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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23. 2022

5월 23일 월요일

지속 가능한 감당 가능한 정도의 호의

1. 파도

지난주 금요일 아주 큰 파도를 맞이했다. 400명을 이른바 모시고 하는 즐거운 잔치. 건물 내외부에 현수막을 내걸고 케이터링을 부르고 포토월과 풍선을 설치하며 부디 100명이라도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100명은 무슨 겸손이었던지 행사 시작 전부터 이미 문 앞에 길게 줄을 이어 설 정도로 사람이 넘쳐났다.


파도가 지나면 조금 여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보람을 느낄 새도 없이 쏟아지는 일과 민원에 정신 차려보니 주말이 지나있었다. 회사일이라는 게 늘 그렇지만 하나가 저물면 또 하나의 퀘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종종 고요하고 하릴없는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일이 적은 게 일이 많은 것보다 늘 더 스트레스였던 나에게 요즘의 파도들은 어느 것 하나 작게 부서지는 것이 없다. 모든 파도는 새롭고 낯설게 그리고 크게 부서진다.


그래도 지난 8주 동안 경험한 새로운 업무의 가장 큰 장점은 약간의 자유로움과 폭넓은 재량권이므로 그 재량권을 손에 쥐고 앞뒤 연차를 겨우 붙여내 놀러 갈 궁리를 하는 것 보니 이번 파도도 잘 넘어낸 것 같다.


2. 친구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햇수로 10년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과 맥주 한 잔 걸치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며 평범한 저녁을 보냈다. 마스크를 쓰나 벗으나, 나이가 드나 마나 여전히 소녀같이 까르르 거리며 아직은 추운 저녁 바람에 닭살 돋은 팔과 다리를 놀려가며. 즐거웠던 친구들과의 만남. 여름이 오고 밤이 짧아지니 어쩐지 체력의 바닥까지 긁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진다.


3. 장미꽃

올봄은 벚꽃구경도 찰나, 작약은 아직 구경도 하지 못하고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5월이 되었다. 그마저도 이제 곧 6월이지만. 주말에 맞이한 엄마 생일 케이크를 픽업하러 들른 망원동에서 아름다운 장미 넝쿨을 발견했다. 오래된 주택가에는 늘 넝쿨진 장미가 이토록 멋지게 풍경을 완성한다.


4. 호의

몰입하지 않는 것. 내가 새로운 직장에서 버티는 하나의 방법인데 몰입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지키는 에너지는 꽤 큰 편. 호의를 남발하지 않고 또 쉽게 감정을 위아래로 바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적응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때로는 친구처럼 지낼 동료가 없어 외롭기도 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좋다.


그럼에도 종종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보람찬 하루를 위한 욕심이 나를 잠식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지속 가능한 만큼의 감당 가능한 만큼의 욕심을 부리자고 다짐해보려고 한다. 이제는 조금 피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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