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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02. 2022

5월 2일 월요일

새 직장에서 맞이한 두 번째 5월에 쓰는 일기

1. 1년

작년 5월의 첫 출근날. 살면서 단 한 번도 지나쳐본 적도 없는 거리의 생경한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기가 막히는 소리가 쏟아져 나왔었다. 육성으로 입 밖으로.


휴직기간 동안 여우같이 이직을 준비해 홀연히 그곳을 떠나버린 유일한 팀원이 되어버렸던 날. 오래도록 그 팀을 지켜왔던 막내에서 이제 서서히 내 몫을 챙겨가던 8년 차 대리가 되어가던 참이었다. 1년만 더 버텼다면 과장이 되었을까. 과장이 되지 못했더라도 아마 떠나지 않았을까.


 회사의 애틋함이 너무도 컸던 나머지 내가  애달픈 회사를 배신한 기분도 들었다.  직장으로 출근한 날부터 수개월 우울감과 싸워가며 적응하고  적응했다. 그럼에도 회사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들을 곱씹었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여럿 겪어냈다.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8년과 1년은 비교할  없으므로.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때때로 이곳이 나의 직장이고 동료들 덕에 위로도 받고 즐거워하는 날들이 늘어간다. 물론  직장에서처럼 많은 이들과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부분의 나를 숨기고 일부의 나만 남겨  뒤에 숨어있을  있어 좋은 .  점만으로도 회사가 나에게 짐이 되지 않고 내가 우선되는 회사 생활을   있다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경계하며 지난 1년을 보냈다.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나는 여전히 분명히 다르므로, 어떤 회사와 직업으로도 나를 구분 짓고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을 믿어가며 5월을 맞이한다. 두 번째 해의 5월.


이곳에서 만난 토끼같이 귀엽고 수다스러운 동기들과 두루두루 축하 인사를 나누었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 서로가 서로의 어쩔 수 없는 친구와 동기가 되어준다니. 때때로 그 존재들 덕에 잘 버티고 넘겨냈다. 다음 계절의 나도 씩씩하게 잘 버텨내기를.


2. 카레

3  주말부터 카레 노래를 렀다. 주말엔 딱히 먹고 싶지 않지만 주중이면 갑자기 몹시 먹고 싶어 지는 음식. 주말 밤에 뭉근하게 끓여둬야 주중에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까 주말 내내 남편을 졸랐다(미안). 사실 그저 야채를 깍둑 썰어 카레가루를 넣고 잘 끓이면 그만인데. 여튼 남편이 한솥 가득 끓여둔 카레 덕에 오늘 운동 끝나고 군것질이나 배달도 꾹 참고 집에 오자마자 뜨끈한 밥에 카레를 담뿍 담아 맛있게 먹었다. 종종 떠올리기만 해도 든든한 음식들이 있다. 카레처럼.


3. 등산

지난 주말엔 마침내 인왕산을 다녀왔다. 엄밀히 따지면 인왕산 초입을 다녀왔다. 아니 인왕산 자락길을 조금 따라 걸었다.


자주 가는 연희동 안산에서 하늘다리를 건너면 금방 인왕산인데, 늘 안산만 빠르게 1시간 정도 걷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인왕산은 어쩐지 너무도 멀고 가파른 산세가 떠오르는 산이라서, 그리고 안산을 열심히 걷고 내려오면 내가 좋아하는 야쿠르트 여사님도 있고 커피숍과 밥집도 있고 연희동 곳곳을 탐방하기도 좋으니까. 인왕산을 가지 않을 이유가 훨씬 많았다.


이번엔 집에서 나서면서부터, 아니 그 전날 잠에 들기 전부터 인왕산 노래를 불렀다. 11시가 다 되도록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도 인왕산을 가야겠다는 마음은 어쩐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안산에서 인왕산을 넘어가기까지 30분. 그리고 인왕산에서 길을 잃고 길을 찾고 또 버스를 기다리고 돌고 돌아 다시 연희동으로 돌아온 게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흙길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이라 조금 걷기 어려웠고 한양도성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모래바람에 조금씩 쉬어가야 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녀온 인왕산 초소 책방에서 텁텁한 커피와 꾸덕한 케이크도 먹었던 즐거운 등산이었다. 다음번엔 인왕산 전면 돌파다.


인왕산 자락길 / 한양도성 성곽길


4. 여행

곧 여행을 간다. 1년 전부터 미루고 미루고 미루던 그런 여행. 어린이날과 징검다리 휴가까지 알차게 붙여서 간다. 바다에 앉아서 책도 읽고 이른 햇볕에 온 몸을 태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숲으로 들로 바다로 걸으며 마스크를 벗고 걸을 수 있는 여행이 돌아오다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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