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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ul 07. 2021

오래도록 따듯할 그녀의 도시락

 우정이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은은한 온도.

      십오 년 지기 친구가 화려한 솔로로 돌아왔다. 그녀는 원치 않았겠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다. 이별을 어떤 말로도 정리하거나 정의할 수 없겠지만, 이번 이별은 ‘그냥 그렇게 되었다.’라는 말이 퍽 어울리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의 연애 이야기는 대부분 즐거웠다. 물론, 이별 빼고. 그녀가 온 마음을 다해 상대방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그녀 본인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때때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마음을 다 담지 못해 흘러넘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서로에게 했던 나날이었다. 뜸한 연락이 언제부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연락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이 연락을 통해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별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 같았다. 상대방의 작은 변화를 크게 느끼고 눈빛으로 마음을 자꾸만 넘겨짚게 된다. 마음이 큰 쪽에서 작은 쪽으로. 그날의 그녀는 수화기 너머로, ‘헤어질 것 같아.’라는 짤막한 문장을 내뱉었다. 문장의 앞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였으나, 그게 무슨 힘이 있을까 싶었다.




     그녀의 이별 이후, 매일 아침 안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온종일 시답잖은 이야기들로 ㅋㅋ 거리기도 하고, 그녀의 지나간 연애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며 ㅠㅠ 거리기도 했다.


     그녀가 이별한 기간이, 연애했던 기간을 넘어서면서 화제는 상대방과의 연애가 아니라 일상에 가까워져 갔다.


     그녀는 종종 저녁에 도시락을 싼다고 했다. 다음 날의 점심을 위하여.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피로한 마음을 이끌고 몸의 남은 에너지를 끌어모아 요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어딘가 빈 마음을 채우려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사실 그녀의 요리도 ‘단순히 내일의 점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어딘가 빈 마음을 채우는 행동은 아닐까?’ 하며 그녀의 요리를 어렴풋하게 넘겨짚었다.




     잦아진 연락만큼, 만남도 잦아졌다. 같이 그녀의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날, 얼마 전 떠 두었던 네트 백을 가지고 갔다. 막상 다 뜨고 보니 네트 백은 장바구니로 쓰기엔 너무 작아서 ‘주고도 욕먹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또 약속에 늦어버렸다. 저 멀리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종이 쇼핑백을 들고 손을 흔드는 나의 친구가 있었다.



         “그 종이가방은 뭐여? 야, 선물. 근데 너무 작어.”

         “이거? 도시락 가방. 야, 이거 도시락 가방으로 딱 맞네!

         여름내 갖고 다녀야겠다! 고마워 고마워~”



     별것도 아닌데 호들갑 떠는 친구를 보며, 요즘 쟤가 저렇게 환하게 웃은 때가 있었나 싶었다. 쟤가 저렇게 웃을 때마다 왜 코끝이 자꾸만 시큰해지는지 잘 모르겠다. 늙었나 보다.


     그날 이후 그녀는 도시락 가방을 챙겨 갈 때마다, 종종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하고, 회사 사람들이 ‘너무 예쁘다.’고 얘기했다며 도시락 가방과 관련된 소식들을 일상과 함께 전해왔다.




     평생에 걸쳐 대화의 주제가 이렇게 넓고,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면 성공한 삶 아니냐며 그녀와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그렇다면 친구도 알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그녀의 마음을 넘겨짚어 본다.


     비록 보온이 되는 도시락 가방은 아닐지라도. 그 도시락 가방이 도시락을 따듯하게 데워주는 대신, 그녀의 마음을 은은하게 데워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이 글을 쓸 때, 마음이 큰 쪽에서 작은 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며 문장을 적었으나, 막상 글을 다 쓰고 보니, 마음은 크기에 따라 흐르기도 하지만 마음만 있다면 마음에서 마음으로 그저 흘러갈 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글.


 친구는 여전히 도시락 가방을 잘 들고 다니고 있고, 얼마 전 만나 커피를 마실 때도 도시락 가방을 챙겨 왔었다. 조금 늘어났지만, 여전히 잘 쓰고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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