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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로 318번가

송유진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농부의 시선

   318번.


   우리집 텃밭 번호다. 6평짜리 도시 텃밭을 신청할 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3만원밖에 안 되는데 8개월이나 쓸 수 있고, 이것저것 다 심어서 수확하면 엄청 이득인거 아냐?! 너무 많으면 주위에도 나눠주고 당근마켓에도 팔지 뭐! 가족들이랑 해보면 재미있겠다.’ 정도의 마음.


   7개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욕심도 많았다. 그리고 확실히 재미도 있다. 초짜 농부로서 7개월간의 텃밭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써내려갈 생각인데, 이 글을 읽고 난 뒤 독자의 마음이 궁금하다. 농부가 되어보고 싶을지? 혹은 미안하게도 내가 당신의 의욕을 꺾어버렸을지?


   처음 호기롭게 모종삽을 들고 신나게 가서 아무것도 없는 밭을 마주했을 때가 생각난다.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였는데, 다른 밭들은 어찌나 부지런한지 벌써 모종도 심어져 있길래 괜히 초조한 마음에 우린 무작정 밭고랑부터 팠다. 난 밭고랑을 파면 볼록 위로 올라온 줄에 씨를 심어야 한다고 우겼고, 엄마는 오목한 줄에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아직도 뭐가 맞는지 모른다.)


   그냥 씨뿌리고 물주면 알아서 다 나오는 거라고 하시길래, ‘엄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잘 안돼도 나는 모른다.’ 하며 줄 맞춰 땅을 파내고 쑥갓, 시금치, 청상추 씨앗을 뿌렸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거지만, 그때는 씨앗 색깔과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것조차도 신기했다. 특히나 상추 씨앗은 붉고 동글동글해서 어찌나 신기하던지, 몇 개는 안 뿌리고 손에 쥐고 왔다. 씨앗을 다 뿌린 후에는 흙으로 살살 덮어준 뒤 물을 줬는데 뒤돌아보면 어느새 땅에 다 스며들어버려서, 물을 얼마나 줘야 하나까지 옥신각신했던 텃밭에서의 첫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진짜 저렇게 하면 싹이 나오는 거냐, 너무 신기하다, 우리 농사에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 안 나오면 어떡하냐, 생각보다 잘돼서 우리가 다 못 먹으면 어떡하냐 등등 셋이서 조잘대며 걸어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다음 날부터는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이었다. 싹이 나오길 기다리며 우리는 집에 사다두었던 파 한 단과, 집 근처 꽃집에서 산 상추 모종 몇 포기, 고추 모종 30개, 토마토 모종 5개 등을 텃밭에 심었다. 엉성하긴 해도 나름 지지대까지 열심히 세워서 묶어두고, 이제야 구색을 갖춘 것 같다며 뿌듯한 마음으로 사진도 찍었다.


   내가 도시농부로서 텃밭 가꾸기를 시작하며 가장 반기게 된 것은 바로 ‘비’였는데, 비가 내리면 밭에 물을 주러 애써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싹이 났을까 안 났을까 궁금해하면서도, 텃밭에 물주러 가기라는 새롭게 추가된 일정이 귀찮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비를 기다렸고, 또 싹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귀차니즘 도시농부들의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며칠 비가 내린다는 핑계로 가지 않다가, 맑게 갠 어느 날 아침 텃밭을 찾았는데 세상에나! 정말 작고 작은 쑥갓 새싹들이 오밀조밀 나와있었고, 가까이서 보면 시금치도 가느다란 새싹들이 땅은 어떻게 뚫고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제법 삐죽 나와있었다. 그리고 청상추! 그 붉은 씨앗들을 얼마나 많이 뿌렸는데, 한 포기의 잎사귀가 혼자 꿋꿋이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혼자라도 꿋꿋하게 서 있는 그 작은 잎사귀가 대견해 마음이 풀렸다.


   “진짜 싹이 났어! 어머! 진짜 싹이 나나봐!”


   심었으니까 나와주었건만, 정말 나왔다고 놀라는 우리 셋은 호들갑떨며 사진도 찍고, 물도 뿌려주었다. 고추는 물을 정말 많이 빨아들여서, 아주 흠뻑 땅이 젖도록 물을 줘도 뒤돌아서면 물이 쏙 스며들곤 했다. 토마토도 아주 작은 노란 꽃을 피웠는데, 과연 이 토마토는 방울 토마토일지, 큰 토마토일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첫 수확물을 따온 날은 정말 짜릿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얇고 연한 고추 5개, 여린 쑥갓, 적상추와 청상추 몇 장. 남들이 보면 정말 귀엽다고 할 것 같은 소소한 수확물이었지만, 초보 농부로서 수확물을 얻는 기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다각도로 찍은 사진을 괜히 여기저기 단톡방에 보내며 자랑도 하고, 엄마께선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한바구니 가득 담긴 첫 수확물 사진을 올려놓기도 하셨다. 그 뒤로도 우리는 우리의 작고 소중한 텃밭에서 무언가를 따올 때마다 열렬한 환호로 수확물을 맞이하고는 했다. 고추는 이후 족히 700개는 따서 주위에 나눠주기도 하고 식사 때마다 온가족이 의무적으로 5개 이상씩은 먹어치웠고, 방울토마토는 포도처럼 주렁주렁 열려 방울토마토로만 배를 채운 적도 많았다. 물만 주고 잡초 가끔 뽑아주며 들여다봐줄 뿐인데, 이렇게나 많은 것을 주다니?


