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회복이 오래 걸려요

암 수술 후 몸이 낫고 난 뒤에야 시작된 진짜 여정

by 김우드

두 달 가까이 하혈을 하며 선지 같은 핏덩어리를 쏟아냈던 나는, 더 이상 산부인과 방문을 미룰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20대 때부터 다니던 익숙한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끌림이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검색을 통해 찾아간 곳은 개원한 지 딱 1년 된, 두 명의 여자 원장님이 함께 운영하시는 산부인과였다. 평일에는 바쁜 직장인 여성을 위해 저녁 8시까지 야간 진료를 하고, 점심시간조차 없는 병원이었다.


나는 그 병원에서 은인을 만났다. 두 원장님 모두 훌륭하시겠지만, 나는 박원장 님을 만난 것이 내 인생 가장 큰 행운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청천벽력 같은 ‘암’이라는 단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 나를 일으켜주신 분. 원장님은 아마 의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분명 겸손하게 말씀하시겠지만, 진심 어린 눈빛과 따뜻한 말투만으로도 환자를 치유하시는, 천직의 의사였다.


알고 보니 원장님도 난소암 환자셨다고 했다. 내가 절망 속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을 때, 스무 살 초반에 난소암으로 항암 치료까지 받으셨다는 경험을 조심스레 들려주셨다. 30대 중반의 나도 ‘암’이라는 단어가 그렇게도 무서웠는데, 그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공포와 두려움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원장님이 산부인과에서 '종양' 관련된 분야를 선택하신 이유도, 본인과 같은 아픔을 가진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셨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경험자로서 건네주시는 모든 이야기가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마음 같아선 매일 원장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꾹 참았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고백한다.


암 진단 후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원장님은 내가 걸린 암과 현재 상태에 대해 목이 쉬도록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모님과 함께 오셔도 되고, 남편 분과 또 오세요."

걱정할 가족들을 위해 같은 설명을 기꺼이 또 해주시겠다는 말이었다.


엄마와 함께 방문했던 날, 엄마를 본 원장님은 먼저 눈시울을 붉히셨다. 아마도 본인이 투병하던 시절 곁에서 함께 아파했을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랐을 것이다.

"어머니들만 뵈면 저도 눈물이 나요." 하시며 휴지로 눈물을 훔치시던 원장님.

그 순간, 우리 모두 휴지가 필요했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수술 후 실밥을 제거하러 갔을 때는 진료실에서 직접 나와 나를 맞아주셨고, 이후 방광염이나 질염 등으로 방문할 때도 늘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원장님의 다정함 덕분에, 치료도 받기 전에 병이 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이렇게 슬픔에는 5단계가 있다고 한다. 나도 암 진단 후 이 단계를 하나씩 거쳤다. 수술 후 병기가 '자궁내막암 1기 A'로 확정되고, 항암과 방사선 없이 추적 관찰만 하면 된다고 들었을 때,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수술 상처가 아물고 체력만 회복되면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몸이 좋아져 갈수록 이상하게 마음은 더 힘들어졌다. 어느 날 작은 후유증으로 병원에 들렀을 때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정확하게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말씀하셨다.


"상처 같은 건 금방 회복돼요. 근데 마음의 회복은 오래 걸려요. 괜찮아진 줄 알다가도 어느 순간 우울해지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요. 진짜 괜찮아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 말처럼, 나는 수술 후에도 '슬픔의 5단계'를 다시 겪었다. 체력이 돌아오고 있었지만 계절이 바뀌며 찾아온 여름에 나는 다시 무기력해졌다. 한여름에도 가디건을 챙기던 내가 더위를 심하게 느끼기 시작했고, 몸이 지치자 마음도 가라앉았다.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 무력감 사이로 '자궁을 잃은 상실감'까지 조용히 스며들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과 엄마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고, 아이를 귀여워하는 남편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다행히 우울의 터널을 지나 수용 단계에 닿았고, 나는 그 여름을 조금씩 흘려보낼 수 있었다.



샤워 후 알몸으로 마주한 내 모습에서, 아랫배의 수술 자국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체력도 수술 전 수준으로 돌아온 듯하다. 자궁적출 후 방광염이나 질염에 조금 더 취약해진 것 같지만, 약을 먹고 관리하면 금방 나아진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살아보니, 정말 시간도 약이었다.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순간들이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다. 하지만 원장님 말처럼 마음의 상처는 아직 덜 아문 것 같다. 터지지 않도록 꿰매져 있을 뿐, 그 실밥을 푸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많은 것이 담담해졌다고 믿고 있지만, 아팠던 날들을 떠올리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상처는 어느 예기치 않은 순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강연에서 자신의 아픈 경험을 담담하게 나누는 사람들을 볼 때면 늘 신기했다. 처음 듣는 나도 눈물이 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저렇게 평온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잊힌 게 아니라, 상처가 꺼내질 때마다 수없이 슬픔의 5단계를 지나며 스스로 '현재의 괜찮아진 나'를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 그 상처가 한 조각씩 마모되어 모래처럼 부서져 바닷물에 흩어지듯 멀어졌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나의 상처와 얼마나 솔직하게 마주하고 대화했느냐였다. 억누르지 않고 외면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제3자의 시선으로 나의 아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순간.

그때가 비로소 마음이 온전히 회복된 순간이 아닐까.



@keemwoo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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