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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18. 2022

7월 18일 월요일

오랜만에 컨디션이 올라온 월요일의 일기

1. 무제

요즘 간간히 먹는 약이 있는데 딱히 영양제는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자양강장제도 아니지만 먹자마자 깊고 긴 잠에 빠질뿐더러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무언가를 먹고 마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술의 약. 이번 여름은 컨디션이 한참 올라오다가 어느 순간 뚝 떨어져 운동도 못하고 조금 느리게 계절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어쩐지 산책도 집안일도 거뜬히 해낼 것만 같은 컨디션이라 집에 오자마자 과일 주스 한 잔 가득 따라두고 신나게 마셨다. 어느샌가 30도가 29도가 되고 종종 27도까지 내려가니 여름이 끝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한낮엔 선글라스라도 꺼내어 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요 며칠은 에어컨도 따로 틀지 않고 창문만 열어두고 지낸다. 무더위가 한 풀 꺾이긴 했나 보다.


이번 여름엔 바다도 산도 못 가고 집과 서울 곳곳의 좋은 곳만 염탐하고 있지만 추석 연휴에 잡아둔 늦은 여름휴가만 바라보고 있다. 바닷가에 가서 오후 내내 앉아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계절.


2. 헤어질 결심

지난 주말 마침내 단일하게 보고 싶었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다. 영화보기 전날 밤 초밥 도시락을 먹고 간 것에 대한 안도감과 아주 낮은 채도의 벽지, 그리고 영화 전반에 깔리는 푸르른 빛깔의 공간들이 주는 깊이감이 멋졌다.


게다가 박해일의 그 무심한 핸섬함(잘생겼다로 표현되지 않는 깔끔한 핸섬함)과 탕웨이의 중국어 연기톤이 아주 멋졌다. 중국어를 전공한 것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약간은 으쓱할 정도였으니까. 포스터와 여러 스틸컷으로 이미 이 영화가 대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랑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내로남불적인 영화적 허용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붕괴’됨에 따라 만조에 파도가 들이치는 것처럼 감정선도 이윽고 ‘붕괴’되었다.


한 씬 한 씬에 나오는 모든 조연 배우와 효과음 그리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던 OST도 모두 좋았다. 어느 장면에도 응큼한 의도를 숨겨두지 않았으니 사랑과 로맨스 그 자체로 보라는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 덕에 머리를 덜 쓰긴 했지만 아마도 1번째 관람보다 2번째 관람에 조금 더, 그 이후엔 조금씩 더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3. 가족

우리 가족의 집안일은 크게 음식과 그 외의 것으로 나뉘는데 남편이 음식인 전자 내가 그 외의 것인 후자를 맡고 있다. 일주일 전 아파트 전체 설비 공사로 정전이 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은 냉동실 재료들을 탈탈 털어 집밥을 한 솥씩 해두기 시작했다. 밀복으로 마는 복어탕부터 온갖 야채를 넣은 카레, 생선조림, 콩나물국, 김치찌개 등등. 그리고 매일매일 퀘스트처럼 그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종종 남편이 밥을 하는 동안 나는 소파에 누워 남편을 바라보곤 하는데 내가 얼마나 철없어 보이는 순간인가 싶다가도 내가 집안일을 하는 동안 남편이 누워있어도 얄미워하지 말고 봐줘야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사실  장면들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 아빠 집에서 내가 외동딸처럼 같이 살던 때에 우리도 이런 저녁들을 보냈던  같다. 지방에서 공부 중인 남동생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는 과일을  대접 차려와 식사만큼의 과일을 내놓았다. 아빠와 엄마는 시답지 않은 말싸움을 하기도 하고 나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일일연속극을 같이 보며 줄거리를 하나하나 물어보기도 했다.


엄마 아빠와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과는 별개로 우리 부부가 꾸려온 가족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최근엔 너무 덥고 출퇴근에 지쳐 반갑게 인사하고 빠르게 휴식에 접어든다. 집에서 딱히 많은 대화를 하지 않고 얼른 저녁 먹고 치우고 짧은 산책 후 잠에 드는데 어제는 문득 조금 시간을 보내고 싶어 남편 머리칼을 넘기며 짧은 수다를 떨었다. 물론 남편은 딱히 반응 없음. 그래도 문장의 시작과 끝에 우리 가족이 더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지냈음 한다는 서로의 마음만큼은 확인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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