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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Sep 20. 2024

불친절한 여행 안내서, 카뮈의 <결혼>

결혼 (알베르 카뮈/장소미 옮김)

<이방인>도 쓰기 전, 청춘 시절에 에세이를 썼다고? 카뮈의 결혼은 순탄치 않았는데? 내 결혼 생활에 무언가 도움을 주려나?


책 표지 중앙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행복한 연인의 사진이 있다. 한 손을 꼭 맞잡고 다른 한 손은 서로의 몸을 끌어안는다. 여인은 눈을 감고 행복을 느낀다. 사진 주변은 온통 하늘색의 거친 표지가 감싸고 있다. 아직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꽤나 매혹적인 디자인이다. 푸른 표지의 요철, 행복한 연인, 파도소리, 짜디짠 바다 내음.  


<결혼>은 짧은 분량의 에세이라지만, 철학자의 묘사가 모호한 만큼 오래 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짧게 쓴 글이 아니라, 압축한 글이었다.

문제는 ‘해상도’만이 독자의 몫이고, 감히 외연의 확장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혼’이라는 세속적 계약 행위로 나를 꾀어낸, 카뮈의 에세이를 홧김에 한마디로 일축한다. ‘불친절한 여행 안내서’ 같으니! 이미 책을 집어든 호기심은 사라지고 호기롭게 압축 해제하기로 한다. ‘낙장불입’의 독서 버릇 탓이다.

꾸역꾸역 읽기 시작한다.


신들의 영광이 묻혀 있는 폐허를 향해, 바다는 주인 잃은 개처럼 하얀 포말을 흘리며 핥고 또 핥는 곳.

뜨거운 청춘을 견디지 못한 카뮈가 발가벗고 뛰어들어, 스스로를 대지와 바다의 전령으로 내던진 곳.

알제리의 [티파사]다.


아, 어쩌면 좋은가.

나 역시 카뮈의 열병에 전염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지중해의 아랫입술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알제리.

본다는 것, 이 땅에서 본다는 것, 이 교훈을 어찌 잊겠는가? p22
나는 이곳에서 영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것은 무제한으로 사랑할 권리다. p23


카뮈는 [티파사]의 황홀한 광경에 온몸을 적시며, 들끓는 심장으로 기쁨을 묘사한다.

그리고 환희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티파사]를 증언한다.

행복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바보가 왕이고, 나를 즐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를 바보라 부른다. p24


자연과 하나 되어 사랑의 숨결을 피부로 느낄 때, 비로소 인간이라는 직업을 완수한 것이리라.

자연이 곧 세계이며, 어쩌면 애초에 인간에게는 그 자연에서 행복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은 것일지 모른다.


다음으로, 알제리의 [제밀라]는 어떠한가.

정신이 사멸하는 곳이요, 메마른 침묵 속에 나를 벗는 곳이다. 여기에서는 미래나 안락이나 출세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나는 인간이 가끔 집착하는 진정하고 유일한 문명의 발달은 바로 자각하는 죽음을 창조하는 것임을 직감한다. p36

살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기 때문에 삶을 재고할 뿐이다.


사랑은 집착할수록 진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삶의 흐름이 희석할 뿐이다. 사랑은 희망과 체념의 양면성을 지닌 채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알제]는 풍요와 궁핍이 뒤섞인 ‘씁쓸한 진실의 오아시스’와 같다.

저돌적인 청춘이 온몸으로 부딪는 아찔한 스릴의 현장. 그곳은 바로 죽음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아닐까. 30년 살이 꿀벌이 있다면 [알제]의 사람들과 같으리라. 군중에 섞여 맹목적으로 일하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쓸쓸히 쪼그라든다. 그렇다고 청춘이 죽음 따위가 무서워 도망칠쏘냐. 차라리 야만인이 되어, 피하지 않고 서둘러 인생을 해치운다.

생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을 품고서.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이다. p55


[사막] 역시, 육체와 순간이라는 이중의 진실에 대비되는, ‘영원’한 침묵의 체험장이다. 육체와 순간의 무심함은 상대적으로 도드라진다.


눈을 감고, 말라버린 바닷물의 짜고 거친 감촉을 느끼고 압생트 향을 온몸에 바르며 행복에 도취한다. 카뮈는 내게 속삭인다. ‘인간과 대지의 공명’을 통해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 삶을 관조하며 행복을 향해 살아갈, 아니 사랑할 의지를 불 지피는 의식적 행위가 바로 ‘결혼’이라고.


책표지는 마치 찬란하지만 거친 세상의 테두리 속에 액자처럼 둘러싸인, 부드러운 사랑, 행복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옮긴이 말을 인용하며 마칠 수밖에 없다. 옮긴이도 친절하지 않았다.

카뮈의 에세이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그의 언어들을 고스란히 인용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음을 깨닫는다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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