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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모름지기’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의 글쓰기 10 계명

글쓰기는 모름지기!: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의 글쓰기 10 계명     


글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만큼 다양한 전략과 방법, 자기만의 방식과 스타일이 있다.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의 삶을 담아내는 애쓰기이기 때문이다. 힘들 때 저마다 애를 써서 벗어나는 방법이 다양하듯, 글쓰기도 누구의 방법이 옳고 그르다고 하나의 잣대로 말할 수 없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쓰고 싶을 때 쓰면 된다. 하지만 적어도 남에게 읽히는 글, 남과 공유하고 싶은 글, 타인의 공감을 끌어내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나는 대로 그냥 토해내면 안 된다.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내되 몇 가지 염두에 둘 글쓰기 원칙이나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그래서 ‘모름지기’다. 글쓰기가 ‘모름지기’인 이유는 글쓰기는 ‘이거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글쓰기는 ‘이래야만 한다’는 나의 주관적 신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적어도 이래야 한다는 10가지 원칙을 만들어보았다. 예를 들면 모름지기 글쓰기는 일상에서 느낀 점을 그냥 늘어놓는 게 아니라 하나의 주제로 꿰뚫어서 엮어야 한다는 일이관지(一以貫之) 원칙이다. 글쓰기는 ‘모름지기’ ‘이래야 옳다’라는 주장은 작가의 주관적 신념의 산물이다. 또 다른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글쓰기의 ‘모름지기’가 있을 것이다. 여기 제시하는 글쓰기의 ‘모름지기’는 한 사람의 작가가 글을 쓰면서 체험적으로 깨달은 개인적인 교훈이다.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모름지기’ 글쓰기는 ‘이래야 된다’는 10가지 원칙을 정리해본다.  

   


①일(1)이관지(一以貫之), 글쓰기의 구조: 다양한 생각도 하나의 주제로 꿰어라!

②이(2)심전심(以心傳心), 글쓰기의 마음: 가슴으로 느낀 점을 마음으로 써라!

③삼(3)라만상(森羅萬象), 글쓰기의 재료: 가까운 곳에서 글쓰기 재료를 구하라!

④사(4)려분별(思慮分別), 글쓰기의 효과: 사건과 사고에서 배우는 교훈을 써라!

⑤오(5)매불망(寤寐不忘), 글쓰기의 시작: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 써라!

⑥육(6)화원칙(肉化原則), 글쓰기의 주체: 육체적으로 깨달은 교훈을 몸으로 써라!

⑦칠(7)전팔기(七顚八起), 글쓰기의 자세: 포기하지 말고 이리저리 시도해봐라!

⑧팔(8)방문인(八方文人) 글쓰기의 단련: 연습하고 연습해서 글쓰기 근육을 길러라!

⑨구(9)구절절(句句節節) 글쓰기의 방식: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세하게 써라!

⑩십(10)인십색(十人十色) 글쓰기의 칼라: 내가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라!     


1일이관지(一以貫之)로 다양한 주제를 하나의 주제로 꿰어서 쓰면

2이심전심(以心傳心) 통하고,

3삼라만상(森羅萬象)을 글쓰기의 텃밭으로 생각하며 쓰면

4사려분별(思慮分別)하는 힘이 생긴다.

5오매불망(寤寐不忘) 생각만 하지 말고

6육화원칙(肉化原則)에 따라 몸으로 체험한 깨달음을

7칠전팔기(七顚八起) 각오로 글을 쓰면 누구나 글쓰기의 

8팔방문인(八方文人)처럼 글을 잘 쓸 수 있다.     

그렇게 쓴 글에는 

9구구절절(句句節節) 아름답고

저마다의 칼라와 스타일이 드러나는 

10십인십색(十人十色)의 개성이 담긴다.  


            

(1)기 쓰듯 일상에서 보고 느낀 점을 매일 쓰되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가져라!

글쓰기는 하나의 주제로 엮어내기다.

