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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Oct 27. 2024

다시 돌아온 치앙마이와 선데이 마켓


다시 돌아가는 치앙마이행 미니밴.

그저 선데이마켓을 보기 위해 치앙마이로 다시 돌아가려고 미리 사둔 티켓이었지만, 이후에는 정말 빠이에 눌러앉아 살게 될까 봐 황급히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빠이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나는 바로 빠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치앙마이에서 빠이로 가는 미니밴에서는 뒷자리에 앉았음에도 멀미를 하지 않았었는데, 치앙마이로 가는 미니밴에서는 1A 명당자리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3시간이 3일인 듯 멀미를 했다. 치앙마이고 빠이고 뭐고 그냥 길거리에 눕고 싶었던 세 시간.

커브길을 지나고 넓은 도로가 나타나면서 금세 삭막해져 버린 풍경. 심지어 빠이에서의 3일 동안은 햇빛이 쨍쨍했는데, 치앙마이에 도착하니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바람을 쐬고 있으니 썽태우 기사님께서 호텔까지 150바트로 가주신다고 흥정을 해왔다. 썽태우는 트럭처럼 생긴 택시로, 뒷자리에 사람들을 여러 명 태워서 한 명씩 한 명씩 내려주는 치앙마이만의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터미널에서는 이렇게 택시로 이용되기도 한다. 나는 흥정할 힘이 없어 바로 알겠다며 앞자리에 앉았다.


기사님은 멀미하느라 상태가 좋지 않은 나를 배려해서 창문을 열어주고 천천히 운전을 해주었다. 덕분에 차 안에 있음에도 컨디션을 어느 정도 회복한 나는 기사님께 고맙다고 말씀드리며 스몰토킹을 시작했다. 기사님은 며칠 전 홍수 이야기를 하며 그때는 어디 있었냐고 물었다. 내가 홍수 그 중심에 있었다며, 나이트바자에 있었다고 말하니 진심으로 걱정해 주던 기사님. 그리고 한국의 연예인 누구를 아느냐며 휴대폰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호텔로 가는 내내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빠이를 떠나 아쉬웠던 마음이 썽태우 기사님으로 환기가 되는 듯했다. 무해한 웃음과 순수한 사람들. 역시나 사랑스러운 도시.


로터스 팡 수안 깨우 호텔


이번에는 수텝(올드타운 왼쪽) 쪽을 돌아보기 위해 님만이라는 동네에 숙소를 잡았다. 꽤나 유서 깊은 호텔이었지만 굉장히 저렴했던 로터스 팡 수안 깨우 호텔. 체크인을 한 후 매니저로 보이는 분이 짐을 옮겨주며 호텔과 방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180개의 객실과 30년의 전통이 있는 호텔이라며 자랑스럽게 말씀했다. 처음 숙소를 예약하려고 찾아볼 때 으스스한 분위기가 있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조금 오래된 호텔이라 그런 듯했고, 모든 시설이 너무나도 훌륭하며 굉장히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하루 2-3만 원 정도의 놀라운 가격에 비해 굉장히 넓은 객실, 벌레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통창으로 보이는 치앙마이 뷰도 완벽하고 수영장까지 갖춘 호텔이라니. (습기도 전혀 없었다!) 정말 사랑해요 치앙마이!


썽태우를 타고 호텔로 오기까지 속이 좋지 않아 과연 선데이마켓을 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가격에 비해 너무나도 훌륭한 시설을 보니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기분. 썽태우 기사님도, 호텔 매니저님도 오늘 선데이마켓은 꼭 가보라며 추천을 해주실 정도였으니 힘을 내서 가보자며 의지를 굳혔다. 일단 미니밴과 썽태우를 타고 오느라 무리한 허리를 푹신한 침대에서 쉬어준 후 선데이마켓이 열리는 왓프라싱으로 향했다.


선데이마켓의 시작, 왓프라싱


선데이마켓은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야시장이다. 올드타운 중앙에 위치한 왓프라싱 앞부터 타패게이트까지 약 1km나 이어져 있고, 길 중간엔 푸드마켓이 따로 형성되어 있어서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전쟁에 나가기 전 총을 장전하듯 일단 atm기로 가 1,000바트(한화 약 40,000원)을 인출하였다.

개인적으로 태국에서는 한 번에 많은 돈을 인출하길 추천한다. 수수료가 220바트(한화 약 8,800원)라 뒤늦게 생각해 보니 돈을 아끼기 위해 조금씩 자주 인출한 게 오히려 수수료를 많이 낸 격이 되었다.

