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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7. 2022

10월 17일 월요일

오랜만에 노을과 함께 빠르게 퇴근한 월요일의 일기

1. 코로나

그렇다 마침내 우리 집에도 등장한 코로나. 야근과 추위와 더위와 건조와 피로로 점철된 지난주를 보내고 끄덕 없이 버텨낼 것 같았던 남편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가족의 도리를 다 하겠다며 장례식장에서 화장장까지 운구를 하러 간 남편이 도저히 안 되겠다고 코를 쑤시곤 코로나에 확진됐다.


처음 발병된 그 순간부터 물론 언젠가 우리 집에도 코로나가 오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제 실내외 마스크까지 벗네마네하고 해외여행도 가는 이 판국에 마주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야근과 주말근무로 남편과 서운할 정도로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에 2-3시간 잠깐씩 만나고 겨우 한 침대에서 잔 게 다라서 아직 양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피로인지 임신인지 무엇인지 온 몸에서 열이 뜨끈하게 나고 눈도 무겁고, 코도 막히고, 입 안은 죄다 헐어 터지는 데다 한 달째 맥박성 이명에. 쉽지 않은 가을을 보낸다. 이제는 추워져서 겨울이라고 해야 하는지.


남편은 제 때 약을 처방받아 아플라치면 약을 먹고, 힘들라치면 누워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임신한 나 때문에 집으로 오지도 못하고 장례식장에서 바로 본가로 내려간 남편. 그마저도 시어머니는 나와 같은 슈퍼면역자라 처갓집(그러니까 우리 집)으로 가서 격리를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는 닭백숙에 잡채에 팬티까지 사서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걸어 너는 어떻게 사냐며 묻는다.


몸은 무겁지만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고, 타이레놀 구하기 하늘에 별 따기이던 시절을 조금 비껴가 마침 타이레놀도 두둑하게 사두었다. 입덧도 끝났으니 냉장고를 털어 밥을 해 먹고 혹시 몰라 과일까지 매일 잘 챙겨 먹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다 남편 해제되는 날 부리나케 가서 차에 실어와야겠다. 보고 싶구려 여보.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잘 쉬다가 만나자.


2. 양배추

남편과 지난주 해 먹지 못한 집밥 재료가 냉장고에 한가득인 데다 혹시 언제 나도 양성이 나올지 몰라 컨디션 좋은 날 부랴부랴 반찬을 만들었다. 밀키트를 꺼내어 불고기를 조리하고, 쌈채소를 미리 물에 담가 샐러드로 손질해 한가득 소분해두었다. 포도와 자두를 꺼내고 계란 개수를 세어가다 양배추 반통에서 잠시 좌절했다.


샐러드를 해 먹으려니 이미 쌈채소가 한가득이고 그전에 한 겹 한 겹 닦아내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래도 일주일이면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다 꺼내서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양배추를 두세 번 물에 담가 푹 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따뜻하게 쌈을 싸 먹으니 어쩐지 야근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도 들고 차가운 쌈을 꺼내먹으니 어른의 밥상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처음 독립하고 원룸에서 음식을 해 먹던 날들도 있었다. 운동가기 전에 가볍게 샐러드도 해 먹고 볶음밥도 해 먹어 가며 나름 매일 건강하게 잘 챙겨 먹었던 것 같은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남편에게 부엌살림을 일임하고 나니 할 줄 알던 음식도 모두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남편의 부재가 나를 부엌으로 이끌 줄이야. 그렇게 매 끼니 정성을 다해서 먹다 보면 오겠지 주말.


3. 임신 출산 육아

어느덧 임신 21주. 요 몇 주 배가 많이 나와서 맞는 옷이 거의 없어졌다. 게다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또 금세 배가 고파진다. 새벽마다 꼭 한 번씩 깨기도 하고,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지만 잠에 들지 못하는 밤들도 있다.


임신 초기의 걱정은 임신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였다면 임신 중기의 걱정은 왜 오늘은 태동이 없지? 혹은 이렇게 체력이 없는데 애를 낳을 수 있을까? 인 것 같다. 남편이 격리에 들어가고 남편과 닿았던 오만 옷가지와 생활용품, 이불 커버와 침구류를 모두 걷어서 세탁하다가 배가 너무 당겨서 바로 주저앉았다. 그러다 겨우 괜찮아져서 이불 커버를 가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패드를 새로 끼우다가 배가 쏠려서 10분 쉬고, 이불 커버를 뒤집다가 또 10분, 이불을 털다가 또 10분. 이렇게 임신이 고된 일인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열심히 운동하고 (내키지는 않지만) 조금 더 살을 찌워서 몸을 좀 단단하게 만들어둘 것을 잘못했다.


내 몸에 대한 걱정이나 뱃속 아기에 대한 걱정 말고도 아기를 낳는 방법과 키우는 법, 휴직과 복직과 같은 출산 이후에 대한 걱정도 종종 든다. 내년이면 육아휴직이 1년 반으로 늘어난다지만 아기의 인생에 내가 필요한 순간은 신생아와 인펀트 시절만은 아닐 거니까, 아기가 유치원에 가고 또 학교에 가는 여러 순간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잘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아기를 낳고 1년 동안 휴직을 쓰면서부터 해야 한다니. 답답하면서도 또 내려놓게 된다.


그저 임테기로 두 줄을 보고 기뻐하는데에서 그치지 않는 삶의 시작. 물론 요 근래의 가장 큰 걱정과 의문점은 도대체 임신선이나 튼살은 매일 관리해주면 안 생기는 게 맞는지와 살은 몇 키로나 더 찌는 걸까 정도이지만, 종종 머릿속이 꽉 차서 복잡하다. 그래도 둘도 이렇게 좋은데 셋은 얼마나 좋을까. 부디 건강히만 잘 지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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