(1)이관지(一以貫之), 글쓰기의 구조다양한 생각도 하나의 주제로 꿰어라!     


글쓰기는 갑자기와 거리가 멀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글쓰기는 익숙한 일상을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관찰하기 시작할 때 느끼는 다른 점을 재료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매일 꾸준히 쓰다 보면 쓰임이 달라진다. 글쓰기는 모름지기 일상에서 건져 올린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로 엮어내는 과정이다. 비록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이 다양하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 주제로 엮어내지 않으면 상상은 공상이나 망상, 몽상이나 환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가게 내버려두면 글은 하나의 주제로 엮이지 않는다. 글을 관통하는 핵심이나 중심이 없으면 글을 읽는 사람도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주제나 이슈를 다양한 사례나 에피소드로 엮어내면서 독자에게 일관된 이지미를 주려면 메시지도 한 가지 주제를 공략해야 한다. 처음에는 단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도 피상적으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말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파고들어라. 일상에서 시작한 상상이 한 가지 주제를 갖고 파고들기 시작하면 상상은 이제 상상력으로 변신하면서 일상에서 비상하는 이상적인 담론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상적 삶의 주제지만 강력한 주장으로 바뀔 수 있는 이유는 문제의식이 일관되게 관통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로 깊이 파고들어 구체적인 현상에 논리적 설명력을 추가해서 자기만의 신념으로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2)름을 불러주면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써라글쓰기는 이름 부르기다.

(2)심전심(以心傳心), 글쓰기의 마음가슴으로 느낀 점을 마음으로 써라!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면 감동한다. 우선 자신의 이름을 교수님이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급적 학기 초가 다 지나가기 전에 새로 만나는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해서 불러주려고 노력한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은 그 사람을 대신 지칭한다. 이름 속에는 자기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물도 마찬가지다. 저마다의 특징과 개성을 대변하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 이름을 부르고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질문을 던지면 늘 보던 사물도 나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예를 들면 의자와 책상은 언제부터 의자와 책상이었는지, 의자와 책상이 붙어 있을 때와 의자만 혼자 있을 때, 의자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하다. 사물의 이름을 부르고 관심과 애정으로 관찰하는 과정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생각으로 글을 쓰려는 마음가짐의 출발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육중한 몸무게를 다 받치고 오랫동안 짓눌려 있는 의자는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는 이심전심의 마음은 의자에 관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잡초들도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다.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잡초지, 잡초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을 잡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잡초일 수 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출발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다른 생명체든 저마다의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존재한다.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이름을 불러주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라. 자연에도 그냥 거기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다. 모두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살아가는 방식과 원리가 숨어 있다. 그것을 캐내서 마음으로 드러내는 글쓰기가 바로 이심전심 공감대를 형성한다.     


(3)(三多), 즉 많이 듣고(多聞), 많이 읽으며(多讀), 많이 생각(多商量)하며 써라

글쓰기의 재료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다.

(3)라만상(森羅萬象), 글쓰기의 재료가까운 곳에서 글쓰기 재료를 구하라!     


영화, 〈오거스트 러시〉에 보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다 음악이라는 말이 나온다. 존 케이지도 ‘4분 33초’라는 악보를 작곡하면서 침묵도 음악이고 자동차 경적도 음악이며 바람결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낙엽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배움의 천국이다. 삼라만상은 모두 글쓰기의 텃밭이다. 텃밭에서 무엇을 심어서 가꿀지는 그 밭은 가꾸는 사람 몫이다.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재료는 주변에 널려 있다. 남과 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삼라만상은 글감의 온상이다. 중국의 구양수가 말한 삼다(三多), 즉 많이 듣고(多聞), 많이 읽으며(多讀) 많이 생각(多商量)하는 것은 꼭 책을 매개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소리가 잘 들어보고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즉 읽는 것은 책만 읽는 게 아니다. 세상도 듣기와 읽기와 생각의 대상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나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들어보고 세상의 변화를 읽어가면서 그것이 나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바로 다상량이다. 글쓰기의 재료는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들어보고 읽어내서 생각할 때 비로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늘 보고 듣고 생각해왔지만 글쓰기의 원동력은 이전과 다르게 보고 들으며 생각하는 가운데 시작된다. 틀에 박힌 글이 나오는 이유는 틀에 박힌 방식대로 세상을 대충 보고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된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타성 때문이다. 어제와 똑같이 오늘도 만나는 삼라만상이지만 오늘 만나는 삼라만상은 분명 다르게 다가온다. 글쓰기의 텃밭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4)건과 사고에서 배우는 교훈을 써라

