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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놓고 살았다. 사람을 놓고 살았다》를 읽고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람을 놓고 살았다》를 읽고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목표나 목적지다.

목표를 달성하면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

목적지에 도달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가정(假定)은

행복한 가정(家庭)마저 파괴하는 능률 복음과 

속도 지상주의가 낳은 병폐의 장본인이다.


나도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

피곤함의 누적이 졸음운전을 불러오면서

순간적으로 죽음의 일보직전까지 갔던 교통사고를 경험하고

병원에서 고두현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늦게 온 소포》와 《물미 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남해출신 고두현 시인의 시적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녹여낸

시의 세계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교통사고 후에 깨달은 교훈으로

고두현 시인은 곡선에 관한 시를 쓰고 

나는 산문을 써서 운문과 산문을 융합,

《곡선으로 승부하라》는 에세이집도 같이 출간한 적이 있다.



고두현 시인과 나의 삶은 

여러 가지 점에서 곡선이다.

공고를 졸업하고 저마다의 파란만장함을 겪으며

‘우여곡절(迂餘曲折)’이라는 절에도 자주 들렸다.

고 시인은 삶과 시가 모두 시적이고 곡선적이다.


고시인은 무진기행 카페에 들려 

통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고

기타의 몸체에서 잘록한 여인의 허리를 연상하고,

풍만하게 이어지는 엉덩이의 곡선을 상상하며,

달빛에 엎드린 그대를 끌어들인다.

구름 같은 음악을 들으며 달무리 진 젖빛을

달큰하게 시적으로 표현하는 상상력은

고 시인만이 지닌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고두현 시인은 서해대교를 건너

만리포를 가다가도

부드러운 노을이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익어가는 풍경을 보면서

“바알갛게 젖 물리고

옷 벗는 것(시, 만리포 사랑)“을 보는 시인이다.

그에게 세상은

모두 관능으로 물든 예능의 천국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몇 년 전에 사하라 사막 마라톤과 

제주도 100Km 마라톤에 도전하면서 

느낀 점 한 가지, 

1등 하는 사람에게는 사막의 적막한 사유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사실,

그들에 오로지 목표는 일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달성하고 싶은 목표 추구 욕망이었다.


1등 한 덕분에 성취감을 맛보았지만

1등 했기 때문에 모래사막이 사유의 사막임을 잊었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나처럼 뒤에서 달리는 사람에게는 

달리기로 일등하기보다

달리면서 사막과 제주도의 풍광을 감상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멈출 때마다 나는 듣네”라는

미국 시인 랄프 왈도 애머슨의 

명구를 필사하다가 느낀 깨달음으로 시작하는 

고두현 시인의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는

사랑할 시간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다 시를 놓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사랑을 놓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울리는 한 편의 경종이자 각성제다.


시인은 시적이다.

삶도 시적이고 시를 통해 표현하는 문장도 시적이다.

평범한 사람은 사막에 가서 모래를 보지만

시인은 사막에 가서 모래와 모래 사이를 본다.

이문재 시인의 〈사막〉이라는 시에 보면

“사막에는/모래보다/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는 표현이 나온다.


시인은 익숙한 장면을 낯설게 보고

당연함에 물음표를 던져 시비를 걸고

물론 그런 현상에 색다른 논리로 다시 보게 만든다.


“시인들은 바로 그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명징한 언어의 불꽃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 속에 우리가 하고자 했던 말이 응축돼 있다.

흥겨운 감성의 물굽이나 

가슴 아린 비애의 뿌리까지 그 속에 들어 있다.

우리가 시를 읽고 감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6쪽).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괴로움,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속 터짐,

내 맘처럼 생각해주지 않는 답답함,

당장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한없이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

금방이라도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감,

지금 이대로 사랑이 끝나갈 거 같은 안타까움,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간절함,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사랑에 대한 애정과 열정과 격정으로 

격동기를 보내는 시인들의 사랑 사건은 

세상에서 가장 ‘앓음 다운’ 사건이다.


시 한 편은 시를 쓴 시인의 격정적인 삶의 단면이자

사랑을 갈구하다 애절함을 몸으로 기록하며 

좌절한 비애의 한 페이지며,

이미 끝난 사랑의 뒤안길에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해낸 

애잔함의 흔적이자 얼룩이다.


시 한 편에는 책 한 권으로 말할 수 없는

애틋한 사연과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 한 편은 그래서 시인의 삶이다.


고두현 시인의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는

이룰 수 없지만 사랑으로 가능성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좌절하고 절망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다양한 진면목을 시인의 삶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인들의 사랑 고백서다.


아일랜드의 국민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나타난 

모드 곤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꿈꾸다 삶의 비의를 느낀 사연,


573통의 지극한 사랑이 담긴 편지를 주고받다

여섯 살 연하의 무명시인 로버트 브라우닝과 결혼하기까지

사랑이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함을 몸소 보여준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불편한 몸으로 시를 쓰고 있는 한 여인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로버트 브라우닝이 쓴 “연애편지는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달콤한 밀어를 빙자한 절규이자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는 헛소리이며, 

펄펄 끓는 내 욕망으로 진동하는 메아리이다“(170쪽).

