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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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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20. 2022

(번외) 월요일기를 계속 쓰는 이유

잠이 안 와서 그 이유를 곰곰이 고민해보았는데요

1. 월요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일본 학생 잡지에 나올 법한 중단발 샤기컷을 하고 어색했던 날.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못 자는 통에 오후엔 가급적 카페인 프리만 찾아먹던 계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날은 뭔가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 아카시아 꿀 라떼를 마셨다. 비도 오고 망원동 스몰커피의 풍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글감이 마구마구 샘솟는 바람에 그만. 하필이면 그날이 월요일이었고 나는 여러 가지 주제로 짧은 일기를 썼다.


몇 년이나 일기장을 손수 골라 그것도 3개월 전부터 가족과 친구들의 생일을 적어가며 살뜰히 챙겨 오던 일기 쓰기도 금방 회사원이라는 현생으로 복귀하면 멈춰지곤 했다. 사실 매 순간 일기를 괄시하게 되었다. 지나고 나면 나는 내 일기를 들춰보곤 했고 누구보다 열독 하는 독자였는데 독자인 미래의 나에게 점점 남겨진 일기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일기장 속 글귀들 중에는 일부러 뽐내고 싶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몇몇 멋진 생각과 묘사와 문장들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에 어떤 날은 불특정 다수에게 그 일기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하필이면 나에겐 브런치가 있었고 그저 매거진 하나만 새로 열면 그만이었다. 매 년 새해 컬러를 비교하고 노트의 크기와 얇기를 재고 따지며 일기장을 고르지 않아도, 몰스킨의 그 얇은 종이를 지킬 수 있는 얇은 똑딱이 펜을 늘 집에 구비해두지 않아도 되는 적당히 사적이고 또 때로는 공적인 일기장.


2. 왜 월요일인지

이 질문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월요일 저녁의 루틴이 주는 기분 좋은 ‘마감’의 긴장감이 좋아서.


3년 전쯤 매주 월요일 저녁 8시에 나는 꽃을 배웠다. 김포공항에서 판교역까지 그리고 판교역에서 또 버스를 타고 가서 마주한 스튜디오에서 그렇게 밤늦도록 꽃을 배웠다. 10번의 월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얼마나 정신없고 대단한 날인지 깨달았다. 주말이 끝나고 아침 알람을 마주하는 첫날이라는 것만으로도 체력적으로 소모가 크긴 하지만 사실 그건 심리적인 체력이라는 것도.


월요일마다 꽃을 배우면서 3달이 조금  되는  기간이 얼마나 빨리 갔는지 모르겠다. 월요일은  접고 가는 날이니까. 원래 약속을 잡을 체력도 누군가를 한가하게 만날 여유도 없는 심리적 체력 소모가  날이니까. 그날 저녁에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고 해도 딱히  힘들 지도 않을  같았. 오히려 주말이 2+1 되는 기분이랄까. 물론 현생이 미치게 바쁜 날은 월요일이 원망스러웠지만.


3. 그래도 때로는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랜 취미인 여행과 꽃을 주제로 매거진을 열었다. 누가 날 다그치는 것도 아닌데 목차를 세우고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런데 재미가 조금 없어졌다. 의무감에 쓰는 글 같기도 하고. 물론 종종 내가 다시 보며 즐거워하지만 (나는 내 일기의 가장 열렬한 응원을 보내는 독자이므로) 그것만으로는 글을 쓸 추진력이 되진 않았다.


다른 글감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책, 영화, 넷플릭스, 산책, 임신, 가족 등등. 그런데 그것들을 큰 범주로 묶어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니 또 재미가 조금 없어졌다.


때로는 월요일기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때로는 이만한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여행에 대해 쓰고 어떤 소제목은 그 주에 겨우 마친 책 한 권의 제목이 되기고 했으니까, 사실은 고민하던 멋진 글을 간략하고 명쾌하게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4. 재미

재미를 위해서 계속 쓰고 있다. 나를 위해서 쓰고 있고, 여전히 종종 발견하는 나 혼자 보기 아까운 ‘몇몇 멋진 생각과 묘사와 문장’을 뽐내기 위함도 있다.


어느 월요일은 일기가 짐처럼 느껴지고 또 어느 월요일은 쓰고 싶은 글이 많아 아침 출근길에 후다닥 다 써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월요일은 일기를 쓰면서 2+1 같은 억지 주말의 끝을 부여잡아보기도 한다. 화요일부터 진짜다 라는 기분으로 현생을 마주하면 아주 조크든요.


5. 불면

월요일기 초반의 대부분의 글은 불면인 밤이 길어지면서 쓴 것들이지만 다시 돌아가서 찬찬히 읽어보면 꽤 재밌는 일기들도 있다. 머리를 자르냐 마냐로 고민하는 글이라던가 갑자기 커피 이야기를 주구장창 하는 날도 있고. 너무 쓰기 귀찮아서 대충 휘갈겨 쓰고 발행해버린 날도 있다.


오늘도 오랜만에 잠이 안 와 뒹굴거리다 보니 갑자기 월요일기를 왜 쓰는 건지, 나는 이걸 써서 뭘 할 건지, 월요일마다 짧은 글을 이어 쓰는 게 뭐가 재밌는지 갑자기 의문이 들어서 쓰게 된 일기. 다음 주 월요일 일기에는 넷플릭스 ‘INVENTING ANNA(안나 이야기)’와 감기몸살로 2주간 3번이나 코를 찌른 이야기를 쓸 작정이다.


6. 이제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만 줄일게요. 월요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없는 날도 있지만 종종 재미있는 날도 있죠. 저도 알아요. 근데 월요일이 그런 날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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