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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20. 2021

12월 20일 월요일

눈이 잔뜩 내린 주말을 보낸 월요일

1. 미신 같은 것

얼마 전에 발견한 사실인데 나는 꽤 다양한 미신을 믿는다는 거였다. 예를 들면 머리를 북쪽에 두고 자지 않는 것이라던가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귀신이 좋아하는 시끄럽고 붐비는 장소에 들렀다가 집에 오는 것 같은 것. 그리고 이삿날에 꼭 밥솥을 먼저 넣으라는 말도. 굳이 나는 하지 않더라도 남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라도 하는 편이었다. 이사를 하고 침대 머리 위치를 고르면서 다시금 생각했다. 모르면 몰랐지 알면서 모르는 척할 수 없더라고. 아무리 미신이더라도.


2. 눈

눈이 왔다! 거의 몇 주만에 일정 없이 고요하게 맞이한 주말에 함박눈이 왔다. 집 앞 아름드리나무가 이파리를 모두 떨궈서 아쉽게도 눈이 잔뜩 맺혀있진 못했지만 집 근처 낮은 동산 같은 공원이 스노우볼처럼 하얗게 변했다.


예전에도 이런 예쁜 눈이 내렸겠지만, 큰 눈이 오거나 번개가 치면 늘 24시간 핸드폰을 쥐고 이제나 저제나 일이 잘못될까 걱정하던 직업을 놓고 나니 그저 마음껏 예쁘다는 감상이 쏟아졌다.


남편과 차를 타고 장을 잔뜩 봐서 집으로 돌아와서 집 안 곳곳을 정리하고 쓸고 닦았다. 오랜만에 가족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눈 내린 산 모양의 디저트를 나눠 먹었다. 영화를 보고 눈 내린 놀이터를 한참 구경하면서 주말을 모두 보냈다. 남편이 이제야 비로소 집에 온 것 같다고 했다.


3. 취미

올해는 취미랄 게 없었다. 몇 년 간 꾸준히 배우던 꽃 수업도 대부분 마무리된 데다 여행이나 영화(꼭 영화관에 가서 봐야 직성이 풀리는 편)를 보는 것도 거의 0에 수렴하는 생활을 지속한다. 매번 코로나 때문이라고 코로나를 탓하면서도 자려고 누워 곰곰이 생각해면 코로나 때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정적인 취미가 필요한 건 아닐까 하면서 고민해본 적도 있다.


그나마 꾸준히 하고 있는 거라곤 필라테스가 유일하다. 입사 초기엔 회사에 출근할 이유가 되어주고 요즘은 퇴근할 이유가 되어주는 것. 취미라고 하기엔 그저 건강하게 잘 자기 위한 가벼운 운동일뿐. 내년엔 어떤 즐겁고 새로운 취미를 가져볼까.


4. 어린이라는 세계

얼마 전부터 ‘어린이라는 세계’를 시작했다. 예전에 읽었던 ‘거의 정반대의 행복’ 같은 육아 에세이라고 생각하고 미뤄뒀던 책인데 전혀 다른 책이었다.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선생님이 ‘어린이’라는 대상에 대한 무한 애정으로 쓴 책인데 첫 챕터를 읽고 몇 번이나 울컥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엄마 덕에 숱한 어린이를 만났던 나에게 어린이는 사실 귀찮은 존재였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면 나도 청소년인 주제에 어린이를 위해 산타 옷을 입고 유치원에서 선물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다. 어린이날이면 유치원에서 만드는 작은 소품들을 집으로 잔뜩 가져와 엄마는 나와 내 남동생 이름을 적어 방문 앞에 걸어주기도 했다. 그게 좋았지만 때로는 유치할 때도 있었다.


어느새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아이들이 귀찮지 않고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다. 물론 내가 언젠가 엄마가 되어 내 앞에서 울고 불고 하는 아이들 바라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감정이 앞서겠지만 우선 지금은 그렇다. 이런 시절에 이런 책을 읽게 되니 어린이에 대한 애정이 두 배로 늘어난다. 마스크를 쓰고 맞이하는 어린이들의 크리스마스가 행복하고 평안했으면. 내 크리스마스도! 눈 왔으면 좋겠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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