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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물총새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그날 새벽 요가 아사나 수련하러 나가던 길에

꾀죄죄한 몰골로 길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는 당신을 보았을 때

사실은 당신이 살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당신은 이상할 정도로 납작하게 엎드려 계셨지만

멕시코에는 길에서 자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나는 어쩌면 당신도 자고 있거나

만취했을 거라고

기어이 생각해 버리고 싶었어요


너무 불편하잖아요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면요


그러잖아도 여기 멕시코에서

불편한 감정은 이미 너무 많았어요


저는 제가 태어난 나라 사람들 대다수보다

가난한 축에 속하지만

이곳에서는 항상

가진 게 너무 많다고 느꼈어요

그게 창피했어요


집 밖을 나설 때마다

내 옷이 너무 깨끗하고 단정한 것이

껄끄러웠어요


매달 요가 수련에 3천 페소*씩

낼 수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요가 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서로

눈과 코의 모양과

피부색까지 다르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내가 야외 테이블에서 햇살을 만끽하며

식사하고 커피를 마실 때

누추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껌과 사탕을 팔거나 구걸하는

아이들과 할머니를

마주하는 게 버거웠어요


그런데 나는 잘 지내고 싶었거든요


맛있는 비건 음식을 사 먹으러 다니면서

요가와 이런저런 ‘클래스’들에

기꺼이 수천 페소를 지불하면서

말쑥하고 근사한 동네를 거닐면서


골목골목을 돌 때마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안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걷고 싶었어요


그러니 어떻게

길에 엎어져 있던 당신에게까지

신경을 쓸 수 있었겠어요?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어요


당신의 발과 다리를 지나고

등을 지나고

어깨를 지나

머리 너머로

……

스친 뒤로는

돌아보지 않고 줄곧 걸었어요


그날 수련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어요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침에 당신을 마주치고, 지나쳤던

길 옆의 가게에

꽃과 촛불들이 놓여 있고


사람들이 당신의 명복을 비는 메모를

남긴 것을 보았어요


‘하느님께서 그분 나라에 당신을 받아주시기를.’


당신은 하늘의 나라에 무사히 도착하셨나요?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이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았더라면


아니

사실은 알면서도

애써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 당신은 하늘이 아닌

땅의 나라에서 계속 살 수도 있었을까요?


어떤 장소에서 태어나고 자라

단지 몇 번의 행운을 더 얻었을 뿐인데

당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이

저의 삶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흘러넘쳐요


우스워요


3년이 지난 후 저는

사람,

동물, 그리고

나 자신을

살려보겠다고

보란 듯이 설쳐대요


하지만 아무리 발악해도 결코

충분치 못할 것 같아요


그때 당신을

모른 척 지나쳤으니까요

내게 고여있는 풍족함을

나는 아직도 너무 사랑하니까요


가끔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으니까요


부디

저를 용서하세요



* 2023년 6월 27일 현재 3,000 멕시코 페소는 218,120.49 대한민국 원이다.

   2023년 1월 기준 멕시코 평균 일급(daily wage)은 519.17페소다.


-

물총새


아침마다 찬물을 뒤집어쓰는 사람.

달고 축축한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

달릴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

시민단체 직원으로 일하면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매일 궁금해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어떤 곳에서 활동했지만,

기운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바람에 지금은 잠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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