글쓰기는 사려분별(思慮分別)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4)려분별(思慮分別)글쓰기의 효과하나의 생각을 다른 생각과 연결해서 써라!     


글쓰기는 내가 살아가면서 겪는 사건과 사고를 편집하는 과정이다. 모든 글쓰기는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과거의 기억을 지금 여기서 편집하는 과정이다. 한 사람의 삶은 사건과 사고의 역사적 합작품이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겪은 사건과 사고와 그것을 통해 깨달은 교훈을 들어봐야 한다. 사건은 내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일이고 사고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 일이다. 사건에는 사연이 숨어 있고 사고(事故)에는 그걸 당하면서 내가 생각한 사고(思考)의 흔적이 담겨 있다. 즉 사건을 일으켜야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의 의도와 의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애틋한 사연을 감지할 수 있고 사고를 당해봐야 기존의 사고가 바뀌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글쓰기는 바로 이런 사건과 사고를 반추해서 써나가는 역사적 추체험과정이다. 백지를 놓고 무슨 글을 쓸지 아무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써지지 않는다. 우선 최근에 내가 경험한 사건이나 사고를 기억해서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왜 일어났는지를 써보자. 사건을 통해서 사연을 배울 수 있고 사고를 통해서 내 사고가 바뀐 점이 무엇인지를 글로 쓰다 보면 사건의 진위여부를 가늠하고 사고를 일으킨 원인과 그 결과를 구분할 수 있는 사려분별력이 생긴다. “개념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창에 서린 성에를 닦아 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흐릿하고 모호했던 개념이 글을 쓰면서 서서히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p.47).” 윌리엄 진서의 《공부가 되는 글쓰기》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이어서 “글쓰기는 사고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조직하는 행위다. 글쓰기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접근해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다(p.47).”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기 전에는 다양한 딜레마 상황에서 내가 결정했던 사건과 사고 관련 판단과 결정이 옮고 그른지를 쉽게 생각해내기 어렵다. 생각과 글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예를 들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글은 생각한 바를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가운데 생각의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5)랫동안 생각만 하지 말고 오늘부터 써라

글쓰기는 오매불망(寤寐不忘)으로 시작한다.

(5)매불망(寤寐不忘), 글쓰기의 시작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 써라!     