이화경(2017)의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에 나오는 말이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통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로 끝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는

릴케가 스물두 살 때 열네 살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를 열렬히 살랑하면서 바친 연시다.

격정적인 사랑으로 나눈 것도 잠시 

결국 각자 다른 사랑의 길로 접어든 사연을 읽노라면

차라리 사랑은 운명의 장난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수록 

시심은 더 깊어지고 삶에 대한 관조는 깊은 성찰로 이어지고

삶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파격적인 절정으로 가다가

어느 순간 돌연 세상과 이별하면서 

깊은 여운과 애잔한 비의(悲意)를 남긴다.


“비극은 남의 것을 대신 체험할 수 없고 

단지 자기 것밖에 체험할 수 없는 

고독한 1인칭의 서술이라는 특질을 가지며 

바로 이러한 특질이 그 극적 성격을 강화하는 한편 

종내에는 새로운 '앎' ― '아름다움' ― 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283쪽).”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에 나오는 말이다.



저마다의 시인들이 겪은 비극적 사랑은

고독한 1인칭 서술이기에

더욱이 시적 표현의 함축성으로 

시인이 겪은 상황적 맥락을 읽어내지 못하면

더욱더 이해하기 어려운 그 시인만의 1인칭 서술이다.


고두현 시인의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는 

시인들이 겪은 저마다의 애절한 사랑의 뒤안길에서

건져 올린 사랑 열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한 사랑이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을 맛보았고

금방이라고 세상을 뜨겁게 달굴 것처럼 격정적인 사랑이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끝나는 비운의 사랑을 목격했다.


때로는 금지된 사랑이기에 불륜을 무릅쓰고

위험한 사랑을 나눴던 

시인들의 절박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으며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온몸을 다해 할 수밖에 없었던

시인들의 긴장과 비애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고두현 시인의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꽃피던 시절을 

상상으로 이끈 시인들의 사랑 열전을 시적으로 소개하면서

“세계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진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사랑을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격렬하게 불붙었던 뜨거운 사랑의 뒤안길을 열어주었다.


시인들의 처절한 드라마 같은 사랑을 

읽으면서 전두엽에는 천둥과 번개가 치고

심장에 갑자기 북을 두드리듯 

요동과 파동 치는 순간을 비켜갈 수 없었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호흡이 가빠지다가 

멈출 줄 모르고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몸을 던지며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그들의 전투적인 사랑을 추체험하고 반추하기에는

내 경험이 부실했고 언어가 부족했다.


하지만 고두현 시인은 사랑의 당사자 입장에서

마지막까지 시적 상상력으로 뜨거운 사랑의 격정을

온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시인들의 사랑 시에 담긴 

저마다의 사연을 시적으로 담아냈다.


“책을 읽다가 온몸이 싸늘해져 

어떤 불덩이로도 녹일 수 없을 때, 

그것이 바로 시다. 

머리끝이 곤두서면 그것이 바로 시다. 

나는 오직 그런 방법으로 시를 본다(182쪽).” 

고두현 시인이 인용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한 정의다.


이 책을 읽다가 중간중간에 

어떤 불덩이로도 녹일 수 없는 사랑을 목격했고

머리끝이 곤두서면서 극도의 긴장과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시인들의 절망적인 사랑을 

시에 담긴 시인의 격정과 애정과 온정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비극은 우리들이 무심히 흘려버리고 있는 

일상생활이 얼마나 치열한 갈등과 복잡한 얼개를 

그 내부에 감추고 있는가를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때로는 우리를 객석으로부터 무대의 뒤편 분장실로 

인도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인식 평면(認識平面)을 열어줍니다(283쪽).”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말이다.


결국 사랑에 실패하면서 겪은 시인들의 비극은

시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보여줄 수 없는

복잡한 삶의 얼개를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지평을 여는

매개체이자 촉진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랑의 백미는 고두현 시인이 쓴

〈참 예쁜 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정신 맑던 시절

한 번도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두 다리

가지런하게 펴고 무슨 꿈 꾸시는지

담요 위에 얌전하게 놓인 두 발

옛집 마당 분꽃보다 더

희고 곱네, 병실이 환해지네.“


이 시를 쓰고 스스로 해설하는 대목에서는

우리는 모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 맑은 시절에는 한 번도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두 다리,

평생 가난 속에서 혹 사람 도리 못할까 

가슴 졸이며 헤쳐 온 구비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어머니는 

행여 애비 없는 자식 소리 듣지 말라고 

각별히 당부하셨다.

그리고는 발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다“(249쪽).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사랑을 

그 어떤 표현보다도 눈물겹게 시적으로 표현한 시인 다움에

우리는 시를 통해 이렇게 가슴 저미는 

앓음다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시를 놓고 살다가 고두현 시인의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를 읽으며

시를 놓고 살았던 삶은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을 놓고 살아온 

헛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지를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삶이란

문명의 깃털로 된 침대를 빠져나와

날카로운 부싯돌로 섞인 화강암을

발밑에 혼자 느껴보는

고요하고도 꿈같은

야생의 여행“(185쪽)이다.


나는 오늘부터 그 야생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놓았던 시를 읽고 식었던 사랑을 뜨겁게 달구는

격정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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