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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타운에서 찾아 헤맨 인생 커피와 나의 인생

by keemondo

태국 북부 지역은 커피 생산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치앙마이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여행지에 대한 만족도를 기본적으로 꽤 크게 깔고 갈 수 있는 곳이다.


나 또한 치앙마이로 떠나자고 결심했을 때 가장 기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커피였으므로, 걷다 무작정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구글맵의 리뷰로 추정한 커피 맛집을 찾아가보기도 했으며, 현지인의 직접적인 추천을 받아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녀온 카페에서 태어난 이래 가장 맛있는 라떼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치앙마이 올드타운에서 찾아 헤맨 인생 커피와 나의 인생을, 그리고 인상 깊었던 올드타운의 카페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Fern Forest Farm


가장 먼저 다녀온 곳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인 Fern Forest Farm.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내가 머물렀던 림위앙 호텔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라 제일 먼저 다녀오게 되었다.



수풀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정원이 마치 차원을 이동하여 판타지 세상으로 들어온 듯했던 별장 카페. 예쁜 드레스를 입고 와서 내가 요정이야, 라고 사진 찍기에는 좋았으나 명성에 비해 커피 맛은 특별하지 않아 아쉬웠다.



내가 마셔본 커피는 직원의 추천으로 이 카페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타이 티와 에스프레소를 섞은 커피였는데, 뒤늦게 리뷰를 읽어 보니 대부분 음식이나 케이크를 칭찬하고 있었다. 나 또한 여유롭게 케이크도 한 조각 먹어보고 싶었지만 30분 동안 모기를 29군데나 물리는 바람에 모기에게 쫓기듯 나온 곳.


뜻밖의 빠른 회전율을 자랑하는 카페였다.

(이후에 알았는데, 치앙마이의 대부분 식당 혹은 카페에서는 모기기피제를 달라고 하면 주신다고 한다.)


54, 1 Singharat Rd, Si Phum,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태국


2. Cafe de Chill in CNX


두 번째는 한국에서부터 가고 싶었던 '바트커피'라는 카페를 찾아갔는데, 바트커피는 보이지 않고 Cafe de Chill in CNX라는 아기자기한 카페가 눈에 띄었다.

찾아온 카페를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아늑한 분위기와 야외 바테이블에 이끌려 이 새로운 카페에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여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카페 내부에는, 사장님께서 취미로 그리신다는 그림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취미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훌륭했던 작품들이라 과연 예술의 도시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림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으니, 손님이라기엔 자연스러운 발걸음의 누군가가 카페로 들어섰다. 바로 사장님의 어머니셨다. 인사를 나누고 그림을 마저 구경하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내곁으로 와 팔로 붓질을 표현하시면서 "my daughter"라고 자랑스레 말씀하셨다. 나는 "Very beautiful"이라 대답하며 양 손으로 엄지를 들어올렸다. 어머님께서 크게 미소를 지으셨다.


딸의 그림을 좋아하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예뻐 보이셨는지, 어머님은 내게 "사진 찍어줄까?" 라며 이전보다 더욱 친근히 여쭤보셨다. 그리고선 카페 곳곳을 배경으로 어떤 포토그래퍼 보다도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주셨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모녀.


사장님 어머니께서 찍어주신 사진


이렇게 친해진 사장님과 어머님와 함께 꽤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사실 나는 배우 공유의 오랜 팬인데, 갑자기 한국 배우 '공유'를 알고 있냐며, 팬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처음 공유 님 팬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땐 "어머님 제 사랑의 라이벌이시군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저 드라마에서 봤어~ 정도가 아니라 그들은 정말이지 지극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팬이었다. 단지 한국의 한 배우를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그 여행의 루트는 철저히 그의 발자취를 따랐는데, 일부러 부산행 열차를 타고 부산까지 다녀오고, 영화나 드라마 속 장소 뿐만 아니라 모교인 경희대학교까지 찾아가보셨다고 했다. 이렇게나 누군가의 팬일 수도, 아니 누군가를 극진히 사랑할 수도 있구나. 나는 오랫동안 이 배우의 팬이라 말해왔지만, 그녀들의 사랑 발치에도 못 미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제가 졌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한참을 함께 웃으며 나눈 한국에 대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배우 공유 님에 대한 이야기.

