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집을 이리저리 바라만보다가 일단 도면을 그려보면 알 것 같아서 아래 그림처럼 만들어봤습니다. 측정을 정확하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그려보니 현재 상태가 조금 파악이 되었습니다. 이 구조 안에서 어떻게 변경해서 어떤 모습으로 활용할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왼쪽에 삐져나온 1.3평 공간은 기존에 화장실로 쓰고있었는데 기존 한옥에서 증축했던 공간이라 외부모양을 해치기도 해서 철거하기로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툇마루까지 계산해보니 대략 17평 정도 나왔습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주요 기둥들은 구조적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대면 안될것 같았습니다. 집이 오래돼서 약간 기울기도 했으니까요. 기둥들의 위치를 검은색 박스로 표시했고 이 기둥을 기점으로 공간을 개선해보기로 했습니다.
툇마루가 굳이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기존 상식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모두 실내공간으로 만들까 고민해봤지만 마당쪽 툇마루는 전망이 좋아서 나중에 걸터앉아 앞을 바라보며 수박 한 조각 한다면 무척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닭장쪽을 바라보는 툇마루는 장점이 없어보여서 실내공간으로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감나무와 모과나무, 4m이하의 도로와 접하는 곳엔 무너진 담장, 아래 논 방향으로는 전망을 가리는 블록담이 있었고 우측엔 낡은 닭장과 아담한 마당이 있습니다. 우선 철거하면서 닭장과 전망을 가리는 담장은 없애고 나머지는 집수리 후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예상대로 담장을 철거하고나니 전망이 너무 좋아서 주변 사람들 모두 놀랬습니다 ㅎㅎ 나중에 이 곳에서 걸터앉아 멋진 하늘을 바라보며 맥주한잔 할 날을 기대합니다.
1. 마당에 주인분이 정성스럽게 키우고 있던 감자와 옥수수가 자라고 있어서 일단 그대로 공사를 시작하긴했지만 작업에 방해도되고 작물이 다치고 쓰러지는 일이 발생해서 결국 수확하지 못한채 다 뽑아 버려야했습니다. (나중에 따로 옥수수를 선물로 갖다 드렸습니다 ㅎㅎ)
2. 닭장 지붕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면 슬레이트로 되어있었는데 이게 발암물질로 지정되어 함부러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냥 버리려면 비싸고 (한 장당 4~5만원정도인데 15장이 넘었습니다 ㅠㅠ) 지자체에 철거신청을 하면 무료로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철거하지 않고 몇 달동안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조건이라 그냥 제 비용을 대고 버리기로 했습니다.
집수리를 여러번 해본 농촌유학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그렸습니다. 이걸 가지고 집주인분과 설비를 담당해주실 전문가와 만나서 세부적인 논의를 했습니다.
무의미해 보이는 툇마루의 우측을 실내공간(방A의 욕실과 창고)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거실을 나눠 방B의 욕실로 만드니 신기하게도 사이즈가 거의 비슷한 방 2개가 나왔습니다. 방 중간에는 주방 겸 거실이 있어 방A와 B가 적당한 거리가 생겨 각 방의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족이 지내는 일반적인 집이라면 방이 서로 붙어있어도 상관없겠지만 이 집은 다른식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이 분리되는 것이 좋았았습니다. 'Weak ties'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약한 고리' 또는 '느슨한 연결'이라는 뜻으로서 소셜미디어 시대의 인간관계 특징을 표현한 말입니다. 예전에는 지인 또는 친구라면 같은 동네에서 살고 같은 학교나 직장을 다니며 자주 만나며 소식을 직접 주고 받았다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시대에서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식을 접하고 친구되기 버튼을 클릭하여 알지만 잘 알지못하는 애매한 관계를 맺습니다. 어떤 쪽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사회에서는 'Weak ties'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거실과 각 방으로 난 문은 어떨까요? 방에서 거실로 나가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바로 통하는게 편하겠지만요. 아무래도 거실에서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어쩐지 조금 불안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방은 100% 사적인 공간인데, 거실의 다른 누군가가 노크도 없이 내 방으로 불쑥 들어올수도 있으니까요. 처음에 그렸던 이 그림에서는 거실과 방 사이에 문을 넣었지만 나중엔 없앴습니다. 그래서 동선이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방에서 거실로 가려면 굳이 툇마루로 나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이 곳에서 구현되길 바랬던 조건들입니다.
1,2번은 제 취향을 반영했고 3번은 이 집의 지리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4번은 집이 원래 작은편이기도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엔 두세명 정도로 소규모로 다니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다른 가족과 같이 여행을 가는 일이 거의 없어졌고 가족 구성원 또한 아빠, 엄마, 아이 이렇게 3명인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택근무를 하는 싱글도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는 그런 cozy하고 아늑한 사이즈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작년에 3주동안 두번이나 제주 월정리에서 재택근무를 했었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리모트워크를 하는 시골 한옥이라니..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렇게 리모델링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좀 더 현실적이고 세부적인 계획과 디자인 수정을 하려면 철거가 일단 되어야하기 때문에 전문가와 상의하면서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전문가는 운이 좋게도 바로 앞집에 살고 있는 분으로 소개를 받았고, 이 분도 오랫동안 이 빈 집을 봐왔기 때문에 잘 알고 계셨고 관심도 많아서 매우 적합한 분이라 느꼈습니다. 다음편엔 이 분과 어떤 작업부터 시작했는지 적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