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완 Sep 12. 2022

잡채 좋아하세요?

잡채 어디서 먹나요


한식과 타파스


처음으로 스페인을 여행했을 때, 타파스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식당에서 주문했었습니다. 1인용 접시에 조그마한 크기로 나온 타파스는 예상대로 이쁘고 간결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타파스는 특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기보다 작은 접시에 먹기좋은 크기로 만든 음식을 아울러서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음식이든 작은 접시에 담기기만 한다면 타파스라고 할 수 있는것이죠. 홋, 그럼 김치도, 시금치나물도, 멸치볶음도 타파스가 될 수 있겠네? 그거 재밌겠다 꺄르르. 이런 농담을 하면서 스페인 어느 한 식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음식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정말로 한국음식으로 타파스를 만들 수 있을까, 간단히 술과 곁들어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무엇일지 고민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백김치'입니다. 식사때마다 일반적으로 먹는 빨간김치는 매운맛이 강하고 존재감이 꽤 강하기때문에 술과 마리아주를 기대하긴 어렵지만요. 백김치라면 새콤달콤함과 깊고 시원한 배추와 무의 맛이 적당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식사에서 백김치가 있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지않나요? 우리는 간이 되어있지 않은 맨밥을 먹기때문에 반찬은 간이 좀 세게 되어있는 정도를 선호합니다. (중남미에서는 밥에도 간이 되어있더군요) 그래서 백김치와 밥을 먹을때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것이 아닐까 합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빨간김치는 밥 없이 단독으로 먹으면 뭔가 과하지만, 백김치는 단독으로 먹어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죠. 백김치가 밑반찬연합에서 빠져나와 독립선언을 해야하는 이유입니다.


백김치여 타파스로 독립하라


잡채, 너는 어디에


그 다음에 제가 관심을 가졌던 메뉴가 잡채입니다. 잡채, 언제 드시나요? 저는 어렸을적 어머니가 집에서 반찬으로 가끔 해줬을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한식당에서 반찬으로 잡채가 나올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어떤일이 벌어지는지 아세요? 사람들이 그것 먼저 먹어대는 바람에 꼭 '저기요, 여기 잡채좀 더 주세요'하고 리필문의가 나옵니다. 그럼 식당 주인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잡채 빼야지 안되겠다' 한식문화의 당연한 리필문화, 저는 그런 결국 음식 퀄리티가 낮아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때문에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설하고 잡채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잡채를 먹을때는 중식당에서 잡채밥을 주문할 때입니다. 사실 이 두가지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잡채가 반찬으로 나오는 한식당에 가거나, 아니면 중식당에서 잡채밥을 주문하거나. 한식당은 주인이 잡채리필이 많아지면 얼마든지 반찬구성에서 뺄 수 있기때문에 입지가 불안한 녀석입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반찬'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한다고해서 많이 먹을수도 없습니다. 같이간 다른사람이 그만큼 먹지 못하는 공유자산이니까요. 중식당의 '잡채밥'은 어떨까요? 여기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저는 잡채에 전분으로 만든 당면이 들어가는데 굳이 밥과 같이 먹어야하는지 의문입니다. 제가 탄수화물을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해서 그런것도 있지만 저는 '잡채'만 먹고싶습니다! (그럼 밥을 남기란 얘기는 하지말아주세요)


저는 태국식당에 가면 꼭 먹는 메뉴가 있습니다. 전 국물요리보다는 볶음요리를 좋아해서 팟타이를 반드시 먹습니다. 팟타이는 국수를 국물에 넣지않고 기름을 두른 팬에 볶았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요리인 파스타와 비슷하지만 팟타이의 가장 큰 매력은 피쉬소스와 견과류의 조합입니다. 그래서 나름 건강식이라고 생각하며 먹는데요. 쌀로 만든 면은 배를 채워주는 탄수화물이 들어있고 해산물과 채소, 거기에 피쉬소스가 풍미를 더해줘서 맛을 내고, 견과류의 고소하게 씹히는 맛까지 정말 소박하면서도 다채로운 한 접시 되겠습니다. 


