적이 품은 비밀을 밝혀내며
처절함과 처연함 사이에서
처참함으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한 문장이라도 남겨주려던
우리 시대의 언어채굴 광부였습니다.
당신은 삭풍과 파도가 괴롭히는 방파제 뒤에서
세월의 주름을 타고 날아온 바람의 엽서에
힘겨운 한숨소리 그리움에 묻혀 담아내다
낯선 생각을 품고 방황하다 만난 느낌표에서
아들이 살아가는 이유를 물어보던
우여곡절의 물음표였습니다.
당신은 석양이 품은 하품을 온종일 해석해서
관념으로 넘어진 벼의 아픔을 이해하려다
한파에 땅에 동사한 낙엽의 사연을 생각하며
창문을 두드려 함께 이겨낸 서글픔을 날려버리려고
숱한 시절을 침묵의 아우성으로 살아가며
소리 없이 휘두르는 허공의 펀치였습니다.
당신은 꺼져가는 불길 위에서
정적을 깨며 달려오는 한 밤의 공허가
뜬눈으로 지새운 어젯밤의 그리움을 만나
절망의 나락에서도 희망의 새벽을 잉태하려는
잊을 수 없는 한 많은 마주침이었습니다.
당신은 적막을 뚫고 달리는
비애 한 페이지의 아픈 추억이
반딧불에 부딪혀 주변을 서성이다
잠복근무 중이던 냇물위의 별들을 만나
안간힘으로 버티며 눈물을 희석시키는
걷잡을 수 없는 새벽의 먹구름이었습니다.
당신은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재치기가
한 많은 세월의 숨결을 움켜잡고
새벽 찬이슬의 서슬퍼런 다짐과 느닷없이 만나
오도가도 못하는 딜레마에서도
한 숨만 쉬지 않고 고집스러운 의미를 찾아 나서는
담대한 희망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당신은 달빛에 가려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의 그림자가
느긋하게 기다리는 새벽의 깨우침을 만나
애처러운 눈길에 한없이 떨기만 하다
찰나적 다정함만이라도 간직하려고
하얀 밤을 지새우는 문풍지였습니다.
당신은 달력속에 이력을 담아내려고
버티기 힘겨운 자기반경을 그리며
시간의 족적을 따라가는 그리움 악보에
춤추는 곡선의 질문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갈피를 잡아보려 애간장을 녹이는 풍향계였습니다.
당신은 외딴집 양철 지붕 위로 쏟아지는 소낙비가
숨죽이며 기다리던 매미의 울음소리에 잦아들다
어슬렁거리다 삐딱하게 다가오는 게으름을 안아주며
어디론가 흩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그리움을 품고
언제 다가설지 모를 아들을
뜬구름 속에서도 기다리던 새벽안개였습니다.
당신은 나비의 급습으로 꽃가루를 빼앗기는 순간
느닷없는 공격으로 쩔쩔매는 난처함이
거처를 찾아 헤맬 때 한심한 상투성을 거부하고
통렬한 신념의 화살을 과녁으로 옮겨주던 비바람이었습니다.
당신은 꺼져가는 불꽃 사이로 내쉬는
불안한 마지막 숨이 한 생애를 거두며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순간
여전히 피어오르려는 불씨의 몸부림으로
세상과의 서글픈 결별을 선언하고
회색빛 삶의 허공을 걸어가는 고독한 방랑객이었습니다.
당신은 새벽의 절망이 어둠을 밀어내고
적막한 고독을 붙잡으려 아등바등하는 순간
갈대에 걸린 아스라한 이슬방울을 훔쳐보며
철지난 눈길로 아들의 고달픔을 알아보려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당신은 기지개를 켜려던 질경이의 시치미에
마음을 휘젓는 시금석 같은 시 한구절로
시나브로 맞장구쳐보려는 불판 위의 삼겹살이며
장대비가 허공을 뚫고 궤적을 만들어도
삶의 얼룩을 앓음다운 무늬로 직조하는
번잡한 골목길의 정처없이 흔들리는 현수막었습니다.
당신은 서릿발 강추위에도 내장은 감추고
살아온 생의 모든 순간을 벼랑길에 몰아세워
단풍잎에 새겨진 흐릿한 그림으로 추억하며
찢어진 화폭에도 울지 않고
아들이 바라보는 먼하늘을 직시하는
아픔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눈시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