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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Oct 23. 2021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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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닿아 우리 팀에서 엄마를 인터뷰한 적 있다. 어쩐지 부끄러워서 내가 하진 않고 팀 동료 인터뷰어가 진행했다. 몇 주가 지나 편집본을 봤다. 이런 내용이었다.


“첫째 아이의 어릴 때 꿈이 의사였어요. 뭐든 뛰어났던 아이였으니, 지금 살아있다면 의사가 됐을 거예요. 생전에 자기는 의사가 돼서 아프리카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거든요. 한참 지난 후의 일이지만, 제가 했어요.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미용을 속성으로 배워가지고 의료진들이 인도네시아 작은 마을로 봉사활동 갈 때 따라가서 필요하신 분들 머리 커트를 해드렸어요. 코로나 때문에 해외는 갈 수 없으니, 요즘은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보살펴 드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어르신들 목욕시켜드릴 땐 제 몸이 되려 땀으로 흠뻑 젖지만 힘든 줄 몰라요.”


형의 꿈이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를 가는 거였다는 것도 엄마가 해외 봉사를 다녀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해외 봉사를 가면서 형의 꿈을 떠올렸다는 것은 몰랐다.


며칠 뒤 식사자리에서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해외 봉사를 가게 된 게 형 때문이었는지는 몰랐네"라고 말했다. 한마디 했을 뿐인데 엄마 눈에 눈물이 맺혔다. 우리는 한 가족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형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대화를 나누는 순간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아들을, 형제를 잃는 경험을 하게 되면 가족이 더 똘똘 뭉쳐 아픔을 이겨낼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가족이 네 명에서 세 명으로 줄어든 허전함은 각자의 삶에서 드러나고 각각의 슬픔으로 이어진다. 슬픔의 모양은 같지 않아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망가진다. 나는 형과 노는 순간이 없어져서 아픈데 엄마는 자기 꿈을 이뤄가던 형을 못 보는 게 아프다. 각기 다른 부분이 다쳤다 보니 일상을 다시 살아내는 과정에서 엄마와 나 사이에 갈등이 일기도 했다. 사춘기 때 특히 심했다. 난 형과 놀러 가던 기억을 엄마가 채워줬으면 했고 엄마는 형처럼 내가 의젓하게 꿈을 이뤄가길 바랐으니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화목했고 서로를 더없이 사랑했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어긋남이 꽤 있었다. 무엇이 잘못된 줄 몰랐기에 간극은 갈수록 넓어졌다.


간극은 서로 마음속에 품었던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조금씩 메꿔졌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지만 겉으로 드러난 얘기는 극히 일부만 보여준다. 오해가 쉽게 자라난다. 그래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한 거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엄마를 처음 만난 인터뷰어가 어떻게 아들인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끌어낸 걸까? 그의 인터뷰 스킬이 좋아서? 물론 영향이 있겠지만 극히 일부일 뿐이다. 비결은 단순하다.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상대를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지면 예외 없이 고유의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삶의 기초를 이루는 것들 -행복이나 슬픔, 용기 같은 감정-에 대해 물으면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품고 사는 가치관의 근원을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은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한다. 판단 기준도 사람이 아닌 나이나 직업, 직책 같은 것들이다. A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깐깐할 거야. B라는 직책에 오른 사람은 앞 뒤가 꽉 막혀있을 거야. 저 세대는 사고방식이 고리타분해서 말이 안 통해. 미디어에서는 사람들을 몇 마디 숫자나 단어로 표현하곤 한다. 때론 유명인의 삶을 조명하며 그것이 곧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적인 삶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 스스로를 돌아봐도 그렇지 않다. 몇 마디로 정의 내리기엔 우리의 삶은 꽤나 복잡하다. 본인만이 겪은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대신할 수 없고 형용사 몇 개로 표현할 수도 없다.


주변의 이야기를 하나 둘 수집하다 보면 편견이 깨진다. 모든 사람이 고유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길거리 저 무표정의 사람들이 사실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구나”라는 실감을 하게 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순간이 쌓일수록 세상은 더 따뜻해질 수 있다. 평범해 보이던, 자기 이름이 아닌 이름으로 이해당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고유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알 때, 우리는 타인을 조금 더 믿을 수 있고 조금 더 친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야기가 몇 개나 될까?


내 얘기를 하나 하고 싶다. 2주 전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브런치를 통해 제안 메일이 왔다.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친구였는데 요즘 말 더듬이 너무 심해져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5년 전에 써 둔 말 더듬 관련 글을 우연히 본 거다. 나도 여전히 말을 더듬기에 말 더듬을 고칠 수 있는 조언 같은 건 해줄 수 없었다. 다만 나는 그의 고민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도 32년을 살아오면서 나처럼 말 더듬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었기에 반가움이 컸다.


  말을 더듬으니 만나서 얘기하는  부담이었다. 메일로 계속 연락을 하자고 했다.  뒤로 펜팔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친구도 말을 더듬는 사람이었기에 내가 가진 어려움을 살면서 만나  어떤 사람보다도  알았다. 기쁜 마음에 오랫동안 마음에 묵혀둔 이야기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있다. 깊은 공감을 경험하고 있다. 메일 오면 무지 반갑다. 메일을  때면 마음이 표현할  없이 따뜻해진다.


놀란 건 일상에서 말 더듬이 튀어나오는 빈도가 눈에 띄게 낮아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언어 치료를 다니고 심리 상담을 받아도 낫지 않던 것이 말이다. 말 더듬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말 더듬을 완전히 극복했을 때 누군가 그 이유를 묻는다면 꼭 이 친구와의 이야기를 꺼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얘기를 신나서 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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