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우 씨 곧 외근 나가죠?”
저 멀리서 희미하게 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내 모습이 모니터에 비쳐 보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시계는 벌써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에 반드시 다녀와야 하는 업체가 있었다.
“잠깐만 이쪽으로….”
황급히 옷매무새를 만지며 과장님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 그러니까 마무리를 지어야 해요. 더 이상 일정이 밀리면 안 될 것 같아.”
과장님의 말씀에 나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게 가방을 챙기고 동료들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들 손을 흔들어 나를 배웅했다. 동료들의 눈은 여전히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보았다. 우중충한 하늘이 비를 예보하고 있었다. 곧 쏟아지려나.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쏟아지듯 내리는 거 말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 왜 그럴까 몇 번 생각을 해봤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남자라면 자기 몸은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초등학생 시절 국술원이라는 무술 도장을 다녔다. 국술원은 이 층 정도 되는 건물의 지하에 위치했었는데, 그곳은 원래 주차장이었던 곳이었다. 사부님께선 신고를 하시고 건축물을 개조하셨던 걸까. 나이가 든 지금은 순수함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물음만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 공간이 그저 좋기만 했다.
내가 그곳을 좋아했던 건, 바로 도장이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왜냐고? 그 이유를 말하자면 먼저 도장의 구조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곳은 원래 지하 주차장이었던 곳인 만큼 도장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지하실로 향하는 내리막 길을 통해야만 했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그곳은 특이한 냄새로 가득했다. 지하실 특유의 곰팡내와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흙내가 섞인 독특한 향이었는데, 나는 그 냄새가 참 좋았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그곳에서 킁킁거리며 향을 탐닉하곤 했다.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돌아오는 건 넌 참 이상하다는 반응뿐이었다. ‘그게 뭐가 좋아?’라든가, ‘곰팡내는 몸에 안 좋아.’ 같은 소리. 하지만 너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너도 비 오는 날의 골목길을 좋아한다고 말했었지.
그때는 그런 말이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이별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주변에 존재하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감정을 되새기게 되는 것.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그랬다. 과거에 발목 잡혀 나아가지 못하는 건 오로지 너의 잘못이라고.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지만 털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조금이라도 더 너에 대한 감정과 기억을 마음속에 두고 있기를 바랐다면? 그게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러고 싶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학생이 되었다. 많은 친구들이 학원을 다녔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봉고차에 올라타, 다시 학원으로 등원하는 삶.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해가 지고 나서야 건물을 나와 다시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그런 삶.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나는 그러기가 참 싫었다. 그 시간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두 번 등교하는 삶이라는 건 당시의 나로선 너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공연히 나는 학원 따위 다니지 않아도 얼마든지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실제로 당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친구 중 공부를 매우 잘하는 녀석도 많았으니까. 문제는 나는 그런 애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성적이 떨어졌고, 중학교 2 학년 이 학기 기말고사를 기점으로 아버지의 인내심이 바닥 나 버리고 말았다. 나는 집에서 엄청 혼이 났고, 벌로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보통 분이 아니셨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동네 근처의 여느 학원이 아닌 학교와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종합학원에 나를 등록하신 거다. 나는 반항했다. 처음에는 학원에 가기 싫다고, 다음에는 학교 근처 학원을 보내 달라고. 하지만 나의 요구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가출이든 뭐든 반란 계획을 세워도 봤지만, 그 후폭풍을 감내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14 년간의 경험으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결국 나의 계획은 미수에 그쳤고.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서울의 유명한 동네 이름을 딴 학원이었다. 당시 우리 시에는 애들이 많이 다니기로 유명한 종합학원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곳은 그중 하나였다. 당연하게도 그곳에서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내를 나가야만 겨우 볼 수 있었던 교복들로 가득 메워진 공간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의 기분은 그렇게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 하나 신경 쓸 것 같지 않은, 그런 느낌을 그곳에서는 내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그곳에서도 친구들이 생겼다. 모두 우리 중학교에 다니는 녀석들이었다. 그 수는 총 다섯이었는데, 그게 우리 중학교 인원의 전부였다. 중학교 3 학년은 녀석들과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가기 싫다고 울부짖던 학원이 친구들이 생기니 가고 싶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항상 학교가 마치면 같이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갔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하고, 경주 내기를 하기도 하고 그랬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될 나이가 된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당시에 우리 지역에서 명문으로 유명했던 A 남자 고등학교를 일 순위로 지원했다. 유일하게 경수 녀석이 남녀공학을 가고 싶다며 자기 집과 가까웠던 B 고등학교를 지원했다. 그 녀석은 우리 중에서도 특출 나게 여자에 관심이 많았던 놈이었다. 다들 그 사실로 녀석을 놀렸다. 의리 없는 놈. 당시에는 그 어느 것보다도 우리에겐 친구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다. 바보들. 지금 생각하면 녀석이 머리가 참 좋았다.
한 가지 말해줄 게 있다. 학교를 지원할 때 내가 간과했던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우리 동네가 평준화 지역이었다는 점이었다. 평준화 지역에서는 거주지역과 지원학교의 거리가 꽤나 중요하게 여겨졌다. 나를 제외한 A 고등학교 지원자 세 명은 학교와 집이 꽤 가까웠다. 우리 집은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었는데, 그게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되고 말았다.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지원할 때 우리 시는 평준화가 된 지 겨우 이 년 차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당연한 상식이 그때는 상식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날이 꽤 추워질 즈음에 배정받은 학교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다섯 명 중 두 명만이 지원했던 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그 주인공들은 A 고등학교에 배정된 상우와, 남녀공학을 지원한 경수였다. 나머지는 다른 학교로 전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난감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 많던 희망 학교 중 제일 후순위로 작성한 학교에 배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배정받은 학교는 1년 전 개교한 신생 고등학교로, 우리 집이나 학원과는 매우 먼 신도시에 위치해 있었다.
중학교 마지막 학기가 끝났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학원에서는 우리가 배정된 고등학교를 조사했다. 선행학습 같은 차기 수업 일정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강의실을 나서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본우야. 우리 학원에서 너만 유일하게 그 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더라. 아마 거리가 멀어서 그런가 봐. 네가 학원을 계속 다닌다면 우리가 물론 관리는 해 주겠지만, 일단 상황이 그러니 알고는 있어야 할 거 같아서. 학원 계속 다닐 건지 부모님이랑 한번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
그 많은 학생 중 단 한 명. 그게 바로 나였다. 부모님께서는 전적으로 내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우리는 일단 입학 전 까지는 학원에 다녀보기로 결정했다. 학원은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인근의 학생들로 가득했다. 학원 두 블록 너머의 B 고등학교나, 한 정거장 거리의 C 고등학교의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배정된 신생 고등학교를 포함해서 A 남고나, A 여고에 배정받은 학생들도 학원에는 별로 없었고, 우리는 자투리 처리반같이 ’그 외 고등학교 반‘으로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