이 금액만 쓰자고 스스로와 다짐한 후 왓프라싱에서부터 구경을 시작했는데, 입구부터 질 좋고 예쁜, 그리고 가격까지 아름다운 수공예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치앙마이는 예술가의 도시로 유명한데, 유리, 그림, 가방 등을 장인의 손길로 갈고닦은 제품이 많았다. 핸드메이드가 아닌 제품들은 빠이에서 본 가격보다 더 저렴한 제품들도 보이고 부스 마다도 가격이 다르니, 치앙마이 선데이마켓에 가게 된다면 먼저 시장 전체를 둘러본 이후에 물건을 구매하길 추천한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부스 중 오른쪽부터 구경을 하며 걸어가는데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여행을 할 때 발길 닿는 대로 그저 걸어 다니는 편이라 여행하는 동안 한국인을 만날 기회가 드물었는데, 과연 가장 커다란 시장이자 축제의 공간이었던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


나혼자 홀로, 나혼자 맥주
치앙마이 선데이마켓에서


선데이마켓 안에서는 따로 술을 파는 곳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맥주 하나를 사 와 야시장 부스에서 구매한 만두와 카오 소이와 함께 노상에 마련된 목욕탕 의자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이 넓은 시장 안에 빽빽하게 줄지어 이동하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인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오랜만에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국내 여행을 혼자 자주 다니긴 했지만, 이전의 나는 다이어리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매일 혼자 여행을 다니거나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채웠었다. 하지만 허리가 아픈 이후엔 집에 혼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외출하더라도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극도로 줄여야만 했다. 누군가와 약속을 하면 아픈 티를 내기 미안해서 당일에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도 약속을 취소하지 못하거나 먼저 집에 가겠다는 말을 잘 못해 무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성격에도 맞지 않고, 평소 생활과도 맞지 않는 병을 얻어서 이렇게 나를 외롭게 만드나 생각도 했었지만, 이제는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혼자 있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오히려 혼자가 더욱 편하다. 내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쓰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혼자라서 편하다는 생각으로 즐겼지만, 빠이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친구들과 가족들 얼굴이 오래 떠올랐다.


음식을 먹으며 잠시 앉아 쉬었음에도 발과 허리에 조금 통증이 있어서 타패 게이트까지는 구경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미리 봐둔 부스만 들렀다가 호텔로 돌아가자며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때 눈에 띈 북바인딩 부스.


북바인딩 노트 부스


치앙마이를 나타내는 귀여운 코끼리가 각인된 핸드메이드 바인딩 노트의 가격은 300바트였다(한화 약 12,000원). 네 식구가 하루종일 만들었다는 사랑스러운 디자인이 가득한 노트들. 이것만은 꼭 기념품으로 사고 싶었다. 내가 노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디자인을 먼저 고르면 원하는 글자를 그 자리에서 각인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2024년에 치앙마이에 온 것을 기념하고자 코끼리와 함께 LET’S TRAVEL THE WORLD 2024 CHIANGMAI가 새겨진 노트를 골랐고, 노트 뒷면에 새길 문구로는 허리디스크 재활의 의지와 골목(alley) 여행의 의지를 담은 내 유튜브 채널명인 "Let's Ally"를 적어서 건네주었다.


그녀는 글자 ‘Ally’를 디자인해서 넣어도 되는지 물었다. 나는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고, 그녀는 웃으며 정성스럽게 나의 이름을 새겨주었다. 하나의 선도 허투루 긋지 않으려는 치앙마이의 장인 정신이 새겨진 우아한 노트가 완성되었다.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소중하게 노트를 받아 들고 부스를 나왔다. 더 이상 선데이 마켓에도 여한이 없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볼트를 불러서 호텔로 돌아갔고, 나는 북바인딩을 하는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북바인딩도 취미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LET’S ALLY


여행 전에는 밥도 먹기 싫을 만큼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꽉 채워져 있었는데, 뭉쳐진 답답함이 느슨해지면서 빈 공간이 생기니 그 사이로 새롭게 하고 싶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빠이에서는 악기, 치앙마이에서는 북바인딩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이 여행이 잘 되고 있다는 방증인 듯해 기분이 무척 좋았다.


모든 삶이 불확실한 선택들로 가득한데, 앞만 보고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확신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자꾸 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를 오롯이 감당하고 책임지는 혼자만의 여행을 통해서, 나는 내가 살며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고, 자신을 믿게 되었고, 선택에 대한 확신도 얻게 되었다.


비록 혼자 발톱을 깎지 못하고, 양말을 신는 것도 힘겹고,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마음껏 하루를 계획할 수는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골라내면 앞으로의 삶은 더욱 나답고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 설렘이 생겨났다.


사실 내게 직업이란, 그저 돈벌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아 왔다. 그러다 허리디스크로 퇴사하게 되었을 때, 솔직히 내 뜻대로 마음껏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이 불안했을 뿐 직업에 대한 애정이나 아쉬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허리로 인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여짐으로 인해 내가 불안함을 느꼈던 건, 그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현재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이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만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었다. 먼저 허리가 무리하지 않도록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필요했고,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니 비로소 서울에 대한 사랑과 미련과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나는 허리디스크와 공생하는 삶임을 받아들였다.  나의 모든 자유의 기본값은 허리여야 함을 인정하니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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