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지구님에게

나무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사랑하는 지구님, 안녕하신가요? 미안해요. 의미 없는 물음이네요. 안녕하지 못하다는 거 알아요. 순서를 잃어버린 채 뒤죽박죽 피어난 봄꽃들과,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도 전 일찍이 찾아온 무더위가 당신이 안녕하지 못하다고 얘기해주거든요.


   파랗고 청명한 당신의 하늘은 자주 회색 먼지로 뒤덮여요. 당신의 거대한 바다는 텅텅 비어가고 있고, 당신의 드넓은 산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불타고 있죠. 당신 안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도 매분 매초 죽어가고 있어요.


   그런 당신 안에 살아가는 나도 안녕하지 못해요. 당신 안의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할 존재들이 끊임없이 억압받고 고통받는 현실을 마주할 때 괴롭고, 인간이 개입하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빠르게 사라져 가는 게 슬퍼요. 당신에게 더욱 맹렬하게 닥쳐오는 위기를 체감할 때마다 나는 많이 무섭고, 무기력해요.


   모두가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대요. 그 말은 우리에게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이에요.


   사랑하는 지구님,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당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모든 것들로부터 당신은 해방될 수 있을까요? 절망스럽게도, 이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보다 외면하는 이들이 아직 더 많은 것 같아요. 당신 안의 가장 강력한 힘을 쥐고 있는 자들은 당신의 안위를 위하는 척, 여전히 당신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거든요.


   사랑하는 지구님, 나는 당신의 위기에 맞서 살아내고 있어요. 이 길에 함께하는 동료들도 많아요. 우리는 당신을 위해 더 깊이 연결되고 강해지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나는 요즘 그 길에서 자주 도망치고 싶어져요. 당신에게 더 큰 재앙이 몰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힘껏 살아내고 싶은데 어쩐지 나는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당신과 너무 깊이 연결된 탓일까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당신을 위한 길에는 쉼이 필요하고, 나 자신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고요.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내야 당신도 건강해질 수 있대요. 그런데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쉼을 찾아내야 하는지도요. 당신을 위한 일은 잠시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걸까요? 당신을 위한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 걸까요? 얼마 남지 않은 당신의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불확실함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지구님, 나는 지금의 위기 앞에서 쉽게 물러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당신의 희망이 절실해요.


   사랑하는 지구님,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부디 안녕하시길 바라요.


   2023년

   죽고 싶지 않은 나무로부터


-

나무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은 인간.

모든 동물이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저항하고, 춤추며, 평화를 꿈꿉니다.

작가의 이전글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