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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민 Dec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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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줄을 지어 사람들이 내리고, 우리도 줄을 지어 버스에 올랐다. ’ 학생입니다.‘ 카드가 단말기와 접촉하며 소리를 냈다. 버스 안은 만석이었다. 나와 호열이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손잡이를 잡았다. 여자아이들이 탑승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들 또한 생각보다 많은 사람 때문에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이호열이 그녀들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녀석이 앉아 있었다. 자리가 그새 하나가 났나 보다. 호열이는 유리와 나리를 부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앉아.”


그렇게 말하곤 녀석은 나를 끌고 버스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우리가 있던 자리를 살폈다. 자리에는 유리가 앉았고, 나리는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유리가 나를 보는 듯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버스는 종점을 향해 달렸다. 어린이 대공원이 있는 동네는 꽤나 멀었다. 종점이 가까워질수록 버스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도 조금씩 사라졌다. 어느새 버스 안은 한적해져서, 나와 이호열, 그리고 나리 모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나와 호열이는 버스의 오른쪽 좌석에 자리를 했고, 나리와 유리는 왼쪽 열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들은 끊임없이 재잘댔다. 휴대전화를 보면서도 이야기했고, 창가를 보면서도 이야기했다.


차고지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종점에 도착했다. ‘어린이 대공원.’ 조금 더 걸어가니 아치형 현판에 적힌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정문을 통과했다. 오르막 길이었지만 걷는 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길을 따라가니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주변에는 상록수와 낙엽수들이 함께 솟아 있었다.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호수 주변을 걸었다. 시간이 정오에 가까웠다. 머리 위로 떠오른 태양이 떨어트린 햇살은 일렁이는 수면에 가로막혀 난반사했다. 별다른 걸 하지는 않았음에도 기분이 꽤 좋아졌다. 평소 호열이와 걸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었다. 경험이라는 건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하는지 또한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다리 앞에 도착했다. 다리는 호수를 가로질러 반대편까지 뻗어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곳을 건넜던 적이 있었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꽤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산책로에서처럼 넷이서 함께 걸을 수는 없었다. 1열 종대로 우측보행을 했다. 호열이, 유리, 나리, 그리고 나 순으로 다리를 건넜다. 다리의 중간에는 자그마한 쉼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여자애들은 사진을 찍을 거라고 말했고, 나와 호열이는 알겠다고 했다.


“쟤들은 왜 저렇게 사진 찍는 걸 좋아할까?”


난간에 팔을 걸친 채 호수를 응시하던 호열이가 툭 하고 말을 뱉었다.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여러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유리와, 열과 성을 다해 그녀를 찍어주는 있는 나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당당히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감탄했다. 풍경이 매우 아름답기는 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커다란 호수와 그 주변을 둘러싼 숲은 이곳이 우리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곳이라는 걸 주항하는 듯했다.


“본우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끔뻑끔뻑하니, 나리가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호열이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나와 나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응, 왜?”


나는 쿨해보여하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짐짓 무신경한 말투로 말했다.


“사진 같이 찍자.”


“나랑?”


내가 멍청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나리가 킥킥대며 웃었다.


“아니, 너랑 나랑, 호열이랑 유리랑. 다 같이.”


애석하게도 나는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운동회 날이라든가, 소풍을 갔을 때라든가 할 때 항상 학교에서는 단체 사진을 찍곤 했는데, 나는 그게 참 싫었다. 그냥 모두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개념 자체가 싫었다. 그렇다고 ‘안 찍을래요!‘하며 대놓고 거부하고 그랬던 건 아니지만, 나는 단체사진이 싫었다.


신기하게도 그날의 나는 아무런 반항심 없이 순순히 그녀의 제안에 응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포토스폿으로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은 ’ 어떻게 하면 안 찍을 수 있을까?‘ 가 아닌, ’ 어떻게 하면 나리 옆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올 수 있을까?‘ 였다. 머릿속으로 많은 표정과 손짓을 연구했지만, 딱히 명쾌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평소보다도 더 어색한 표정과 동작으로 사진을 찍었고, 그런 나를 보며 나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타러 가자.”


나리가 롤러코스터가 그려진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어느새 둘둘 짝을 지어 걷고 있었다. 나와 나리, 호열이와 유리. 뭔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호열이 쪽을 곁눈질했다. 녀석은 침을 튀기며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호열이의 눈은 유리를 향해 있었고, 유리의 눈은 길바닥을 향해 있었다.


“나 어릴 때 여기 와봤어.”


나리가 입을 열었다.


“아, 진짜?”


“응, 부모님이랑 같이 왔었는데 재미있었어. 그때랑 변한 게 없는 거 같아.”


“나도 어릴 때 부모님이랑 같이 왔었는데.”


내가 말을 받았다.


“동생이랑 나랑, 부모님이랑 넷이서.”


“맞아, 너 동생이 있었어. 남동생 맞지?”


나리가 새삼 놀랍다는 듯 말했다.


“응, 맞아.”


“잘 지내? 동네에서 몇 번 봤던 거 같은데.”


“잘은 지내는데, 말을 안 들어서 문제야.”


나리가 작게 웃었다.


“너도 근데 부모님 말씀 잘 안 듣잖아.”


“어떻게 알았어?”


“너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 아주머니께서 혼내는 걸 몇 번은 본 거 같은데?”


“그랬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리는 그 모습을 보며 킥킥거렸다. 우리가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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