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가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사랑하는 그 사람을 만난 그날부터였겠지. 그와 함께하게 되니, 그와 항상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거리’라는 단어가 나와 그의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단어처럼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단 일 밀리미터라도 찰싹 붙어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날들, 곁에 있어도 더 곁에 있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모든 것이 좋았다. 밥을 같이 먹는 것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그의 등에 귀를 대고 있으면, 두근두근 들리는 심장 소리가 내 심장 소리인지, 그의 심장 소리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 두근거리는 소리가 편안해서 자꾸만 그의 등에 엉겨 붙었다.
그의 온기는 참 따듯했다. 그래서 더 달라붙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은 개척하는 건데.’ 생각하면서도, 그와 연결된 모든 것들은 그냥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와 처음 헤어지던 그때도 ‘우리는 서로 결국 다시 만나게 되어있어.’를 수 없이 되뇌었었다. 결국 그 말이 씨가 되어서, 운명을 개척하게 된 것인지 진짜로 운명이었던 것이었는지 우리는 다시 만났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거리도 더욱 가까워졌는데, 어느 순간에는 그 거리감이 서로를 지치게 만들었다.
우리가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많지만,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들도 많았다. 웃음 코드는 같았지만, 생활 습관은 달랐다. 목표는 같았지만, 목표를 추구하는 방법은 조금 달랐다. 틈은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이미 한 번 벌어진 틈을 아주 얇은 유리로 덮어두고, 그 틈을 못 본 척하며 때때로 곁눈질하고는 했었다. 나는 저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서, 자꾸만 외면했고.
여전히 우리의 이별을 생각하면 마음부터 왈칵 쏟아져서, 쏟아지는 마음은 곧장 눈으로 달려가 이내 눈물을 함께 쏟아버리고 만다. 쏟아진 모든 것을 주워 오고 싶어도 그것들을 줍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렇게 쏟아내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우리의 거리를 다시 가늠해보기로 했다. 처음 그를 만났던 그때, ‘따로 또 같이.’라는 어느 영화 속 대사를 읊었었는데. 왜 지금의 나는 ‘항상 함께’를 이야기하며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불안해하고 있는지. 뭐 사실 나는 ‘따로 또 같이.’를 얘기하면서도 그와 항상 함께하고 싶었겠지.
문득, 우리의 거리를 오십 센티미터 정도 떨어뜨린다면 우리가 앞으로 오십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밤. 나와 같을 생각을 그도 하기를 바라며. 오늘은 오롯이 무겁게 떨어지는 나의 심장 소리를 듣는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