   하지만 이런 수확이 늘 기쁨만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열무를 잔뜩 따왔는데, 이파리 사이사이 연두색 애벌레들이 있었는지 바구니를 빠져나와 꿈틀거리는 모습을 막내 동생이 보고 기겁을 하며 한동안 우리 텃밭 수확물은 안 먹기도 했다. ‘바보, 그게 진짜 제대로 유기농인 걸 모르다니.’ 라며 비웃은 적도 있지만, 배추를 한 장씩 뜯어내다가 마주한 콩벌레를 보고서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참 어렵기도 했다. 지렁이와 온갖 벌레들이 살고 있는 건강한 땅이라는 자부심과 동시에, 나는 전업 농부로는 못 살겠다 싶어서. 1년차로서 궁금한 점으로는, 한 3년쯤 되면 벌레도 익숙해져서 귀여워 보이는지 묻고 싶다. 난 아직도 벌레만 보면 입모양이 절로 ‘으’가 되곤 하는데.


   특히 여름철 한창 수확물을 거둬들이고 난 뒤 잠시 휴경기를 가지던 8월. 이제 잡초 뽑기를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비장한 마음으로 텃밭에 갔을 땐 너무나도 절망스러웠다. 과장 하나 없이 내 키만큼 커진 빽빽한 잡초 앞에서 전의를 상실했다. 그래도 우리 밭을 버릴 수는 없다는 마음 하나로, 꿋꿋하게 잡초를 베어내고 뛰어다니는 귀뚜라미를 피해 잡초를 건져 공터로 던져놓으며 밭을 치워내는 데 성공했다. 날아다니고 뛰어다니며 예측할 수 없는 벌레는 정말 긴장감을 최고로 높여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렇게 새로운 재미와 놀라움을 주곤 하는 텃밭은 때로는 내가 그동안 아주 밀접하게 느끼지는 못했던 기후위기를 보다 가까이 느끼게도 해 주었다. 올 여름은 더울 때는 너무나도 더워서 바깥에 오래 있기도 힘들었고 비는 산발적으로 내려서 마구 쏟아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땅이 바짝 마르기도 했다. 땅이 마를 때는 하루만 물을 안 줘도 고춧잎이 시들시들했고, 낑낑대며 힘들게 물뿌리개 가득 물을 길어 왔다갔다하며 4번을 뿌려줘도 금새 말라버리기도 했다. 반대로 비가 너무 많이 올 때는 새싹이 물에 잠겨 썩어버리기도 했으며 2주 넘게 장마가 이어질 때는 반 포기 상태로 농사에 대한 마음을 접어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버텨준 우리 밭 최고.) 한마디로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었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고추에 이유 모를 검은 구멍들이 생기며 썩어서, 따지 못하고 내버려둔 것들도 많았다. 토마토도 같은 이유로 시들거리며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농부 분들은 매년 매 계절마다 이렇게 마음 졸이며 애지중지 키우고 계시겠지. 그 분들은 얼마나 더 매일 기후 변화를 실감하며 보내고 계실까 궁금하고 걱정되는 마음과 함께, 지난 추석에 한 농부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잊지 못할 예쁜 사과가 떠오르며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온 정성 다해 열심히 가꿔내, 남에게 가장 예쁘고 좋은 것들을 주거나 파는 농부들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해보며. 특히나 이렇게 해가 갈수록 극단적인 가뭄과 장마를 오가는 기후 속에 말이다.


   여기까지 고작 7개월 경력의 6평짜리 텃밭 주인 치고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318번 텃밭의 주인으로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날은 이제 고작 한 달여가 남아있다. 초가을에 심어둔 배추를 수확하며 겉절이를 해먹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년에도 다시 신청할 계획이 있냐고 묻는다면? 물론이다. 때로는 무지해서 농작물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았던 때도 있었지만, 다시 한번 도시농부로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는 텃밭을 조금 더 ‘잘’ 대해주고 싶다. 그리고 또 한번 수확의 기쁨과 감사함을 가족들과 나누고 싶다. 벌레도 의연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잡초는 조금 더 부지런히 없애 텃밭을 가꾸리라.


   성장한 도시농부로 다시 한번 글을 쓸 날을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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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진


디자이너 활동을 접고, 환경 분야에 내가 설 곳은 없나 기웃거리며 지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초보 도시 농부로서 서툴지만 유쾌한 저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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