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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19. 2022

9월 19일 월요일

한낮기온 30도의 초가을 월요일의 일기

1. 2주 만에 돌아왔네요

월요일기를 쓰지 않고 지나가는 주간에 대한 아쉬움은 내 스스로 가장 크게 느낀다는 것을 알면서도 월요일기를 몇 번이나 놓치며 가을에 들어왔다. 브런치에서 나에게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이라는 알림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기꺼이 이어가 볼게요 월요일기.


2. 나의 작은 우주

새로운 매거진을 론칭했다. 무려 론칭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나에게 생긴 임신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마주한 큰 기쁨과 또 그 과정을 글로 남겨 후대에 널리 널리, 아 아니 후대까지는 아니고 '우주'에게 전해줄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이다.


임신을 하고 매 주차마다 나에게 벌어지는 여러 가지 몸의 변화와 불안감, 게다가 태아의 변화까지 하나하나 검색해보며 대조하기 조금 벅찼다. 적어도 주수별로 보편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있을 텐데, 맘 카페에서 보는 글들은 주로 보편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증상에 대한 일들이 많아서 불안감이 조금 더 커졌을 뿐이라 꼭 한 번은 남기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여러 물리적인 증상과 감상적인 생각들에 대한 글을. 물론 내가 겪은 것들도 누구에게는 보편적이지 않고 예외적일 수 있지만, 그 글을 읽으며 유사한 부분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위로받을 수 있는 글이 필요했었기 때문에.


3. 방콕

방콕에 너무 가고 싶다. 얼마나 가고 싶냐면 마지막으로 방콕에 갔던 2020년 초에 먹은 팟타이와 오렌지주스 맛이 입에서 맴돌 정도로 엄청나게 가고 싶다. 남편과 남동생의 손을 잡고 (코로나가 생기자마자였어서) 지하철에선 마스크에 손소독제까지 써가며 그렇게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그게 이렇게 오래전 과거로 남게 될 줄 몰랐다. 주변에서 스멀스멀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오는 걸 보니 진심으로 가고 싶다. 방콕. 방콕에 가고 싶다.


4. 30도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이번 여름을 보내고, 하루 걸러 하루 폭우에 태풍까지 지나고 나면 정말로 가을이 올 줄 알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예상했다. 그런데 가을은커녕 다시 여름으로 돌아가 30도를 육박하는 주말 날씨를 마주하면서 다시 에어컨 리모컨을 찾아 몇 시간이나 에어컨을 틀었다. 이렇게 더울 일인가 싶었다.


올 겨울은 춥다던데. 매년 올 겨울 한파가 지독하게 올 거라고 하지만, 어떤 해도 딱히 그 전해보다 더 춥고 그 이후보다 덜 추웠던 적은 없었다. 내가 만년 코트파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겨울은 그저 늘 추운 날들의 연속일 뿐인걸. 그래도 올 겨울이 춥다는 예보는 어쩐지 여러 기후변화에 기반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긴장이 된다. 사무실의 홑창도 신경 쓰이고, 혼자가 아닌 아가를 품고 맞이하는 첫 번째 겨울이라서 조금 더.


겨울을 논하기엔 아직 반팔에 반바지를 입어야 하는 날씨이기 때문에 조금 미뤄두고, 이번 태풍이 지나가고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정말로 가을이 오려나 싶다. 짧은 계절 동안 열심히 걷고 즐겨야지. 겨울을 위해.


5. 아이유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조성모 팬클럽 회원이었다. 그 당시 성모 오빠는 ‘피아노’라는 곡을 냈었고 회원들에게 피아노 악보가 그려진 손수건과 팬과 가수의 커플링, 그리고 각종 편지며 포토카드 같은 걸 보내줬었다. 그 시절 친구와 친구 어머니가 조성모 팬이어서 늘 거기에 껴서 나도 팬클럽 창단식, 소극장 공연, 콘서트에 같이 다녔다. 공연장에 도착하면 20대 중후반이 돼 보인 언니들이 나를 불러 앞자리로 옮겨줬다. 키가 작아 안보일 테니 앞으로 오라고 하면서. ‘피아노’라는 곡을 무반주로 마이크도 없이 부르는 조성모를 보고 눈물도 훔쳤던 기억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 이후 좋아했던 가수나 아이돌(특히 여돌)은 언제나 많았지만 조성모만큼 좋아한 연예인은 아이유가 유일무이했다. 미공개 곡까지 싹 찾아 듣고 유튜브 안 보던 시절에도 IU TV는 매일같이 돌려보곤 했으니까. 귀엽게도 우리 아빠도 그리고 남동생도 모두 아이유를 좋아해 언젠가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인터뷰를 옹기종기 앉아 함께 보기도 했다. 역시 철학이 있다며 20대 초반인 아이유를 극찬하기도 하고, 지난 앨범 활동 중에 나온 모든 프로그램을 찾아서 본방 한 번 클립으로 한 번 곱씹어 보기도 했다.


아이유 콘서트의 명성과 티켓팅의 악명에 결국 굴복하고 남편은 한번 들어가 봤다가 그냥 빠르게 포기하기까지 했다. 취소표 잡기도 어려워 다시 한 번 포기. 그러다 정말 좋은 기회에 귀인을 만나 구했다 바로 그 티켓! 서토콘!


내 인생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나는 행복해 까무러쳤다. 남편은 소음이 너무 심해 혹시 아기가 놀랄까 봐 걱정됐다고 하면서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이건 최고의 태교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내가 본 공연을 통틀어 이렇게 정성스러운 공연은 처음이었다. 가수가 본인이 돋보이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팬들에게 한 곡 한 곡 하염없이 응원해줘서 고맙다고,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 연출과 드론 쇼, 불꽃놀이에 짧은 시간 동안 진행한 앵콜, 앵앵콜까지. 잠실이 아니었다면 하루를 넘겨도 모자랄 열정이 느껴졌다. 아이유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블루밍 응원법을 차 안에서도 달달 외워하던 나는 콘서트장에서 블루밍이 나오자마자 울컥했다. 그리고 모든 응원법을 (약간은 고요했던 3층에서) 다 읊었다! 다행히 주변 몇 분이 응원법을 외워와서 덜 외로웠다네.


사진도 영상도 촬영하지 말라고 쓰여있어서 잠자코 공연만 봤는데 점점 뒤로 갈수록 이건 뭐랄까 내 폰이 찍어서 스스로 소장할 가치가 너무 높아져 눈과 손으로 조금 더 담았다. 나는 이제 그 추억 위에 누워 살 거야. 다음 콘서트도 갈 거냐고? 무조건 갈 거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광클해서 꼭 가고 말 거다. 그 자리가 아주 멀고 시야가 제한되는 그런 곳이라도. 아이유가 얼마나 세심하게 공연을 준비하는지 알고 믿으니까 우선 갈 거다. 또 만나자 우리 진짜! 아이유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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