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그린 인생(중)
해안가 언저리에는 바다를 마주한 절벽이 있다. 높지 않은 절벽 아래로는 파도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고개를 들면 태양 아래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절벽 곳곳에는 푹신한 밀사초가 푸른 장식을 하고 있고, 그곳엔 어김없이 갈매기가 둥지를 틀고 있다. 괭이갈매기는 이곳 절벽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3달, 이제 홀로서기할 준비가 되었다. 친구들은 하나둘 둥지를 떠나갔다. 둥지 끝 돌부리에 우뚝 선다. 엄마만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가야 한다.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한 적은 없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다들 그렇게 떠났다.
날개를 펼치고 힘차게 발돋움한다. 아직 만족할 수 없지만 물속의 먹이를 찾아 정확히 파고들 정도로 활강 연습은 충분히 했다. 둥지여 안녕.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이제는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
해 질 녘이 되자 배가 고프다. 다른 갈매기 무리가 모인 곳이 보인다. 거리를 두고 내려앉는다. 모두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어디선가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동시에 날아오른다. 엉겁결에 따라간다. 그들이 향한 곳은 섬들을 오가는 유람선이었다. 마치 꼬리처럼 기다랗게 흰 거품을 만들며 어디론가 향하는 유람선.
거품 주위에는 난류에 휩싸여 방향을 잃은 물고기들이 반짝인다. 갈매기들 대부분이 거품을 뚫고 나오며 물고기를 물고 하늘로 날아간다. 거품 위에 내려앉은 갈매기도 있고, 한 무리의 갈매기는 유람선 옆에서 날개를 펼쳐 같은 속도로 날고 있다. 작은 사람이 손에 든 비닐주머니에서 노르스름한 과자를 꺼내어 던져 준다. 주변 갈매기들은 익숙한지, 날아오른 과자를 그대로 받아먹는다. 괭이갈매기는 아직 사람이 낯설었다. 뒤돌아 희뿌연 거품으로 향했다.
배가 멀어지자 일제히 날아올랐다. 해변가 암석 주위로 모여들었다.
태양이 비추던 세상을 밝은 달이 대신하고, 갈매기들은 꿈속에 빠져든다.
괭이갈매기는 하늘을 날 때가 좋았다. 배가 고프지 않다면 종일 하늘 높이 날며 누구보다 빠르고 멀리 갈 수 있을 터였다.
내일은 바다 멀리까지 날아가기로 한다.
아침이 되자, 유난히 푸른 하늘에 설레었다. 든든히 먹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돌 틈 웅덩이에서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랐다 사라진다. 괭이갈매기는 날아오른다. 물이 들어오고 있으므로 서둘러야 한다. 하나 둘 셋. 순식간에 물 위를 솟구친 물고기를 부리로 낚아채서 하늘로 솟아오른다. 물고기는 작았지만 심하게 몸을 흔든다. 높이 날아오르며 부리에 힘을 준다. “꽈아오” 소리 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달려들었다. 부리로 머리를 쪼았다. 순간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고, 물고기는 바다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물고기도, 덤벼들던 갈매기도 멀리 사라졌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어제처럼 유람선을 뒤따라 가기로 한다.
문득, 어릴 적 엄마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조나단이란 멋진 갈매기가 있었다. 조나단은 누구보다 높고, 빠르고 아름답게 비행할 수 있는 갈매기였다. 먹이보다는 하늘을 나는 것이 좋았던 그는 비록 친구들에게 쫓겨나기도 했지만, 비행을 동경하는 갈매기를 이끌어 주었고 어느 날 저 멀리 천국으로 날아가 불사조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 먹이 걱정 없이 마음껏 날 수 있을까. 먹이 보다 하늘을 나는 것이 더 나은가. ‘꼬르륵’ 굶주린 배는 명료하게 답한다. 짝을 만나 푹신한 둥지에 알을 낳고 따뜻하게 품다가 똑같은 괭이갈매기를 다시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것이 삶의 이유가 아니냐고.
여기에 좋고 나쁨, 낮고 높음을 따질 수 없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지만, 본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괭이갈매기는 어느새 유람선에 익숙해졌다.
무리에 섞인 한 마리의 갈매기가 되었다.
하늘을 나는 순간은 유람선이 왔을 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