어머님의 말씀을 영어로 수시로 통역해주시면서 한국인을 좋아한다며 웃으시던 사장님과 수줍게 휴대폰을 꺼내어 공유 님의 사진으로 가득찬 갤러리를 보여주시는 어머님 덕분에, 한없이 관광지이자 낯선 곳이었던 치앙마이가 이틀만에 친숙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치앙마이 곳곳에서 보이던 Fried Icecream을 먹어 봤는데, 바삭한 빵 속에 아이스크림을 꽉 채워 튀겨낸 치앙마이식 디저트였다.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지만 생각보다 빵이 눅눅하지 않고 바삭해서 맛있었던 메뉴.


웰컴티에 서비스 바나나 머핀까지 받아서, 몸도 마음도 무척이나 풍족해진 카페였다.


28 Moon Muang Rd Lane 6, Si Phum,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태국


3. TWENTY MAR


모든 여행지가 그렇겠지만, 나라별로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유독 유명하다고 소문난 카페나 맛집, 여행지들이 있기 마련이다.


평소 취미가 네*버맵과 구*맵 구경하기인데, TWENTY MAR는 바로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올드타운 카페였다.



성수동에서 볼 수 있을 듯한 분위기에 인생 라떼를 마셨다는 후기가 꽤 많아서 굉장히 기대를 하고 갔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인상깊지 않았던 라떼. 당황스러웠다.


아이스를 시킨 게 잘못이었을까. 따뜻한 라떼를 먹었어야 했던 걸까, 싶었지만, (워낙 명성이 자자했던 터라 기대가 컸던 탓도 있겠다.) 성수동에서 극찬하며 먹었던 아이스 라떼 맛을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사장님께서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내리는 커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커피에 대한 사랑이 절로 느껴지던 카페임은 분명했다.


Three Kings Monument, 216 Pra Pok Klao Rd Soi 1, Tambon Si Phum,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태국


4. Persimmon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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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뚜악 야시장으로 걸어가다 발견한 Persimmon Cafe는 커다란 식물이 감싸고 있는 빨간색 외관이 예뻐 보여 눈길이 갔다. 가까이 가보니 카페 내부에서는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한 외국인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늑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야시장으로 걸어가는 내내 눈에 아른거려, 다음날 아침에 꼭 들러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치앙마이는 한국보다 2시간이 느리기 때문에 일찍 문을 여는 카페조차도 한국에서의 내 카페인 타임을 훌쩍 넘길 때가 많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조식을 먹고, 오픈 시간에 맞춰 카페에 도착했다.



외부에서 볼 때는 아늑한 테라스 자리가 예뻐서 들러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내부가 훨씬 마음에 들었던 카페. 하지만 워낙 개방감을 좋아하는 나라, 이번에도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직원분께 추천받아 마시게 된 아몬드커피는, 에스프레소가 들어간다고 했지만 아몬드라떼 특유의 밍밍함 때문에 콜드브루에 아몬드 우유를 섞은 듯한 맛이었다. 감탄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던 Persimmon Cafe의 아몬드 커피.



일상을 시작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다가, 나도 그들과 함께 일을 해보기로 했다. 유튜브 편집을 하려고 치앙마이에 온 이후 찍은 영상들을 확인하는데, 문득 내가 한국에서는 잘 입지 않던 의상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보는 나의 모습에는 낯선 느낌이 들었으나, 그 마음 뒤로 쑥 고개를 내미는 진짜 마음은 '편하다'였다.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고, 나 또한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내가 입고 싶은 대로 마음껏 입을 수 있는 건 나의 불편함 보다 타인의 불편함에 더욱 신경을 쓰는 한국의 분위기와 유교의 정서상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번 치앙마이 여행에서, 내가 더우면 그저 시원함만을 목적으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정말 너무나도 좋았다.


누군가는 그냥 입으면 되지, 뭐가 그렇게 특별한 일이냐 싶겠지만, 작은 지방 도시, 그리고 그속에서도 노년층의 비율이 높은 작은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는, 옷 하나를 입을 때조차 내가 입고 싶은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며 입어야 했다.


이렇게 옷을 입는 것부터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과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자유’라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고(물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래서 '옷'이라는 카테고리만 두고도 서울에서 지낼 때의 나는 좀 더 행복했고, 홍대에서 살 때 인생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었다.


