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

by 김우드

갑자기 오늘 점심 약속이 생겼다. 이틀전, 이제는 언니, 동생 하며 지내고 있는 첫 회사 동료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갑작스러운 만남이 성사됐다. 그녀는 나를 만나러 동탄으로 오겠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일주일에 두 번의 약속은 잡지 않는 나지만, 갑자기 만나도 마음에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라 즉흥적인 제안에도 흔쾌히 응할 수 있었다. 주말에는 시할아버지 장례식에, 화요일에도 서울에 다녀온 터라 몸이 피곤했지만, 나 역시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언니를 꼭 보고 싶었다. 마지막 만남은 2024년 여름, 아이와 함께 집에 놀러 왔을 때였다.


언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를 만나러 왔다. 두 살 차이가 나는 언니는 2년 전 출산 후 퇴사해 육아 중이다.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국제학교에서 보내고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그녀는 글로벌 의료기기 회사의 해외영업팀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또래에 비해 승진도 빠른 편이었다. 육아에만 집중된 삶이 지치고 무료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그녀는 늘 긍정적인 태도로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요즘은 종종 통역이나 번역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일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아이를 출산한 뒤 그녀에게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아이 사진으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 늘 자신의 사진을 유지하는 그녀에게 한 번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언니는 왜 아이 사진으로 프로필 안 바꿔요?"

"이건 내 카카오톡이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엄마라는 역할이 자신을 전부 설명하지 않게 하고 있었다.


오늘 대화 중 내 마음을 깊게 울린 또 다른 얘기가 있었다. 그녀는 능력이 된다면 둘째를 갖기보다 입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 잘못 없이 버려지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며, 한 생명을 새로 낳는 것보다 이미 태어난 생명을 잘 돌보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고 했다. 이미 유기견을 두 마리나 키워온 그녀의 행보와 닮은 말이었다. 나는 그런 신념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우리는 네 시간 가까이 새해에 맞이할 각자의 새로운 도전과 삶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았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오로지 서로의 선택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고, '우리 나이에는 이래야 한다'는 말들 없이 각자가 선택한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존중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더 확신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2025.12.19

@keemwoo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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