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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Sep 28. 2024

어른이란 무엇인가?

죽을 때까지 어른을 향해.

태권도 학원에서 내일 1박 2일로 놀이공원에 간다고 한다. 아들은 이미 아빠와 둘이 서울에 가기로 했던 터라, 아쉬워하며 말한다.

아빠 : 가족 없이 1박 2일로 다녀올 수 있겠어?

아들 : 당연하지. 거기 2학년 애들도 있어. 엄마, 아빠 없어.

엄마 : 게임기 가져가겠대.

아들 : 자유시간이 많아서 게임하며 놀아도 된대.

아빠 : 그럼, 놀이공원 갈래?

아들 : 아니, 신청기간 지났어. 아빠랑 서울 갈래.


함께 저녁을 먹으며 엄마, 아빠는 맥주 한잔, 아들은 콜라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한다.

아빠 : 아들~ 어떤 사람이 어른이야? 아들이 생각하는 어른은 뭐야?

아들 : 음… 오래 산 사람.

아빠 : 나이가 많으면 다 어른이야?

아들 : 응. 20년 이상.

아빠 : 나이 많은데도 어른 같지 않은 사람도 있잖아. 아들의 영원한 친구~ 아빠처럼.

엄마 : 동생 아니고?

아빠 : 에이. 동생은 아니지. 그런데, 아들도 어른이 빨리 되고 싶다고 했지?

아들 : 만약에 스무 살 넘으면 주민등록번호 받고, 통장 열어서 카드로 보낼 거야. 그 돈으로 우리 집 관리비 내고.

아빠 : 응? 관리비? 아들~ 그 돈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꼭 써야 할 때를 위해 모아주는 거야.

아들 : 대학비?

아빠 : 아니. 나중에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

엄마 : 아들아…. 아빠가 생각하는 어른은 뭐야?

아빠 : 잠깐만, 아들~ 왜 오래 산 사람이 어른이야?

아들 : 엄마, 아빠처럼 술 마실 수 있으니까. 운전도 하고.

엄마 : 그건, 어른이 아니라 ‘성인’인가?

아빠 : 아, 그냥 법에서 정한 성인이네.

엄마 : 남편이 생각하는 어른은 뭐야?

아빠 : 자기가 한 말에 책임지는 사람?

아들 : 아빠는 어른 아닌데?

아빠 : 흠. 오늘부터. 지금부터.


엄마가 갑자기 웃으며 무언가를 찾으러 간다. 금방 돌아와 보여준 것은 생일 축하 카드. 아들이 엄마 옆으로 간다.

엄마 : 사랑하는 와이프. 늘 고맙고, 미안해… 어? 이거 아닌데. 그거 어디 갔지?

아들 :  4퍼센트 부족한 남편이~ 으흐흐. 스스로 부족하단 거 어떻게 알았어? 4퍼센트 부족하게.

아빠 : 응? 2퍼센트가 아니고? 아하하…

엄마 : 어디 갔지? 아빠가 10년 전에 써 준 카드 있는데. 엄마가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던 거.

아빠 : 오~ 없어? 뭔지 모르지만 다행이네.

엄마 : 없어져서 좋아? 그거 내가 찾아내고 말 거야.


아빠는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이어 본다.

아빠 : 자기 말에 책임질 수 있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해.

엄마 : 아빠는 두 번째만 할 수 있잖아.

아빠 : 부끄러워할 줄은 알아? 아하하…

아들 : 또 있어. 엄마의 잔소리에서 해방된 사람.

엄마 : 그건 안돼.

아빠 : 응? 엄마의 말을 안 듣는 사람?

아들 : 아빠도 계속 엄마한테 혼나잖아.

엄마 : 엄마한테 잔소리를 안 듣는다는 것은 혼자서도 알아서 잘한다는 거잖아. 그건 진정한 어른이지. 아빠는 왜 못 알아들어?

아빠 : 그래? 그런 의미로 이야기한 거야? 엄마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줄 아는 사람.

잠시 정적이 흐른다.

아빠 : 그것도 대단한 능력이지. 그럼, 엄마가 생각하는 어른은 뭐야? 아들을 언제 어른으로 인정해 줄 거야?

엄마 : 예전에는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알면 어른이라고 생각했거든? 지금은 아니야. 나 하나만 책임질 줄 아는, 일 인분의 역할을 하는 사람.

아빠 : 아, 자기 한 사람의 몫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

엄마 : 그런데, 아들을 낳고 생각이 바뀌었어. 나 스스로를 당연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아빠 : 꼭 돌봐야 돼?

엄마 : 내가 주변 사람들을 책임진다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빌려줄 수 있는 것. 우리 아들처럼 잘 키워낼 수 있는 것도 어른이지.

아빠 : 지금 자기 입으로 어른이라고 하는 거야?

엄마 : 응. 난 어른이지.

아빠 : 착각이야. 사람에 따라 다른 대우를 하잖아. 아들에게 하는 것과 나에게 하는 게 다르잖아.

엄마 : 도움이 필요하고 돌봐야 할 대상을 도와야지. 아빠는 아니잖아.

아빠 : 난 돌봐야 할 대상이야.

엄마 : 음… 하긴, 아픈 큰 아들이지. 내 팔자야..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들고 온다. 화면을 보여준다.

“어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표준국어대사전


아빠 :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아들은 아직 자라는 중이기도 하지만, 자기 일에 책임질 수 없어서 아이인 건가.

아들 : 아냐. 책임질 수 있어. 학교 가서 공부하고 집에 잘 오잖아.

아빠 : 그것도 있지만, 여기서 책임이라는 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도 포함될 거야.

아들 : 응! 만약에 경제가 나락(? 초등학생용어) 갔어. 그러면 시위할 거야. 종이 들고. ‘물러가라~ 물러가라~’

아빠 : 헉. 아이고 큰일 났네. 아들 어렸을 때 너무 많이 데리고 다녔나. 아들 기억나? 목마태우고 갔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태극기 부대로… 무서웠어.

아들 : 아니. 그건 기억나. 아빠가 레고 사줬고, 주변에서 초코파이랑 과자 줬어. 촛불 들고. 세 번쯤 갔나? 아빠가 목마 태워주고 사람들한테 ‘여기 길 없어요. 여기 막혔어요’라고 말한 것도 기억나.

아빠 : 아. 기억나는구나.

엄마 : 그리고 어른은 사회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지.


분위기를 보던 아들이, 틈을 노려 말한다.

아들 : 게임해도 돼요?


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자신만의 전문성으로부터 확장하여 논리적으로 드러내고 또한 상대방의 견해와 조율하는 교양인이 바로 어른이다.  
- 이시이 요지로, 후지가키 유코 <어른의 조건>


어른이 무엇인지 다시 돌아본다. 아빠는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인정하는 범위에서 책임지고 행동하는 것, 즉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되묻는다. 주변을 보면 과연 어른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어른의 정의에 따라 다르리라.

나이를 떠나 우리 모두는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내일도.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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