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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우베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나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오늘은 웃는 하루였나요? 어제는 울었어도, 아니 오늘도 울었어도, 지금은 웃고 있나요? 아니에요. 울어도 돼요. 눈물이 나면 울어버려요. 지금 울고 있다면 엉엉 울고 후련해지길 바라요.


   당신은 당신의 안부를 묻고 있나요? 현장의 사람들, 동료들의 안부를 매일 묻는 당신, 당신의 안부는 누가 묻고 있나요? 아무도, 그리고 당신조차도 당신의 안부를 묻지 않고 있다면, 괜찮아요. 그래서 제가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길고 긴 우울의 시간을 지나 나는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 그 시간이 아주 끝났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시간이 나를 ‘안부 묻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간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상담실과 병원에 오가도 자꾸만 커지는 우울을 어쩌지 못하던 그때는 사실 내 생에 가장 안정적인 삶이 유지되고 있던 때였습니다. 월급도 오르고, 직함도 생겼습니다. 큰 회사와 따뜻한 동료가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일과 삶을 꾸려가는 우리는 얼마나 우울과 가까운 자리에 있는지요. 이 판에 있으면서 닳고 닳아 이제는 기대도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어쩌면- 내일은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바람인지 미련인지를 붙들고 사는 우리 옆에는 보란 듯이 ‘좌절’과 ‘절망’이, 또 그 옆에 ‘무력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날마다 말하지만 내 삶의 지속가능성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어요. 그 좋아하던 여행을 가서도 밤새 울며 잠들지 못해 기차를 당겨 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의 삶은 무의미해 다리 아래 강물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약을 먹어도 잠에 들지 못했고, 겨우 잠이 들면 정확히 2시간마다 깨곤 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어요. 아이유가 말했듯, 잘 자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랑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요.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의 안부를 묻는 일은 상담사와 의사에게 외주를 준 나. 이제 내가 나의 안부를 묻는 일이 남아있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울이 심해지는 늦은 밤에는 깨어있지 않도록 수면시간을 옮기고, 잠에서 깨도 책망하지 않고 마음을 살피고, 약 먹는 마음으로 햇볕이 있는 낮에 산책을 했습니다. 뭘 해내지 않아도 하루를 살아냈음에 만족하려고 노력했어요. 이 시간이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해도 나는 그럭저럭 가끔 웃기도 하며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보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길었어요. 저는 당신이 당신의 안부를 물었으면 좋겠어요. 몸이나 마음이 불편하다면 안부를 묻고 병원을 찾길 바랍니다. 달라질 것 없다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요. 세상을 향한 바람을 포기할 수 없듯, 나의 삶이 조금은 편해질 수 있다고 믿기를 바라요. 불편함이 말끔히 사라져 다른 삶을 살게 되진 않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힘들 필욘 없어요. 조금은 편해질 수 있어요.


   당신에게 따뜻한 동료가 있길 바랍니다. 혼자 애쓰지 않길 바랍니다. 일터에서 일만 하면 되지 사적인 관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나를, 동료들이 살게 했습니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고백했을 때 나도 그랬었다며 별일 아닌 듯 밥을 같이 먹던 동료가 있어 살았습니다. 나의 잠재력을 나보다 믿어준 동료가 있어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 판에서 오래 있다 보니 떠나간 동료들도 많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삶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을 압니다.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던 동료의 임신 소식을 듣고 기뻤습니다. 한 아이의 삶을 시작부터 함께하게 된 동료는 앞으로 세상을 달리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동료가 낼 목소리가 벌써 궁금해집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오늘도 생각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직장인과 다름없는 나의 하루를 봅니다. 인권을 운운하면서 나를 소모품 정도로 대하는 상사를 봅니다. 매달 빠듯한 통장을 봅니다. 의미도 미래도 없다면 갈아타자는 생각에 채용공고 게시판을 봅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 하루를 보냈나요?


   그래서 오늘 저녁에도 동료들을 만납니다. 서로의 삶과 일의 안부를 묻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아무것도 안 달라지지만, 그냥 재밌습니다. 같이 한참을 웃고 욕도 하다가 가끔은 일과 현장 얘기도 합니다. 그렇게 집에 가면 지쳐서 잠이 잘 와요. 혹시 동료를 만날 에너지조차 없는 상태라면 책 읽기와 글쓰기를 추천합니다. 글이 당신의 동료가 되어줄 거예요.


   당신에게 보내는 긴 글을 이제 마치려고 합니다. 따뜻하고 화창한 요즘, 다른 이들은 여행과 여가를 누리는 요즘이 당신에게는 가장 바쁠 때인 것을 압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래 걸리지 않아 다시 당신의 안부를 물으며 다시 찾아가겠습니다. 당신의 삶에 안전과 평화가 있기를, 오늘은 잘 주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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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베


나아진다면, 달라진다면 뭐든 하는 국제개발협력활동가 입니다.

말과 글로 나음을 꿈꾸며, 당신의 활동이 안녕하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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