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에서 시작된 가교톡
자본주의를 먹고 자란 아들은 허세적 상금 사냥꾼이다. 아빠가 글 쓰는 걸 곁눈질로 보던 차에 독후감 대회에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이거 상금 받으면 다 내 거’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나중에 아빠에게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공책 2장에 앞뒤로 빼곡히 쓴 문장들을 아빠에게 내민다. 아빠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 전혀 모른 채 읽어본다. 아들이 읽은 책은 기상이변과 관련된 청소년 SF소설이었다.
아빠는 노트북을 펼쳐, 아들의 글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문장을 통해 줄거리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녀석, 생각보다 잘 쓰네 ‘
옮겨 적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아빠는 추석 귀성길에 독후감 생각이 떠올라, 넌지시 물어본다.
아빠 : 아들, 기상이변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씩 말해보기로 하자.
아들 : 싫어.
아빠가 먼저 말하니, 하릴없이 따라온다.
아빠 : 아나바다
아들: 쓰레기 줍기
아빠 : 에어컨 사용 줄이기
아들 : 버스 타고 다니기
아빠 : 비닐봉지 사용하지 않기
아들 : 분리수거하기
아빠 : 태양전지 패널 이용하기
아들 : 그건, 너무 비싼데… 안 쓰는 불 끄기
아빠 : 나무 심기
아들 : 음식 남기지 않기
아빠 : 오~ 열 개가 금방 나오네. 그런데, 이거 생각해 보니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방법이네. 환경오염이랑 기상이변이랑 어떤 관계가 있지?
아들 : 플라스틱은 땅에 묻히면 썩지 않아. 그럼, 나무뿌리가 잘 자라지 못해. 예전에 봤는데, 어떤 유명한 사람이 심해에 갔는데 신기한 걸 발견했대. 뭔지 알아?
아빠 : 도라에몽?
아들 : 아니야. 비닐봉지래.
아빠 : 와. 고래가 먹고 심해에서 죽어서 남긴 걸까.
아빠 : 이번에 읽은 책이 기상이변에 관한 책이었지? 주인공이 xx 이 맞아?
아들 : 응. 다른 사람도 있어.
아빠 : 아빠가 이해하기로는 미래에서 강아지가 현재로 넘어와서 그 강아지를 다시 돌려보내기 위한 모험 이야기로 보이는데. 강아지가 기상이변하고 관련이 있나?
아들 : 응. 그런데 강아지는 아니야. 공룡이야.
엄마 : 공룡 아니야.
아빠 : 뭔가 미지의 동물인가 보네. 그런데 그 동물을 잡으러 모자 쓴 남자가 쫓아다닐 정도면 중요한 역할이겠네.
아들 : 다시 미래로 데리고 가야 해.
엄마 : 미래에서 현재로 오면서 시공간이 뒤틀릴 수도 있고, 지구를 파괴하려는 악당들이 이용하려는 것 같아. 아들~ 책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이 뭐야?
아들 : 음, 커다란 기둥이 물에 휩쓸려서 밀려올 때?
엄마 : 그렇구나. 엄마는 기차 타고 가다가 홍수 때문에 물에 잠기게 되는 부분이 무서웠는데.
아빠 : 책에 어떤 기상이변들이 예로 나와?
아들 : 음… 산불, 홍수, 빙하가 녹고 폭풍이 불고.
아빠 : 현재에 살고 있는 주인공들에게 기상이변은 왜 생긴 거야?
아들 : 몰라. 기억 안 나.
엄마 : 나도 시리즈 중 4권만 읽어서 모르겠지만, 지금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것 아닐까?
아빠 : 독후감을 보니까, 플라스틱도 나오고,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 박사도 나오던데. 플라스틱 분해가 비결인 건가? 주제가 뭐지?
엄마 : 플라스틱 분해도 방법이겠지만, 그것보다는 특히 온실 가스에 대한 교육의 목적이 아닌가 싶어. 일반적으로, 이산화탄소가 주범이라고 생각하는데, 메탄이 더 큰 영향을 주거든. 단지 이산화탄소보다 양이 적으니까 뒤로 밀려난 거지. 여기서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분해할 때 메탄을 만들어 내지. 악당 로봇이 터지는 것도 메탄에 불이 붙은 거잖아.
아빠 : 아~ 역시. 아들은 이해했어?
아들 : 몰라.
아빠 : 그럼, 메탄을 줄이려면 결국 고기를 덜 먹어야 되겠네.
아들 : 안돼.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이 귀찮다는 듯이 말을 돌린다.
다음날, 평소라면 지나쳤을 기사 제목 하나가 눈에 밟힌다.
키다리 나무일수록 메탄 더 흡수한다
(동아사이언스, 24.9.17)
요약하면,
‘나무껍질이 메탄을 흡수하는 능력이 밝혀져, 키가 큰 나무의 기후 변화 완화 효과가 기존보다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7446
아빠는 기사를 보다가 어제 아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이거, 현실이었네. 또 하나 배웠구나’
아빠는 아들에게 묻는다.
아빠 : 아들, 어제 우리가 얘기했던 방법들, 그냥 말로만 끝내지 말고 하나씩 실천해 보는 건 어때?
아들 : 어떻게?
아빠 : 일단 나무를 심는 건 어떨까? 메탄도 흡수하고, 우리 주변도 더 푸르게 만들 수 있잖아.
아들 : 나무 심기… 좋아.
아빠 : 조만간 가족끼리 나무 심으러 가자. 그리고 다음번엔 우리가 같은 책을 읽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 책은 아들이 정하고~
책 속에서 길어 올린 고민을 함께 이야기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여정. 아빠는 이러한 대화가 새로운 가교톡 형식으로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빙긋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