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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n 27. 2022

6월 27일 월요일

흐리지만 평안한 주말을 보낸 후 맞이한 월요일의 일기

1. 수목원

광릉수목원에 다녀왔다. 매번 여름 뙤약볕 아래 걷게 되는 것 같아 아쉽지만 언제나 좋은 곳. 예전엔 입장 인원 제한 때문에 자주 못 갔다면 이제는 주차 차량 대수 제한으로 여전히 가기 조금 어렵다. 부지런히 티켓을 구매하면 언제나 쉽지만.


쨍한 날씨가 아닌 약간 흐린 날을 골라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얕게 깔린 시멘트 바닥을 걸어 나무 그늘 아래 서면 그제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초여름의 수목원. 온실 구경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선인장이 가득한 열대 식물관에 잠깐 앉았다가 다시 전나무숲까지 열심히 걸었다. 산으로 숲으로  뻘뻘 흘리며 다니는  어쩐지 여름의 모습이라서. 2 후엔 노들섬에 가기로 했다! 여름 가지 마.


2. 가구

엄마는 종종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곤 했다. 침대를 이렇게 붙였다가 소파를 나눴다가 높은 테이블 다리를 잘라 거실 테이블로 바꾸거나 하면서. 그리고 계절마다 방들의 가구 위치를 꼭 바꾸곤 했다. 딱히 어떤 이유 때문에 바꾸는지 어떤 부분이 맘에 안 들어서 옮기는 건지 한 번도 설명해준 적 없었지만 내가 원룸으로 독립한  해에 모든 것이 이해됐다. 가구를 옮기는 것만큼  환기가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처음 서울에서 살았던 작은 원룸에서 나는 열심히 가구를 옮겼다. 가구라고는 옷걸이와 이케아에서 산 싸구려 침대뿐이었지만 여름엔 에어컨 아래로 겨울엔 웃풍이 덜 드는 곳으로 옮겨가며 살았다. 신혼집에서도 그다음 집에서도 가구 옮기기는 계속됐다. 가구가 늘어나니 고민거리는 더 많아졌지만 동시에 가구를 옮김으로써 얻었던 어떤 해방감과 다채로움은 배로 느낄 수 있었다.


인테리어를 마치고 새 집에 가구를 넣으면서 가장 컸던 걱정은 아무래도 ‘알맞게 고쳐둔 집에서 잘 살 수 있을까?’였다. 여러 선이 보이지 않게 잘 정리하여 텔레비전 뒤에 쏙 숨기기 위해 조금 높은 곳에 콘센트를 달았고, 식탁 위로 바로 빛이 떨어져 내려올 수 있는 곳에 전기선과 펜던트 등을 달았다. 안방엔 붙박이를 짜고 부엌엔 고정형 아일랜드를 짜니 막상 가구를 옮길 곳이 없었다. 가구를 옮기는 것도 다 공간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을 인테리어를 하는 동안에는 잘 몰랐다. 여러 가지 버전의 집을 만들기 위해 최소 2가지 버전으로는 열어뒀어야 했는데.


그러던 중 지난 주말 침대를 돌리기로 했다. 매번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일어나기 일쑤였던 침대를 (풍수지리적으로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보니 침대가 뺀 자리 위로 거의 성인 한 명이 더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나왔다. 오랜만에 가구를 옮기니 얼마나 신이 나던지. 아. 넓은 집에 살고 싶다! 여기저기 공백을 누리며 사는 삶 원한다 진짜.


3. 열대야

요즘엔 새벽 4시나 6시면 꼭 일어나 에어컨 리모컨을 찾는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열대야. 오히려 비가 내리면 시원해야 하는데 요즘은 그 반대인 기분이 든다.


매일같이 비가 내리니 (집에서 비 구경하는 걸 즐기는 편이라) 좋은 점도 많지만 출퇴근길 젖은 우산에 온 발이 젖는다거나 혹은 차가 너무 막혀 지각을 면치 못하는 순간들은 꽤 불편하다. 게다가 비가 내리는데 푹푹 찌는 날씨라니.


어제는 남편과 동시에 일어났다. 숨이 막혀 남편은 새벽 4시에 물을 마셨고 나는 일어나 숨을 몰아쉬었다. 일찍 잠들면 뭐하나 새벽에 일찍 깨 피로만 더하는데. 오늘부터는 에어컨도 열대야 모드로 틀고 편안하게 잠들어보는 걸로.


4. 스펜서

얼마 전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다가 조금 지루해 멈춰두고는 결국 끝내지 못했다.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영화를 보면 꼭 이렇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지난 주말 ‘스펜서’를 봤다.


풍경도 색감도 너무 예뻤는데 그중 으뜸은 역시 샤넬이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입은 건지 그 반대인지 모를 정도로 대단한 의상들이었다. 이전에도 영국 왕실을 다룬 여러 드라마와 영화를 접했지만 이렇게 다이애나비를 주로 다룬 건 없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이 작품도 또 한 번 끝까지 다 보지 못한 건 다이애나를 둘러싼 여러 스트레스와 불안 상황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마음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구사하는 영국 발음에 괜히 조금 더 힘을 들여 집중하다 보니 극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진 것도 있고. 그래도 이번엔, 꼭 나머지 부분을 다 보고 싶다. 영화에 대한 평은 그 이후로 미뤄두기로 한다.


4. 박효신

남편의 최애 가수는 박효신이다. 박효신이 나오는 콘서트도 방송도 거의 찾아볼 수 없거나 예매가 어려워 그저 같은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반복해 들을 뿐인 팬심. 그러던 중 운 좋게 ‘웃는 남자’ 티켓을 거머쥐었다. 코로나 이후로 처음 보는 뮤지컬인 데다 남편이 좋아하는 가수가 남주인공으로 함께한다니 여러모로 설렜다.


가기 전부터 세종 문화회관의 음향이 조금 뮤지컬과 맞지 않는다고 듣긴 했지만 설마 그게 공연 전반의 만족도를 떨어트릴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양준모, 신영숙 배우와 같은 어마어마한 성량은 음향을 뚫고 가슴을 울렸고 박효신의 애절함도 사뭇 진지했다.


집에 돌아와 이전 공연 클립들을 찾아보며 공연장에서는 귀가 피곤해 차마 다 듣지 못했던 가사들을 되짚어 들어보았다. 마지막 기립박수를 했던 곡과 커튼콜에 울려 퍼지던 여러 넘버들을 다시 들었다.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공연. 이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공연도 페스티벌도 영화도 마음껏 보러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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