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순간에 스며든 온기
국가건강검진을 하고 왔다. 남편 회사에서 가족 1인까지 제공되는 건강검진에 갑상선 초음파를 추가로 받을 수 있어 함께 받았다. 다행히 갑상선은 깨끗했다.
사실 마음 한쪽에 걸리는 것이 있어,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주말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어도, 명상을 해도, 책을 읽어도, 청소기를 돌려도 마음속 잔잔한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제부터는 가슴이 답답하고 아플 정도로 증상이 심해졌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오늘 아침에도 상태는 그대로였다.
검진을 마치고 혼자 밖에서 시간을 보내면 나아질까 싶어 근처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 내에 입점된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며 책을 읽으면 조금이라도 진정되길 바랐다. 잠시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지만, 평소처럼 책에 집중이 되지 않아 몇 장 넘기다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고 답답한 듯 숨을 깊게 들이쉬기를 반복했다.
카페를 나와 여러 매장을 둘러보는 동안에는 잊히는 듯했지만, 다시 마음은 무거워졌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집으로 가는 버스 한 대가 마침 서 있었다. 문 앞에 서자 기사님께서 "지금 점심시간이라서.."라고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나에게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 따뜻함에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다른 버스를 타고 가는길, 기사님은 아직 등록되지 않은 정류장에 잠시 차를 세워 기다리던 승객을 태웠다. 그리고 손님에게 "이곳은 아직 등록된 정류장이 아니에요."라고 다정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모른척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배려에 또 마음이 따뜻해졌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쌍둥이 형제가 엄마와 함께 내 뒷 자리에 앉았다. 말문이 막 트인 듯한 아이들은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쉴 새 없이 엄마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 "난 이쪼그로 가고 싶은데"
엄마/ "아빠 차로는 갈 수 있는데, 버스는 정해져 있어서 빙 돌아가는 거야."
아이/ "왜?"
아이/ "뛰어가면 다칠수이쓰니까 천처니 가야대."
아이/ "엄마 시원하게 해 주면 안 돼?"
아이/ "나 안아서 빨간 손잡이 잡게 해 주면 안 돼?"
엄마/ "한 번만 잡게 해 줄게. 읏쌰."
아이/ "파란 손잡이도 잡고 싶은데."
아이/ "xx이가 키가 크면 잡으세요."
아이의 질문 공세에도 엄마는 차분하고 다정하게 대답했다. 그 대화를 듣는데 절로 미소가 났다. 그 미소 뒤로는 이유 모르게 코 끝이 찡해졌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마음이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오늘 버스에서 마주한 따뜻한 순간들이, 내게 큰 위로가 되어준 것 같다.
백화점에서 마셨던 라떼도, 구매한 새 옷도 달래지 못했던 마음을 기사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아이들의 귀엽고 순수한 대화가 조용히 어루만져 주었다.
마음의 치유는, 이렇게 뜻밖의 순간에 만나는 작은 온기였다.
2025.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