Persimmon Cafe에 앉아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나의 행복의 결정적 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94 Singharat Rd, Tambon Si Phum,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태국


5. Pran Cafe


림위앙호텔에 머물 당시 사장님께서 여러 현지 정보와 맛집들을 알려주셨는데, 커피를 좋아한다면 꼭 마셔보라고 추천해주셨던 Pran Cafe.


현지인 커피 맛집이라니 ! 커피 맛에 대한 기대로 심장이 뛰었다.


치앙마이에는 숙소와 카페를 겸하는 곳이 많은데, Pran Cafe도 숙소를 겸하고 있었다. 앤틱하면서도 로맨틱한 인테리어에 감탄하면서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라떼를 시켜 보았는데,

이게.. 대체 뭐지...?



완벽한 스팀과 완벽한 우유의 양, 그리고 태국 원두와 에티오피아 원두를 블렌딩하여 직접 로스팅한 완벽한 맛의 원두까지. 정말이지 1%도 부족할 게 없었던 완벽 그 자체의 라떼.


Pran Cafe의 라떼는 치앙마이에서,

아니 내 34년 인생에서 마셔본 커피를 통틀어 가장 맛있었다 !



이후에도 여러 카페를 다니고 커피를 마셨지만, Pran Cafe에서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날 원두를 사러 일부러 올드타운을 찾을 정도였다.

(이때 사온 원두는 아끼고 아껴 마시다가, 3개월이 지난 며칠 전에 마지막 남은 원두를 갈았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다녀와보길 두 손 들고 추천하는 바이다.


Tip) 작은 컵+에스프레소 2샷+우유는 조금+핫으로 꼭 드셔보시길 추천한다.


3ข 2 ซอย Tambon Si Phum,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태국


6. Single Origin Store THAPAE


타패게이트에 숙소를 잡고 나이트바자에 갔다가 홍수 재해를 겪은 다음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잠시 올드 치앙마이에 들어왔다.


이틀 동안 먼저 머문 곳이라 왠지 마음의 고향 같기도 하고, 비가 많이 와서 문을 닫은 곳이 많았던 타패 지역과는 달리 올드타운은 지대가 높기 때문에 영업하는 곳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대부분의 가게가 영업 중이었다.


커피를 마신 후엔 타패에 있는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빠이로 가야할 일정이라, 멀리 가지는 못하고 타패게이트 바로 앞에 위치한 올드타운의 싱글오리진스토어를 찾았다.



타이에서 상을 받은 농장의 원두라니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되었고, 구글 리뷰를 읽어 보니 타이에스프레소가 맛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평범하다 느껴졌던 맛... 그리고 밀크초코라떼 맛인데, 이름이 왜 '타이 에스프레소'였을까?

(함께 받은 커피 노트를 보니, 타이+라오스+브라질+콜롬비아가 블렌딩 된 원두였다. 심지어 '싱글오리진스토어'지만 싱글 오리진도 아니라니 !)


하지만 사실 치앙마이에서 마신 대부분의 커피는 한국의 커피를 생각하면 모두 평균 이상의 맛이다. 조금 더 완벽하냐, 덜 완벽하냐의 차이였기 때문에, 프란 카페에서 궁극의 라떼를 마신 후 내 혀의 기준이 높아져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5 Mun Mueang Rd, Tambon Si Phum,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태국


8. Kalm Cafe (Kalm Village Chiangmai cafe)


치앙마이 올드타운의 마지막 카페는 '캄빌리지 (Kalm Village)'라는 복합문화공간 내 위치한 카페였다. 이곳은 림위앙 호텔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카페 두 곳 중 한 군데였는데, 프란카페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마지막 날 무리해서 캄카페 스케줄을 추가해 다녀왔다.



역시 믿고 가는 사장님 추천 카페답게, 캄카페의 원두도 무척 신선하고 맛있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무리해서 다녀왔더니,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허리 통증이 꽤 심해져 커피맛도 물론이고, 전시 공간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부분이 참 아쉽다.


만약 치앙마이에서 캄카페를 간다면, 일부러 커피만 마시러 가기 보다는 시간을 여유로이 두고 전시회와 소품샵 구경도 찬찬히 함께 해보길 추천한다.


14 Phra Pok Klao Rd Soi 4, Phra Sing,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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