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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31. 2022

10월 31일 월요일

극악의 한 달을 보내고 쓰는 10월의 마지막 월요일기

1. 10

인사이동이 있었다. 물론 나는 그대로이지만 나를 둘러싼 조직장과 동료가 바뀌었다. 좋은 점은 당연히 있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나쁜 점도 명확히 존재했다. 지난 2-3주를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 주말에도 일을 했고 출근 전에도 퇴근 후에도 일을 했다. 내가 맡은 일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얹고 또 얹어지는 일을 하느라 매일 다리가 퉁퉁 붓고 남편은 밤마다 퇴근길 나를 데리러 왔다.


남편의 피로도가 함께 높아지다가 가족의 비보를 접하고 장례식장에 갔던 날, 아마도 그날 남편은 (2년간 잘 피해왔던) 코로나에 걸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녁식사고 뭐고 대충 때우고 침대에 몸을 뉘이기 바빴던 10월이라 나는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차라리 옅은 두 줄이라도 확인해 재택근무든 무급휴가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오랜만에 잡아둔 약속들도 병원 진료도 개인적인 시간들도 모두 접고 떨어지는 컨디션을 겨우 부여잡아 오늘이 왔다. 남편이 격리를 끝내고 오니 내가 가지고 있던 일상의 긴장감이 확 풀리고 비로소 안정감을 되찾았다. 남편은 격리 후에도 일주일은 더 아팠고 나는 그 곁에서 최대한 잘 돌보려 노력했지만 사실 우리 집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 대한 롤은 남편에게 더 쏠려있었으므로. 남편의 등장만으로 그저 나는 심리적인 안정감에 몸살 기운도 모두 걷어졌다.


배는 갈수록 나오고 퇴근길 더 이상 노을을 볼 수 없는 계절이 오고 있다. 주말 사이 벌어진 일로 말도 회사에서도 외국인 유학생들의 안녕을 확인하라는 연락이 빗발쳤다. 모두가 안녕하기를. 그리고 모두가 평안하기를.


2. 운전

하루에 2시간씩 꼬박꼬박 운전을 하다 보니 어느새 운전이 조금 늘었다. 지금 이럴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때라고 하던데 다행히 늘 같은 길을 고집해서 다니다 보니 카메라의 위치나 어느 차선이 더 빠른지 따위의 노하우만 쌓여가고 있다.


얼마 전 본가에 내려가는 고속도로를 처음으로 운전했다. 내려가는 거리는 수십 킬로에 달했지만 시간은 한 시간이면 충분해서, 거의 출근길 정도의 피로도였다. 친구를 만나러 어느 저녁엔 여의도를 관통해 퇴근을 하기도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의자를 젖히고 앉아 친구를 기다리는 내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편안했다.


낮이 길던 계절부터 운전을 연습하기 시작해 근 4개월을 매일 운전하니 이제 어느새 길어진 밤 퇴근길이 조금씩 덜 무서워지고 있다. 그래도 어서 낮이 길어졌으면. 퇴근하고 돌아와 노을이 언제 지나 마음 닳아하며 창밖을 내다보던 그 계절이 난 더 좋다.


3. 산책

엊그제 임신 후 처음으로 무려 만보가 넘는 산책을 했다. 그렇게 긴 산책로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거의 산을 넘어가는 수준의 수목원 둘레길을 걸었다. 단풍이 멋들어지게 물들고 있었고 날씨도 딱 좋았다. 열심을 다해 걷고 나니 다리도 골반도 시원찮았다. 발마사지기도 30분이나 하고 또 주무르기도 반복했지만 여전히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역시 움직인 만큼 몸이 편해졌는지 20분 남짓의 산책이 오히려 더 쉬워졌다. 동네를 걸어 다니며 낙엽도 밟고 커피도 마셨다. 오후엔 시내버스를 타고 빵집도 들르고 동네 구경도 마쳤다. 이 정도의 고요한 주말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월화수목금이 지치고 힘들어도 이 정도의 고요한 이틀이면 좋다고.


4. 태동

오늘은 23주. 임신 일기를 쓸 짬이 도저히 생기지 않아 여러 편의 글을 저장만 해둔 채로 어느새 23주 중반이 되었다. 요즘은 아기가 많이 컸는지 종종 태동이 눈에 보인다. 단 음식을 먹으면 더 열심히 움직이고 아침 출근 전과 저녁 퇴근 후 인사라도 하는 듯 쉼 없이 움직인다.


처음 태동을 느낀 게 17주~18주 정도였던가? 그땐 너무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났었는데 이제는 옆구리도 뻥뻥 차고 배꼽 아래서 열심히 꼬물 거리기도 한다. 임신 중기는 임신 40주 중 황금기라고 하던데, 체력도 올라오고 또 태동도 느끼면서 확실히 불안감보다 기쁨이 더 커지는 시기인 것 같다. 아마 그 안정감에서 오는 행복감이 크겠지.


오늘은 퇴근 후 빵 한 조각을 먹고 눕자마자 열심히 움직여 부리나케 카메라를 켜서 영상으로 남겼다. 남편도 엄마도 친구들도 놀라워하는 아기의 움직임. 좀 있다가 저녁 먹고도 잘 부탁해. 아빠가 손 올리면 더 많이 움직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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