글쓰기의 시작은 머리보다 가슴에서 비롯된다. "생각하지 말게. 생각은 나중에 하는 거야. 초고(first draft)는 가슴으로 쓰고, 재고(rewriting)는 머리로 쓰는 거지. 글쓰기의 첫 번째 열쇠는 그냥 쓰는 것이지. 생각하는 게 아니야.“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Finding Forester)에 나오는 대사다. 생각이 있어야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생각이 떠오른다. 한 단어를 생각해내서 문장에 집어넣으면 그 단어는 다른 단어를 물고 나온다. 그렇게 한 문장이 완성되면 그 문장의 단전이나 한계를 덮어 씌우기 위해 다음 문장이 이어져 나온다. “방법을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쓰고 싶어 하면 손이 움직인다. 대상이, 상황이, 문제가 길을 알려준다. 가난한 어머니가 별 재료 없이도 어떻게든 음식상을 차려 내듯 글쓰기란 백지 위에 펜으로 어떻게든 뭘 적어 내는 것이다. ‘어떻게든’은 눈물겨운 것이다. 방법은 실행 속에 있다(197쪽).“  이영광의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단어가 다른 단어를 물고 나오고 문장이 다음 문장을 끌고 나오면서 글쓰기를 이어져나간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생각을 가다듬은 다음 글을 쓰려고 하지 말자. 일단 어렴풋하게 쓰려는 글의 주제가 잡히면 일단 아무렇게나 시작하자. 첫 한 줄을 쓰면 그다음 줄이 써지고, 그 줄 사이에서 다른 생각이 떠올라 또 다른 한 줄을 쓴다. 이렇게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서 쓰다 보면 어느덧 목표한 양의 글을 쓰거나 훨씬 넘어서 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무엇을 쓸 것인지 막막했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면 쓴 글은 쓰임이 생기고 그 쓰임이 다른 글의 쓰임을 불러오면서 글쓰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나간다. 일단 써라. 그러면 쓴 글은 쓰임이 생긴다. 글쓰기가 발상이 아니라 연상인 이유다.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발상이라면 있는 것을 엮어서 새롭게 생각해내는 능력은 연상이다. 글쓰기가 연상이 이유는 삼다(三多)를 통해 많이 들어보고 읽어보며 생각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서 엮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6)체적으로 느낀 교훈을 몸으로 써라

글쓰기는 육화원칙(肉化原則 )을 따른다.

(6)화원칙(肉化原則), 글쓰기의 주체육체적으로 부딪힌 경험을 글로 녹여내라!     


경험은 그냥 당신에게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나 사고가 아니다. 진정한 체험은 당신에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해석하는 가운데 일어난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사건이나 사고를 당했지만 그것이 내 삶에 던져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반추해서 재해석하지 않는 이상 내가 경험한 것은 한 가지 추억으로 남는다. 육화원칙은 육하원칙을 참고로 만든 용어다. 몸으로 체험한 추억을 글쓰기의 재료로 활용하는 원칙이다. 윌리엄 워즈워드는 《서곡》에서 시간의 점(Spots of Time)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시간의 점이란 내 몸에 각인된 직간접적인 경험의 총체를 지칭한다. 특히 직접 경험을 하면서 내 몸에 각인된 얼룩과 무늬는 다른 점과 연결되어 당사자만 원한다면 무한대로 연결되면서 점은 새로운 터인 포인트나 변신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억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고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구성요소다. 기억의 폭이 좁을수록 미래를 폭넓고 독창적으로 구상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기억을 먹여 살리는 방법은 몸을 먹여 살리는 방법만큼 중요하다. 개인의 경험은 부족한 식단이지만 남들에게 습득한, 사실상 살아 있거나 죽은 모든 인류에게서 습득한 간접 기억으로 보완할 수 있다. 기억이 빈약하면 이전에 가본 곳 말고는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상상할 수 없다(pp.174-5).” 시어도어 젤딘의 《인생의 발견》에 나오는 말이다. 과거에 몸을 움직여 체험해본 것이 별로 없으면 과거의 기억만 부실해지는 게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상상력도 고갈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몸으로 기억할 수 있는 과거의 추억이 많은 사람이다. “그 사람의 사상은 그가 주장하는 논리 이전에 그 사람의 연상 세계, 그 사람의 가슴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 사람의 사상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연상 세계를 그 단어와 함께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봐요(p.65).” 신영복 교수님의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에 나오는 말이다. 단어와 관련된 체험이 다양하게 연상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체험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래서 “경험은 글을 잘 쓰는 모든 이들의 안주인”이라는 명언을 남기지 않았을까.      


(7)흑 같은 어둠 속을 헤쳐 나온 고난극복기를 써라

글쓰기는 칠전팔기(七顚八起).

(7)전팔기(七顚八起), 글쓰기의 자세포기하지 말고 이리저리 시도해봐라!     


