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구석이 있다

내가 믿는 구석이 있다


방구석에 몰려도

마음 한쪽에 빈구석이 생겨도

못난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도

나는 내가 믿는 구석이 있다


막막한 밑바닥을 기면서도 참고 견디는 울분,

정상을 향하면서 그리지 않는 고단한 몽상,

언덕을 기어오르는 헐떡임과 힘겨운 숨 가쁨,

눈 무게에 반쯤 갈라진 처연한 소나무 가지


새벽에나 불이 꺼지는 가로등,

혼탁한 세상을 견디는 가로수,

가로막고 가로채도 가로지르며

자기 본분을 다하며

늘 그 자리를 지키는 관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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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위해

사표를 던진 은행원,

그리워하는 그림 그리려고

혈혈단신 섬으로 들어간 가장,

바람 불어 소식 없어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자기 몸을 불태우며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심지,

어둠을 삼키고 추위를 아로새겨

수직으로 매달린 고드름의 위기,

차창가에 매달리다 속도에 밀려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의 안간힘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달려들어 해내다 맞이하는

어둠이 삼키는 저녁,

앎보다 삶이 격렬하게

먼저 말을 거는 묵직한 깨달음의 찬가


불현듯 몸으로 들이닥치는 무정한 소낙비,

먹구름이 품은 날 밝은 오후,

뿌리칠 수 없는 바람의 꽃,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작은 경이(驚異)


바벨 무게에 짓눌려 박힌

손바닥의 굳은살,

삶의 무게를 견디며 생긴

발바닥 굳은살이 보여주는 침묵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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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를 읽다 만난 한 문장,

소설에 빠졌다가 마주친 깨우침의 서사,

주인공이 연륜으로 던지는 한 마디,

심장에 꽂히며 뛰는 의미심장한 심장박동


안간힘을 쓰며 힘쓰는 근육들,

피곤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 움직임들,

견디다 못해 터지는 근육이 흘리는 눈물,

땀이 보여주는 노고의 흔적들


전율하는 감동으로 책 속에 파묻히며

힘주어 그은 밑줄 친 문장의 얼룩,

형형색색 붙여놓은 포스트잇 견출지,

책상에서 상주하는 책들의 항변


침묵이 말해주고

고독이 시끄러운 한 공간에서

시간을 붙잡아 걸어둔 사이

두드리는 키보드가 남긴 한 편의 글


비바람과 천둥번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는 나목,

새 봄을 맞이하는

슬픈 나무의 희망찬가


내가 믿는 구석이 있다3.jpg


나는 머리로 들어간

심장의 차가운 계산은 믿지 않아도

심장으로 들어간

머리의 뜨거운 심정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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