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책 중에 하나인 <어린 왕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초등학생 때부터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고 사는 문장이다. 눈으로 보이는 건 정말 '보이는 것'일 뿐인데, 우리는 '보이는 것'에 쉽게 지고 만다. 생김새나 소유한 것들로 사람을 빠르게 판단하기도 하고 곧잘 현혹되기도 한다. 이날도 그런 실수를 저지른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Wicker Park'에 도착한 후, 근처의 작은 상점들과 카페를 둘러보고 나서 공원에 앉았다. 우리나라에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로 번역된 로맨스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 공원은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과 따스한 햇살, 만개한 튤립이 가득했다. 사람들과 자연 모두 완벽한 봄을 누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벤치에 앉아 따스한 햇살 속에서 봄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합류했다. 문득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 공책에 공원을 그리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카트를 밀면서 공원에 들어왔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카트 안에 든 호스를 보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노숙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공공화장실 쪽으로 금세 사라졌고, 나는 다른 노숙자들처럼 그가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고 넘겨짚었다.
내 예상과 달리 할아버지는 긴 호스를 들고 공원에 다시 나타났다. 뭐지, 하면서 상황을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공원에 있는 꽃과 나무에 하나씩 물을 주기 시작했다. 내가 완벽한 봄이라며 만끽한 장면은 할아버지의 손에서 나왔던 걸까.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왜 이렇게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는지. 그러지 말자고 살면서 수백 번은 다짐한 거 같은데 또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걸 멈추고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물을 잔뜩 머금은 튤립을 가리키며 "How beautiful!"이라고 말했다. 튤립이 참 아름답지 않냐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Yeah, because of you"라고 대답했다. 당신 덕분에요, 라는 내 대답을 들은 할아버지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공원은 할아버지에게 특별한 공원이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추억이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요즘 통 비가 오지 않아서 한 번씩 물을 주고 있다며, 물을 주고 나면 꽃들이 활짝 웃는 것 같다고 말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은 그날 공원의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공원을 가던 길에 놓여 있던 'You are beautiful'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너는 정말 아름다워'라는 문장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눈이 아닌 마음이 좇는 아름다움을 가꾸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