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일기

2-10 / 3-1

by 세타필

나와 호열이는 함께 쪽지를 읽고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씩 웃더니 내 등을 한번 툭 하고 쳤다. 좋겠다 인마. 나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 키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너 키가 작으니까 하지. 아니, 나도 안다고, 열받게 왜 그 이야길 하냐고. 그게 중요하냐, 지금? 아니 그건 아닌데…. 인마 이거 부끄러움 타네? 아닌데. 얼굴 빨개진 거 봐라. 그만해라. 뭘? 아, 그만하라고. 내가 그만하기 전에 너 얼굴이 먼저 터지겠는데? 아이, 그만하라고.


놀랍게도 꿈 같았던 이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장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나는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한 명이 없는 학원을 굳이 다닐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과, 내신보다는 수능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큰 부분을 차지했다. 집에 말씀을 드렸더니, 부모님께서도 동의하셨다.


결정을 내리며 나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십 대 시절이란 대학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위한 하나의 준비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순진한 소년이었다. 그런 나에게 내가 나리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라든가, 나리와의 관계 같은 것들은 그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과 같은 것일 뿐이었다.


그 결과 나리와의 관계 또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물론 학원을 그만둔다고 해서 그녀를 만날 수 없다거나 한 건 절대로 아니었다. 만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논리로 나는 휴대전화를 만들지 않았고, 그래서 당연하게도 그녀의 전화번호라던가, 미니홈피의 주소 같은 걸 알고 있지 못했다. 사실 이건 휴대전화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에 매우 서툴렀던 나라는 사람의 무신경함 때문일 테지만.


아무튼 나는 나리와 연락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아무런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런 수단을 만들고자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원을 그만두려 담당 선생님들 찾아 가면서도, 오히려 왜 그녀가 나에게 연락할 방법 하나를 물어보지 않는지 섭섭해하기만 했다.


그렇다. 나는 정신 나간 녀석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를 좋아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때를 생각하면, 그런 모습이었던 나를 좋아해 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호열이와 유리도 그날 이후로 굉장히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내가 나리에게 초코우유를 받은 날, 유리는 담당 선생님을 뵙고 강의실로 돌아오는 남주에게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남주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며 거절했지만, 유리는 남주의 손에 초콜릿을 밀어 넣었고, 녀석은 어쩔 수 없이 손에 네모난 선물 상자를 들고 우리가 있던 강의실로 돌아온 것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이 사실을 호열이로부터 알게 되었다. 녀석은 남주와 아주 친한 종현이 녀석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물론 종현이는 호열이가 유리를 좋아하는지는 꿈에도 몰랐겠지. 그건 나와 녀석만의 비밀이었으니까. 말을 하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녀석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렇게 실연이라는 최종 선고를 받은 녀석은 유리를 위해, 자신을 위해, 모두를 위해 마음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본인은 대입만을 생각하며 3년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분명히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했다. 녀석이 진학하는 학교는 남고이긴 했지만…. 딱히 그 말 이외엔 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해의 겨울이 지나갔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얼었던 시냇물이 다시 졸졸 흐르기 시작했다.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는 조금 더 성장한 채로 인생의 새로운 막에 들어서게 되었다. 고등학교. 수능과 대입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곳으로 말이다.



3-1



이야기는 비교적 수월하게 끝이 났다. 나는 업체의 담당자분과 마무리 인사를 하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을 여전히 흐렸다. 경비 아저씨에게 기분 좋게 인사하고 회사로 복귀했다. 돌아오는 길은 헤매지 않았다. 덕분에 조금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사무실로 복귀한 후, 별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땡. 시계가 퇴근 시간을 모두에게 알렸다. 눈치를 보던 나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로에게 인사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저기 멀리 주차된 내 차가 보였다. 운전석에 앉아, 후. 한숨을 한번 내뱉었다. 시동을 걸었다. 날씨가 흐리니까 운전을 조심하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휴대전화를 연결했다.


열심히 도로를 달렸다. 사실 계속 달리지는 못했다. 달리다가, 섰다가, 기어가다가. 다시 섰다가 달리기를 몇 번 반복했다. 확실히 퇴근 시간에 운전한다는 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뭐 해야지 어쩌겠어. 집은 가야 할 거 아냐.


줄기를 잘라낸 나무는 뿌리부터 다시 새로운 줄기가 돋아서 나온다. 왕성한 성장의 시기에 받은 상처는 겉보기엔 나무에 아무런 문제를 주지 않지만, 사실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할 뿐, 결코 그 나무는 상처 입기 전의 나무가 될 수는 없다.


나도 그랬다. 수레바퀴 아래서 짓눌린 것 같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별이 주는 상처는 시간이 지나며 아물겠지만 결국 내 삶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인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너에게도 그런 상처가 남아있겠지.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이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겠지.


운전을 하면 자꾸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고개를 흔들었다. 차와 차를 넘어 겨우 집에 도착했다. 어휴. 오늘 평소보다 조금 늦었더니 주차할 공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지하 깊숙이 주차했다.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풀었다.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하루가 끝났다. 양발로 구두를 대충 벗어 던졌다. 비틀비틀 걸으며 가방을 침대 위로 던졌다. 그리고 내 몸도 던졌다. 침대는 푹신했다. 눈을 감아보았다. 10초만 주면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쯤은 안 씻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루쯤은 양말 신은 채로 뒹굴뒹굴해도 괜찮지 않을까? 조금 고민해 보니 안될 것 같았다. 그래, 씻고 자야 더 개운하지. 몸은 조금 더 누워 있자며 비명을 질러댔지만 나는 기어코 일어섰다.


저녁엔 보통 샤워를 30분 정도 한다. 꽤 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30분 내내 몸을 씻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그냥 서서 물을 맞는다. 수도꼭지를 돌렸다.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온 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한 살씩 나이를 먹더니 어느새 열아홉이 되었다. 수능을 치고 대학에 진학했다. 휴대전화도 만들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렇게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 나는 이거론 성공할 수 없겠다. 수능 성적표를 받은 날 든 생각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절대 아니라고, 이건 시작일 뿐이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1년 동안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확히 반대였던 걸요. 마음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꾹 참은 채, 선생님께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30분 정도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경청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인생 처음으로 마주했던 큰 시련이었으니까. 가장 큰 문제는 이 시련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 시험의 결과는 결국 내가 쌓아 올린 노력의 결과였기 때문에 나는 다른 누군가를 잡고 탓을 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나의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를 오롯이 책임지는 것,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그 목표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세워졌느냐가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비겁한 변명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그 시절 나의 주위에서는 수능이라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신경 써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매우 강했다. 집에서는 물론이었고,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도 사촌 누구는 전교에서 몇 등을 했다더라 하는 말이나, 누구는 올해 연세대에 갔더라는 말 밖엔 들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철저하게 다른 것을 경험해 볼 기회를 배제당한 채 그냥 공부라는 것만이 인생에서 해야 할 사명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오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 데 너만 왜 그랬냐는 말에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결국 공부라든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이런 것들 모두가 내가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진 목표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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