모든 풍경은 곤경이 낳은 자식이다. 당시에는 견딜 수 없이 힘든 곤경이었지만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풍경이다. 곤경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난국이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한 인간이 사투를 벌이는 고난 극복과정이다. 글이 감동적으로 다가가려면 나의 어둔 과거를 드러내서 빛을 쪼여야 한다. 절망이 뒤안길에는 이미 희망의 빛이 숨어 있고 역경을 뒤집으면 경력이 된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야 얻음의 빛을 만날 수 있고 절박한 심정으로 밑바닥을 기어봐야 정상에 올라 느끼는 순간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내 유년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되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우리들 운명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을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칼자국과 균열은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히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 살아 있으며 계속 피 흘린다(26쪽).”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내리막길로 한 없이 내려가면서 실패하고 좌절하며 걸림돌에 넘어진 체험 덕분에 오르막길에 올라서면서 디딤돌을 도움닫기로 성공할 수 있는 기본기를 배웠던 교훈은 더없이 소중한 글감이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거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조금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176쪽).”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나오는 깨달음의 메시지다. 시행착오가 판단 착오를 줄여준다. 과거의 아픈 경험을 덮어두지 말고 그것을 극복하는 여정에서 몸으로 체득한 교훈을 가감삭제 없이 드러내는 글을 써라. 한두 번 시도해서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붙잡고 늘어지면 지난 시절에 쌓인 감정의 골에서 서글픔과 서러움의 물결이 파동을 칠 것이다. 그것을 잡아채서 솟구치는 감정의 파고를 따라 단어와 문장으로 정리하는 글쓰기는 때가 되면 의미 있는 쓰임을 받을 것이다.   

  


(8) 근육을 키우듯 글쓰기 근육을 키워라

글쓰기도 근육을 키우면 팔방문인(八方文人)이 될 수 있다.

(8)방문인(八方文人글쓰기의 단련연습하고 연습해서 글쓰기 근육을 길러라!     


근육은 앉아서 생각해서는 절대로 키울 수 없다. 근육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근육이 힘들 정도의 무게를 들고 반복해서 운동을 하며 땀을 흘려야 한다. 근육은 요령을 생기지 않는다. 오로지 근육이 힘든 만큼 근육에 힘이 생긴다. 근육에 힘을 가해서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가 아물면서 생기는 게 근육이다. 근육은 지속적으로 운동을 반복해야 생긴다. 하루 이틀 운동하다가 조금 쉬면 도루묵이다. 살을 빼는 것은 어느 정도 결심을 하고 노력하면 빠지지만 없었던 근육을 만드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일정기간 반복하는 고통스러운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은 생기지 않다. 어쩌다 힘들게 해서 조금 생긴 근육도 운동을 계속하지 않으면 다시 원상 복귀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는 한두 가지 방법을 알면 그대로 글이 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은 매일 쓸 때 쓸 모가 생기고 쓰임이 달라진다. 쓰지 않으면 쓰러지지만 쓰면 쓰임이 달라진다. 글쓰기에 관한 어떤 좋은 이론이나 방법도 글을 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도 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좋은 방법일 뿐, 글 쓰는 실제에 적용되지 않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방면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사람이나 여러 방면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을 팔방미인(八方美人)이라고 한다. 글쓰기의 팔방미인을 팔방문인(八方文人)이라고 조어해봤다. 팔방문인은 어떤 분야가 주어져도 자기 방식으로 글을 써내는 작가를 말한다. 글쓰기 내공을 연습을 통해 연마한 덕분에 주제에 관계없이 해당 분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단 지극히 전문적인 분야를 제외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글을 쓰는 연습을 한 결과 글쓰기 근육이 생겨서 웬만한 주제가 주어져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써낸다.     


(9)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글을 써라글쓰기는 구구절절(句句節節)이다.

