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Oct 18. 2021

10월 18일 월요일

마음만 바쁘게 움직인 월요일

1. 춥다

춥다. 정말 춥다. 주말 내내 보일러를 돌려 집을 데우고 검은색 목 긴 양말을 꺼내어 신고 출근한 날. 이렇게 예상보다 빠르게 양말 스타킹 반스타킹의 계절이 돌아오는구나. 아직 맨발로 플랫슈즈 몇 번 더 신고 싶었는데 그야말로 발등이 터져버릴 것 같은 추위가 왔다. 전기장판만은 이사 가기 전에 꺼내고 싶지 않은데.


작년 이맘때쯤 날씨가 어땠나 궁금해 월요일기를 하염없이 내려보았다. 쌀쌀했지만 춥지는 않았던 날씨들. 한강과 동네 산책을 부지런히 다니며 한낮에는 여전히 차가운 커피를 마셨구나. 오늘의 나, 뜨거운 루이보스티 두 잔으로 겨우 버텼다. 가을은 정말 이렇게 사라져 버리는 걸까.


2. 선생님

교직이수를 하던 대학 졸업반 시절 교생실습 나간 모교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었다. 아주 짧았고 딱히 내 꿈과 맞닿는 직업도 아니었기에 가슴이 뭉클하거나 호칭 너머의 어떤 감동이 오지도 않았다. 그저 언니나 누나보다는 선생님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정중하게 장난을 걸 때 혹은 선배들이 내 남편을 부를 적당한 말이 없을 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곤 했다. 늘 위트가 섞여있는 호칭이었기 때문에 그 역시도 적합하고 사회화된 장난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직을 하고 나는 만 6개월 차 선생님이 되었다. 모두가 선생이라 부르고 모두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직업. 처음엔 선배님도 아니고 그저 님도 아니고 대리님도 아닌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입에 맴돌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자연스레 모두를 그리 부르기 시작한다.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때로는 예의 바른 호칭인 것 같다가도 종종 등골이 오싹해지는 문장 속의 선생님은 어쩐지 더 냉랭하게 느껴진다.


3. 재택근무

작년 추석부터 시작한 남편의 재택근무가 거의 끝날 모양이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시작했고 저녁 퇴근시간도 대중없이 늘어지기 시작한다. 그 덕에 우리 집 부엌은 파업 중. 저녁마다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빈도수가 늘어났다. 밥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둘이 살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해 먹으니 만족도는 내려가고 점점 불필요한 다툼만 늘어간다. 나는 언제나 남편보다 1-2시간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주로 다툼의 이유는 나의 배고픔이 동반된 하염없는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혼 초부터 남편은 요리학원을 다니고 음식을 도맡아 했다. 나는 그저 밥만 있어도 뭐든 잘 먹는 편이긴 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누구라도 예민하게 구는 사람이 그 집안일의 포션을 가지고 가는 것이니까. (나는 청소와 정리정돈에 매우 예민한 편이니 부엌에선 빠지겠다.)


그저 철없는 막내딸처럼 남편이 오기만을 오늘도 손꼽아 기다리며 누워있다. 이왕 철없이 구는 거 남편이 계속 재택근무를 하면 참 좋겠다는 절절한 희망의 기도를 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10월 11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