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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31. 2022

1월 31일 월요일

어쩌다 보니 여행 중에 쓰게 된 월요 일기

1. 부산

연애시절 남편과 여행 기분을 내기에 가장 좋았던 도시는 다름 아닌 부산이었다. 유난히 자주 갔던 제주도나 어쩐지 낯설어 가지 못한 강원도보다는 어딘가 서울과 닮아있는 부산이 오히려 새롭고 설렜다. 결혼을 앞두고 파크하얏트에서 호화롭게 하룻밤을 보냈던 날은 내 생일이었는데, 남편이 광안대교를 타고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남천동의 핫플레이스 고옥에서 장어덮밥도 사줬다.


작년 퇴사와 입사 그 사이 아주 짧은 휴식기간 동안 다시 부산을 찾았다. 기장에 새로 생긴 힐튼에서 어딘가 고립된 듯한 기분으로 여행을 즐겼다. 바다를 보며 산책을 하고 또 바다를 보며 잠에 들다 깨다 했던 날들. 남쪽이었지만 초봄이라 꽤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기장 해녀촌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먹어가며 여행 기분을 냈다.


설 연휴를 몇 달 앞두고 사실은 잦아드는 코로나의 기세를 바라보며 호기롭게 괌 비행기 티켓을 알아봤던 성격 급한 나. 괌에 있는 전 회사 동료가 전하는 현지 소식도 희망적이었고 주변에서 스멀스멀 신혼여행으로 유럽 여러 도시로 떠나던 아주 짧았던 호시절. 신혼여행도 아닌데 괌을 어떻게 가겠나 싶어 계획했던 부산 여행을 결국 여전한 시절과 함께 맞이했다. 다행스럽게도 숙소에서 도보 10분 내로 바닷가를 걸을 수 있었고 주변에 식당과 카페가 즐비한 번화가였던 덕에 분식도 시켜먹고 부지런히 포장도 해가며 하루 세 끼 꼬박 잘 먹고 잘 쉬었다. 연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부산은 뭐랄까 어색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든다.


2. 커피

부산에서 먹은 모든 커피가 모두 맛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첫날 먹은 에스프레소부터 마지막에 마신 라떼까지 하나같이 다 아름다웠다.


언더커피

광안리에 도착해 가장 먼저 간 카페는 언더커피 에스프레소 바. 에스프레소 두 잔과 플랫화이트를 마셨는데 왠걸 에스프레소가 너무 맛있어서 플랫화이트가 물처럼 넘어갔다. 나중에 찾아보니 베이커리류와 함께 곁들이면 더 좋다는 평기 많았다. 커피만으로도 이미 좋았지만.


더 리크 the lic

광안리 골목을 걷다가 들어가게  리크 커피는 뭐랄까 치앙마이 GRAPH 카페를 떠올리게 하는 인테리어였다. 나무로 마감된 가구들이 멋졌고 커피도 맛있었다. 충격적 일정도로 아메리카노가 부드럽고 향기로와서 다시 방문해 아메리카노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정도였다.


프루티

유기농 브런치를 지향하는 프루티는 20대 초중반의 영한 분위기에 조금 놀랐지만 어린아이를 동반한 힙한 가족도 함께 자리해 보다 놀랐다. 멜론 주스가 유명하다기에 한 잔 시켜봤는데 알고 보니 여기도 커피가 더 맛있었고, 우선 브런치 세상에 서울 가면 무조건 그 햄에 그 치즈 사 먹을 거야. 짧고 굵게 브런치를 먹고 나와 광안리 바다를 걷는 코스가 너무 맘에 들었다.


오디너리 부산

프렌치토스트의 성지라는 오디너리 부산. 인기만큼 맛있었고 포토제닉 한 자리의 경쟁도 치열해 보였다. 커피 맛있었고, 프렌치토스트가 정말 맛있었다. 버터가 카라멜라이징 되어있을 줄 몰랐지 뭐. 그리고 온갖 인스타그래믹한 소품과 간식 그리고 인테리어에 조금 동화 같은 마음이 들었다. 프루티에 비해 방문객 연령대가 조금 높긴 했지만 여전히 남자는 내 남편 하나였다는 점에서 약간 머쓱했다.


