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아랫니가 윗니를 덮어?”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가 말했다. 남의 이를 관찰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 말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하교하며 우리는 입을 양옆으로 활짝 펼쳐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는 집 앞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며 아랫니를 안으로 넣기 위해 턱에 힘을 가득 주었다. 친구는 옆에서 아랫니를 윗니 앞뒤로 움직이며 “나는 이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데, 이게 안돼? “라고 말했다. 내가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느낀 첫 순간이었다.
학교 구강검진에서도 부정교합이라고 하자 엄마는 나를 데리고 교정치과를 갔다. 동네 치과 의사가 추천해 준 그곳은 검사실부터 대기실까지 장비가 최첨단이었다. 그 당시 어린 내가 들어도 입 떡 벌어질 가격이었지만 엄마는 고민하지 않고 결제를 하였다. 처음 교정을 시작하고 치아 위로 드러나는 교정기가 부끄러웠다. 말을 하고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철길이 나의 비정상을 부각하는 느낌이었고, 나는 입을 가리거나 다물고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남과 다른 부분을 깨닫는 순간은 사춘기 소녀에게 소속된 집단에서 배제되고 놀림받을 것 같은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학교에서는 부정교합이었다면, 집에서는 왼손잡이라는 사실이 나를 비정상으로 만들었다. 나는 유일한 집안의 왼손잡이였다. 오른손잡이 사이에서 왼손잡이는 귀여움을 받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팔이 자꾸 부딪힌다며 지나가듯이 한 마디를 하곤 했다. 집에서 나는 돌연변이라는 장난스러운 놀림을 받았고, 그 말에 웃으면 넘겼지만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집단 내에서 여러 명이 그 다른 점을 가지고 있을 때 든든한 소속감을 가져다준다. 내가 8살 때쯤 외사촌동생이 태어났다. 셋째 삼촌의 딸은 조그맣고 뽀얬다. 그 찹쌀떡 같은 아기가 신기하고 귀여워서 만날 때마다 빤히 바라봤다. 그 아이는 조금 더 크고 왼손잡이가 되었고, 집안 어른들은 축하인사를 하듯이 나에게 한 마디씩 건네셨다.
얘도 왼손잡이란다, 지수야.
이제 왼손잡이가 한 명 더 생겼네.
왼손잡이 동생 생긴 기분이 어때?
그 말들을 들으며 어른들 앞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척했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 말을 들은 날, 나는 여전히 작은 그 아이를 보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리고 2년이 지나 첫째 삼촌의 딸이 태어났다. 몇 년 후 그 동생도 왼손잡이가 되었다. 할아버지 댁에 가서 밥을 먹을 때면 어른들은 “너네 셋이 왼손잡이니깐 나란히 앉아라. “라고 말하였다. 그 말에 동생들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둘 덕분에 묘한 연대감이 들었다.
언젠가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내가 할아버지께 물었고, 할아버지도 본인이 왼손잡이였는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오른손으로 고쳤다고 하셨다. 그 기억에 끝에서 나는 동생들과 같은 왼손의 피가 흐른다는, 이건 특별한 유전일지도 생각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