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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Oct 26. 2024

진정한 휴식처에서의 깨달음


빠이의 홈스테이 집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이전에 빠이를 먼저 다녀온 분께서 식당과 카페 한 곳을 추천해 주셨다. 마침 다음날 숙소가 그 근처라 지도로 가볼 만한 곳을 둘러보다가 Lalamal Cafe라는 곳을 발견했다. 뷰가 너무나도 예뻤다. 걸어서 40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거리보다 높이가 문제였으므로 이 기회에 타보고 싶었던 스쿠터를 배워서 가보기로 했다.


태국은 오토바이 이동이 많고, 특히 치앙마이와 빠이는 대중교통이 거의 없는 편이기 때문에 학생들도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빠이는 치앙마이 보다 더 작은 마을이라, 스쿠터를 배운다면 좀 더 단순한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빠이에서 시작해 보는 게 좋을 듯했다.


스쿠터 렌탈샵에서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스쿠터 렌털샵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이럴 때 빛을 발하는 나의 행동력. 처음엔 이게 하루 만에 가능할까? 싶었지만 의외로 나는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1시간도 안 돼서 턴이 멋지다는 칭찬과 함께 수업을 종료했다. 곧 해가 질 시간이라 스쿠터를 빌린 후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가져다 두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Lalamal Cafe로 향했다.


전날 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한산해진 워킹스트리트 거리를 지나고, 땀 흘리며 걷던 뙤약볕을 스쿠터를 타고 시원하게 달리니 너무나도 상쾌하던 마음. 이번 여행에서 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발에 날개가 달린 듯 더욱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나의 첫 스쿠터


그렇게 도착한 Lalamal Cafe. 카페 마당에 스쿠터를 주차하고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곳은 천국인 건가?


Lalamal Cafe


하늘과 구름과 땅이 뒤엉킨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어지러워 휘청거렸다.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커플 한 쌍과 책을 가져온 한 손님만 있었는데, 그 손님은 내가 간 이후로 책은 한 번도 펼치지 않고 멍하게 하늘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만 쳐다보네? 무슨 일이 있나?’

나는 그의 옆 빈백에 앉아서 다이어리를 썼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이 눈앞에 있는데, 뭘 하고 있는 거야?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야.‘


Lalamal Cafe


나는 바로 다이어리를 덮었고, 빈백에 누워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분주하던 뇌에 공기가 들어차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평화로이 가라앉았다. 옆의 남자가 왜 책을 볼 수 없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허리 수술을 하고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누워서도 아파했지만, 아무것도 못하는 그 시간을 나는 너무나도 불안해했다.

쉴 줄 모르고, 쉬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내가 빠이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야말로 무언가를 꽉 채워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것조차 마치 시험 시작 10분 전에 딴 일을 하는 듯 느껴졌고, 그리하여 의무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 최초의 시공간이었다.

비로소 제대로 쉬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조차 시간 낭비가 되는 그런 곳이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뭘 하고 있고, 과거에 무엇을 했었다는 걸 놓기가 힘들었으며, 더 나은 내가 되는 걸 증명해 보여야만 하니 계속 욕심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는, 특히 빠이에 와서는 그저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스쿠터를 배워서 타고 카페에 오는 것 정도의 아주 작은 성취로도 자존감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특히 정말 내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좀 더 내 마음과 삶에 순수해질 수 있다는 게 내 마음을 크게 위로해주고 있었다.


살며 가장 중요한 건 ‘자유’라고 생각한다.

늘 자유를 가장 추구하며 살아간다 생각했지만, 나는 마치 방향을 잃어버린 마라토너처럼 결코 결승전에 도달하지 못하며 뛰기만 하다 지치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빠이에 와서 드디어 방향을 찾았다. 목적지는 바로 나여야만 했다.


무조건 나다울 것


Lalamal Cafe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배운 진정한 휴식을 통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과 진심 또한 배웠다.

1.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하기.
2.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대하면서 나의 시간을 그 둘로 채우기.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바로 "자유"였다.


나는 빠이에 온 지 3일 만에 이번 여행의 목적을 모두 이루었다. 고민하던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머릿속이 어두컴컴했는데, 안쪽 깊은 곳에서 초 하나가 켜진 듯했다. 실마리가 조금씩,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이 여행에 여한이 없었고, 나는 여행자의 무덤에 묻히기 전에 치앙마이행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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