로우앤스윗 raw&sweet

아마 이 커피의 마지막 종점은 해운대 (해리단길) 로우앤스윗인 것 같은데 우선 이곳의 엄청난 매력 포인트는 SATC에서 보던. 뉴욕 여행에서 일부러 찾아다니던. 블루 컵에 따뜻한 음료를 서빙한다는 점이었다. 전포동에도 로우앤스윗이 있다던데 블루컵이 그곳에도 있는지는 모르겠고 저는 일부러 해운대로 찾아갔습니다. 사진을 봤거든요. 그런데 바닐라라떼가 너무 대단했고 보아하니 구움 과자와 타르트류도 유명한 모양인데 내가 갔을 땐 없었다! 아쉽다! 라떼류 정말 최고. 챔프 커피 원두를 쓴다던데 아무래도 챔프 커피 원두에 서울우유는 백전백승필승 조합인가 봐.


부산에서 이렇게 많은 커피를 마시게 될 줄 (그리고 오랜만에 카페인에 가슴 뛰어 불면을 맞이하게 될 줄) 몰랐는데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일부러 카페를 디깅한 건 아니었고 지도에 예전부터 찍어두었던 별들을 간간히 보며 산책하다 한 잔, 식사하러 가면서 한 잔 곁들였던 것뿐인데 기대 이상으로 모두 좋아 다행이었다. 부산 뭐 커피의 고장이었네 하면서 농담도 해보고.


3. 바다

커피 뭐 입 아프게 말해도 사실 부산에 오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넓은 해수욕장, 바다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나는 광안리를 해운대보다 선호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결과는 산책의 횟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단화를 신고도 산책을 하게 만든 광안리는 뭐랄까 너무도 부산의 상징인 광안대교와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곳곳의 아파트들이 너무도 클래식하고 (구해줘 홈즈에서 본 적 있었지만) 너무도 궁금한 모양새였다.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 반, 가족과 산책 나온 사람 반인 것 같던 곳. 그래도 그럼에도 해운대고 광안리고 둘 다 좋았다. 바다를 곁에 두고 사는 삶 어떤 느낌이 들까. 부럽다.


4. 로스트 펭귄

사실 이번 여행은 로스트 펭귄에 빈 방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매 번 로스트 펭귄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에어비앤비에 빈 방이 있다는 것을 보고 바로 예약을 했다. 언제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몇 계절 전에. 제일 유명한 꼭대기 층 루프탑을 예약하려다 어차피 두 명뿐인 우리 여행에 굳이 베드가 2개인 게 필요할까 싶어 안 했는데 다음번엔 루프탑에서도 꼭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다.


우리가 묵은 방은 2층이었는데 복층 구조에 위층에 베드와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아래층엔 (얼마 전에 당근마켓에 팔아버린) 가리모쿠 가죽 소파와 작은 텔레비전 그리고 가스레인지와 냉장고를 겸비한 부엌과 화장실이 있었다. 첫날 계단의 난간이 없어 조금 무서웠지만 금방 적응하고 2박 3일을 잘 보냈다. 주차 공간도 있고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도 가깝고 도대체 에어비앤비로서 부족한 부분이 전혀 없었던 숙소. 부산 광안리 로스트 펭귄 추천합니다.



5. 에필로그

물론 식사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다. 고옥에서 히쯔마부시도 먹고 해운대 삼삼횟집에서 접시밥에 회를 얹어 두둑이 식사를 마치고는 지리까지 시켜 잘 챙겨 먹고 나왔다. 낮잠 자기 전에 미리 테이블링으로 예약 걸어두었다가 초저녁 겨우 들어간 톤쇼우에서 버크셔 k 돈까스도 맛보았고, 다릿집의 엄청나게 실한 오징어튀김과 떡볶이도 놓치지 않고 모두 챙겨 먹었다. 남편의 성화로 아침부터 광안리 해수욕장을 건너 건너 해장하는 사람들 곁에서 수변최고 돼지국밥도 먹었다.


그럼에도 사실 먹었던 것들보다 가장 또렷하게 생각나는 건 아침 오후 저녁에 누렸던 바다 산책. 아침엔 추웠고 오후엔 더웠던 이상한 날씨를 즐기며 광안리를 좌우로 해운대를 좌우로 열심히 걸었다. 바다를 품은 대도시. 그리고 중간중간 빼놓지 않고 즐겼던 작은 컵 큰 행복의 커피들. 여행에서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을 다시금 기웃거리며 5시간이 넘는 귀갓길을 견뎌야겠지만 (숙소는 미리 해놓고 비행기도 기차도 전혀 예약하지 않고 자차로 내려온 용감한 우리 부부. 남편 고생해.) 그래도 즐거웠다! 2월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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