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에 뒤처지는 나

그 사실에 주눅들지는 않아

by 김우드


점심 먹은 것들을 치우고 청소기까지 밀고 나니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어버렸다. 남동향 저층인 우리 집은 가을의 끝무렵부터 오후 두 시면 늦은 오후처럼 채광이 사라진다. 아침 햇살에 쨍하게 다른 빛을 내던 가구들도 채도가 확 낮아져,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가 된다. 겨울에 더 춥다는 단점만 빼면, 나는 해가 덜 드는 우리 집을 좋아한다. 너무 밝을 때는 적나라하게 맨 얼굴을 들킨 것처럼 불안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 모공, 피지, 잡티까지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거실에서 보이는 100m 거리의 아파트에 해가 가려지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야행성 동물처럼 슬슬 동굴에서 기어 나와 나만의 활동을 제대로 시작하게 된다.


집에서 바쁘더라도 꼭 사수하고 싶은 나만의 시간이 있는데, 바로 홈카페 타임이다. 예쁘게 차려 먹는 끼니만큼, 어느 카페 못지않게 차려놓고 마시는 커피도 왠지 나를 존중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 기분에 맞게 선택한 컵에, 조금은 귀찮은 반자동 커피머신으로 내린 에스프레소로 농도를 조절해 만든 카페라떼 한 잔. 책 읽기 좋은 잔잔한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고 있으면, 사실 어떤 인기 있는 카페도 부럽지 않다.


커피와 책 한 권.

우리 집 고재 테이블 위에서의 독서 시간.

잔잔한 가사 없는 재즈.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나와 보내는 소소한 시간들이 만족스러워질수록 남들이 좋다는 것, 지금 인기 있는 것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진다. 갑자기 떠올랐다가, 너무나 빨리 사그라드는 '유행'. 최근에는 키티 캐릭터를 AI로 나의 이미지에 넣어 업로드하는 것이 유행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따라 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늘 그랬다.


나는 늘 유행에 뒤처진다.

근데 나는 이 사실에 주눅이 들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좋다. 유행에 덜 민감해질수록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는 내가 좋다.



2025.10.27

@keemwoo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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