(9)구절절(句句節節글쓰기의 방식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세하게 써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는 세부묘사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화가 나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화가 나게 만드는지를 구체적으로 기술해주라는 말이다. 그냥 ‘화가 난다’는 말보다 독자가 ‘화가 날 수밖에 없구나’라고 인정하게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라는 이야기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런 상황을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라고 이야기한다. 작가가 뭔가에 대해 분노를 느꼈으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분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라는 말이다. 작가의 분노가 독자의 분노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분노라는 말을 직접 쓰기보다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독자는 분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이 퍽 맑다”는 것과 “어찌 맑은 지 돌 틈에 엎드린 고기들의 숨 쉬는 것까지 보인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지식채널 e의 ‘처음 글을 쓰는 이들을 위하여’에 나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라는 글쓰기 원칙은 가급적 추상명사를 쓰지 말고 일상적으로 쓰는 쉬운 단어로 당시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보여주듯 시각화시켜보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사랑을 베풀었다는 추상적인 표현보다 어떤 사랑을 베풀었는지, 구체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보여준 것이 사랑인지를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이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 나는 사랑이 더 이상 추상명사가 아니라 일상에서 보여주는 작은 베풂이 진짜 사랑임을 느낀 적이 있다. 6박 7일 동안 250Km에 도전하는 사막 마라톤에서 낮에는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계속된다. 금방이라도 타들어갈 듯 광활한 사막 위에 내리쬐는 태양빛은 용광로에서 솟아나는 열기를 능가할 정도다. 그 와중에 본인도 힘들고 갈증이 심할 텐데 옆에서 뛰는 나를 위해 수시로 물을 뿌려주면서 열기를 식혀주는 한 친구의 마음 깊은 행동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은 거창한 추상명사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줌으로써 더불어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행동이다.    

   


(10)년 공부하듯 여유롭게 나를 드러내는 글을 써라

글쓰기는 십인십색(十人十色)이다.

(10)인십색(十人十色글쓰기의 칼라내가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라!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기법과 기교의 문제가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담아내는 애쓰기다. 삶을 글에 담아내는 글쓰기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는지를 기록하는 투쟁기다. 글은 기법과 기교 이전에 기본기를 닦아야 나온다. 자신의 체험을 녹여내지 않고서 독자를 감동시키는 다른 글쓰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체험적 상상력이라야 독자의 상상력과 맞닿을 수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의 깊이와 넓이만큼, 내가 읽은 책만큼 쓸 수 있다. 내 삶을 능가하는 글은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 글은 한 사람의 체험과 개념의 합작품이다. “내가 쓴 글은 내 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확히 나의 글이다. 왜냐하면 내 글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p.123).” 이성복의 《무한 화서》에 나오는 말이다. 똑같은 주제로 글을 써도 저마다 다른 글이 나오는 이유는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글은 그 사람의 삶으로 녹여내는 육체적 기록이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살아오면서 깨달은 체험적 교훈을 몸으로 쓰는 것이다. 글은 그래서 피와 땀과 눈물의 기록이다.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것을 쓰는 사람의 사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고, 후자는 전자의 부연이 되고 전자는 후자의 부연이 되는 법이다... 독특한 시를 쓰려면 독특한 생활방식이 선행되어야 한다(p.190). 김수영의 《김수영 전집 2》의 ‘문단추천제 폐지론’에 나오는 말이다. 글에는 그 사람의 삶의 지문이 새겨져 있다. 글을 보면 작가의 고뇌의 흔적이 보이고 그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 글은 자신이 살아가는 삶을 원료로 삼아 고뇌와 열정으로 숙성시켜 탄생한 작품이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드러난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그 글을 읽고 나면 그 사람의 마음이 눈에 보인다.” 《문장강화》 책을 쓴 소설가 이태준의 말이다. 모든 글은 저마다의 색깔과 스타일이 숨어 있다. 심지어 동일한 주제로 글을 써도 다른 글이 탄생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쓰기 속성 반에 들어가서 빠르게 글쓰기 테크닉을 배울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또는 살아가는 일상적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기본기를 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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