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도 채 안 되는 이 단출한 러닝타임을 몇 번이나 끊어 봤는지. 생각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애써 잊으며 지냈던 그때 그 잔혹했던 시절이.
단 한 순간도 치열하지 않은 적이 없었음에도, 나는 나의 어린시절을 얼마나 손쉽고 간편하고 단순하게 각색해왔던가. 나의 어린시절을 얼마나 혐오해왔던가.
<우리들>은 우리의 정교했던 어린시절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 시절을 잊지 않고 그대로 스크린에 그려낸다. 최근 예술작품의 재현 방식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은 실마리를 주었다. 재현할 대상으로 '무엇을' 선택하는지, 또한 그것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서발턴들의 언어를 말줄임표로 축약해왔던 우리의 작위적 재현을 어떻게 재위치시킬 수 있을지.
우리는 '행간'을 읽어낼 수 있는 독자이다. 그리고 낱낱의 비극을 리얼리티라는 미명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과 장면 사이, 대사와 대사 사이, 호흡과 호흡 사이를 정교하게 매듭짓는 것이 '작가'들의 몫이다.
<우리들>은 우리의 지난 시절의 감각들을 그때 그 언어와 사건을 사용하여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적나라하지 않'고도, '현실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는 윤가은의 작법은, 독자들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독자들은, 관객들은 어수룩하지 않다. 우리는 개개의 치열하고도 정교한 역사를 가진 기민한 독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