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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0. 2022

10월 3일 그리고 10일 월요일

10월 황금연휴를 보내고 쓰는 일기

1. 4/4분기

그러니까 이제 90일 남짓이면 내년이 되는 거다. 꽉 채운 3달만 있으면 2023년. 20대 땐 크리스마스 100일 전이 언제인지 괜스레 알아두곤 했었는데 이제 그저 계절이 가고 신년이 오는 순간만 바라본다. 별 건 아니지만 가을과 겨울을 지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거치면 어느새 신년이 클라이맥스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짜릿해. 한 살 더 먹는 건 언제까지 짜릿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송구영신을 하기엔 딱 좋은 명분인 것 같아서.


2. 황금연휴

10월은 정말 업무로 바쁜 달 중 하나인데 그래도 황금연휴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일정들을 꽉꽉 채워두었다. 첫 번째 황금연휴에는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두 번째 황금연휴에는 해외 생활 중인 전 회사 동료의 깜짝 방문에 응하기도 하고 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춘천 밀봄숲(@millbom_soup)

특히 이번 연휴에는 춘천 밀봄숲이라는 새로 생긴 숙소에 다녀왔는데 꽤 만족스러운 숙박 경험이었다. 에어비앤비를 즐겨 찾는 나는 사실 비대면 체크인을 선호하는 편인데 밀봄숲은 완전 정반대의 서비스를 보여줬다. 도착 전날 연락을 하고, 도착한 후 문을 열어 내부를 소개하고, 노천탕을 시간 맞춰 받아주고 이윽고 바베큐와 불멍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며 온 오후를 함께 보냈다. 4시 체크인 7시 바베큐 8시 불멍까지. 잠에 들기 전까지 촘촘하게 잡아둔 일정 동안 사장님께서 와서 여러 필요한 물건들과 상황들을 챙겨 돌보아 주셨다.


아마 춘천이 아닌 다른 도시였다면, 그 챙김이 과분하다 여겼을 텐데 아무것도 없이 밀봄숲만을 위해 선택한 도시와 여행이었다 보니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따뜻한 물에서 짧게 몸도 담그고 족욕도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서울로 진입하는 도로가 너무 막혀 조금 힘들었지만 (특히 여행 가기 전에 깨끗하게 청소를 마치고 떠났던)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기대어 “역시 집이 최고야.”라는 말을 내뱉으며 비로소 짧은 여행이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돌아올 곳이 있어야 여행의 만족도도 배가 되는 법이니까.


밀봄숲은 최대 3인까지 수용하는 작은 복층의 숙소라서 내년 이맘때쯤 아기를 데리고 또 한 번 가자는 이야기를 연거푸 뱉으며 돌아왔다. 또 다음 계절을 기약할 수 있는 멋진 시절과 멋진 여행.


3. 소나기

3일을 푹 쉬니 드디어 늦잠의 기회가 내게 왔다. 짧은 주말엔 알람이 없어도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곤 해서 아쉬운 순간들도 있었는데 오늘은 뒹굴거리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남편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커피와 차를 마시며 아침을 보내다 산책을 나갔다.


나가자마자 소나기. 기가 막혔지만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갈 작정이었어서 날씨운을 믿고 길을 나섰다. 김밥도 두 줄 사고 자락길에 앉아 먹기로 했는데, 산책을 시작하자마자 강풍과 보슬비. 10분 정도 빠르게 걷고 차로 돌아와 김밥을 와구와구 먹었다. 차 안에서 저화질로 티비 프로그램도 하나 보면서.


집에 돌아오니 집 앞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비가 내렸다. 바람도 불었다. 남편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미친 날씨가 있다니. 보일러를 틀고 보리차를 마시며 오후를 보냈다. 그냥 이 정도면 됐다. 휴일.


4. 서울미술관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서울미술관에 다녀왔다. 자주 가는 미술관이나 궁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라 언제 갈까 좋은 날을 고르다 비가 많이 내리길래 그 길로 향했다. 석파정 산책은 짧게 끝냈지만 비 오는 길목들도 꽤 아름다웠다. 단풍이 지면 그때 다시 한번 가야지.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전시 ‘두려움일까 사랑일까’는 수집가의 여러 작품들을 한데 모아둔 귀한 전시였다. 이중섭의 황소와 그간 이중섭이 일본에서 가족들에게 보냈던 자필 편지를 번역한 영상도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수집가가 황소를 구입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작품을 팔고, 황소를 구입하고 다시 원래의 작품을 다시 수집하는 과정을 적어둔 수집가의 말이 전시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김환기의 십만 개의 점,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한 개인이 이런 대단한 작품을 40년간 모으고 모아 본인의 집에 걸어두고 감상을 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 모든 작품 하나하나를 어떻게 수집했는지, 어떤 마음과 어떤 재정적인 문제를 겪었는지를 소상하게 또 위트 있게 적어두어 재미를 더하였다.


서울미술관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이건희 컬렉션을 보면서 조금은 당연하게 여겼던 재벌의 미술 컬렉팅을 이번 컬렉션에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전시회의 컬렉터는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회장, 엄청난 미술애호가라고 알려진 바와 같이 전시는 매우 좋았다. 매우 매우.


5. 남은 10월은

부지런히 나의 작은 우주 매거진을 채워가며, 남아있는 여러 업보 같은 일들을 마치고 발 쭉 뻗고 잠에 드는 일. 아! 그리고 10월엔 라면, 커피, 탄산음료 없이 보내기로 다짐. 그럼 또 다음 주도 잘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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