태국에 팟타이가 있다면 한국엔 잡채가 있습니다. 다양한 식감에서는 잡채가 팟타이에 조금 밀리지만, 한국간장의 진하고 깊은 맛과 시금치와 여러 채소들, 소고기, 당면의 조합, 그리고 팟타이의 견과류에 해당하는 깨소금 마무리. 저는 한국사람이라 매일 팟타이를 먹진 못할 것 같지만 잡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정작 주변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왜 한식당에서는 잡채를 메인메뉴로 만들지 않는걸까요? 우리가 예전부터 먹어온 잡채를 중식당 메뉴판에서만 볼 수 있는건가요?




알고보니 중국에서 넘어온 잡채


이런 의문이 들어서 잡채의 역사에 대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나무위키

단순한 메뉴인 만큼 중국에서는 (비록 그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지역을 막론하고 상당히 대중화된 반찬으로, 한국에서도 김치를 요리가 아닌 당연히 밥상에 있어야 하는 기본 세팅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잡채 역시 중국에서는 본래 요리로서 취급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김치를 따로 메뉴에 적어두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 반면, 한국에서도 김치 맛으로 식당을 판별하듯이 중국에서도 잡채가 식당 맛의 척도가 되기에 허투루 할 수 없는 까다로운 음식이기도 하다. 
한국식 잡채와 가장 근접한 중화요리, 청초육사(고추잡채) (나무위키)


아, 그렇군요. 잡채는 중국에서 넘어왔기때문에 한식당에서는 요리로 취급하지 않는다.. 잡채라는 이름도 여러가지 채소를 섞었다는 뜻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 고추잡채를 꽃빵과 함께 중식당에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로 당면없이 거의 고추와 고기만으로 이뤄져있네요. 이것이 잡채의 원조격이라는데 제가 말하는 잡채는 한국식 잡채입니다. 

한국식 잡채는 위의 중국식 잡채에서 기원하였으나, 한국에서는 '잡채'라는 이름과는 달리 당면이 주가 되는 음식이다.

그렇습니다. 한국식 잡채는 당면이 있으니 탄수화물이 들어있고, 그래서 꽃빵이나 밥과 함께 먹을 필요가 없는 충분히 단독요리가 가능한 한국식 메뉴입니다. 그러니 한식당에서는 어서 잡채를 메뉴에 올려주세요. (먹고싶어요)


당면은 오래 조리하거나 보관하면 쉽게 퍼져서 다루기 까다롭다면, 조리하자마자 식혀서 냉장보관해도 괜찮습니다. 의외로 차가운 잡채도 맛있습니다. 콜드파스타처럼요. 오랫동안 열을 가하면 퍼지는 것은 모든 면요리가 마찬가지입니다. 당면도 굵기가 여러종류가 있는데 너무 얇은 당면은 쉽게퍼지니 적당하게 굵은 당면을 사용한다면 괜찮지않을까요? 저는 시금치를 좋아해서 시금치만 한무더기 먹는것도 가능하지만 계절별로 제철채소들을 사용한 제철잡채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마무리도 깨소금 외에 파다짐, 허브, 부추 등 여러가지 시도해보면 좋겠고요. 음식은 이미지가 중요한데 사진엔 음식의 베이스보다는 음식 위에 마지막으로 얹는 고명이 큰 역할을 합니다. 오꼬노미야끼와 타코야끼가 비주얼에서 크게 먹고 들어가는것도 살랑살랑 흔들리는 가츠오부시와 마요네즈와 소스를 가늘게 여러번 왔다갔다하며 뿌린 덕분입니다. 팟타이는 굵직한 견과류, 파스타는 초록초록한 바질/파슬리때문에 더욱 입맛을 당기는 룩을 완성합니다.



힘내세요 한식


한식문화는 아쉬운 점이 참 많습니다. 단점도 많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다는 뜻입니다. 음식을 좋아하고 여러 문화현상을 유심히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한식문화는 여러모로 연구대상입니다. 한국의 식문화에 대해 뜬구름 잡듯 그럴싸한 말을 하기보다는 제가 좋아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먹고싶은 잡채에 대해 한번 포스팅 해봤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 역시 매일매일 오늘은 어떤 메뉴를 먹을지 고민하는데요. 문득 '어라, 이건 왜 이럴까'하는 의문들이나 '이건 저렇게 되면 어떨까'하는 제안들이 떠오르는데 그러한 내용들은 차차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