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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14. 2022

11월 14일 월요일

간만에 칼퇴한 월요일에 쓰는 일기

1. 칼퇴

고등학교 시절 종이 울리길 기다리던 어느 수업시간의 모습처럼 마음속에 퇴근시간 종소리를 입력해두고는 모니터 아래 전자시계가 5시 30분을 가리키자마자 바로 모든 걸 멈추고 나왔다. 코로나 격리 해제와 동시에 시작된 출근과 미룰 수 없는 대대적인 행사 일정이 잡혀있는 주간이라 늦어도 1시간에서 2시간 야근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일이 술술 잘 풀렸다.


중간중간 행사 준비도 하고 일주일간 미뤄뒀던 일들도 하면서 문득 역시 휴식은 좋은거야라는 마음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크게 코로나 격리였든 무엇이든 임신을 한 이후로 이렇게 나와 내 남편과 아기만 바라보며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3일 열심히 앓고 나머지 기간은 잘 쉬었다.


나는 아무래도 집보다 밖을 선호하는 사람이라서 격리기간 동안 볼멘소리가 계속 나왔다. 아 지겹다. 아 나가고 싶다 같은 말들. 도저히 집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집순이가 되는 건지, 나는 태생이 그렇지 못해 결국 회사를 전전하고 출근과 퇴근이 있는 삶을 선택하는 것 같다.


꼬박 일주일 만에 운전대를 잡으니 모든 게 새로웠다. 월요일 아침의 불필요한 막힘도 어느덧 빠르게 떨어지는 노을을 겨우 보며 돌아온 저녁 퇴근길도, 지난 5개월을 매일 운전했던 게 무색할 만큼 심지어 떨리기까지 했다. 운전은 언제든 이렇게 어색한 걸까 싶으면서도 마지막 골목에서는 배 위에 손을 턱 얹고 주차자리나 있으면 좋겠다고 나지막이 되뇌며 아파트로 들어섰다. 칼퇴하니 얼마나 좋아. 주차자리도 있고 일기도 쓰고 남편이 오기 전까지 뒹굴거릴 시간도 있고, 칼퇴 만세다 만세!


2. 명복을 빕니다

올 한 해 유난히 장례식에 갈 일이 많이 생겼다. 친구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 부산으로 떠난 휴가에서 올라오는 길에 바로 식장에 들르기도 했고, 시외숙모가 짧은 투병 끝에 돌아가시기도 하고, 오랜 지인의 할머니의 상을 치르기도 했다. 모든 이별에 마음이 아프고 쓰였지만 막상 가까운 이들의 부고가 아니어서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그러니까 지난주 예전 직장 동료의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어쩌면 다행이었던 순간들.


중국어를 전공하고 중국으로 출장을 뻔질나게 다니면서도 종종 패배감이 드는 출장들이 있었다. 외교적인 문제로 시끄러운 정세 속에 출장을 갔던 날, 하필이면 ‘박’씨 성을 가진 과장님을 모시고 저녁 의전에 참석했는데 ‘최’씨 성을 가진 내가 과장님을 모신다며, 한국인들은 최 씨가 박 씨를 모시는 게 습관이냐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며 기가 막히기도 했다.


게다가 같은 도시를 한 달에 3번씩 들락날락거려도 도저히 문을 열어줄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엔 당일치기로 중국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겨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는 또 그 ‘박’씨 성을 가진 과장님과 관계자들과 사진을 찍고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겨우 저녁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긴 연휴엔가는 내몽골 여러 도시를 돌며 신선한 양고기와 술을 먹어야겠다며 나선 중국의 높은 사람을 따라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중국 국내선을 타고 봉고로 시 경계를 넘으며 출장을 마치기도 했다. 출장을 시작할 때 가득 채워온 캐리어 속 비상약이며 숙취해소제, 간식들을 질리도록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집에 돌아오는 일정. 그때 과장님은 빈 속에 고량주를 들이부어 결국 각혈하고 포도당을 맞고 호텔에 누워 남은 일정을 마무리했었다. 그리고 남은 출장팀 인원들이 매일 저녁 한 명씩 술 앞에 전사하고 결국 마지막 날에는 나도 맥주를 7병이나 병나발을 불어가며 마시기도 했다. 내몽골 맥주가 맛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비린내는 중국 맥주에 쓰러질 다음 사람은 바로 나였을 거다.


출장을 다니면서 결국 3-5명의 출장팀 인원을 제외하고는 믿을 구석이 없어 미우나 고우나 늘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마사지도 받아가며 일 년에 몇 달이고 수십 번 비행기를 함께 타고 내렸다.


이 모든 출장을 함께했던 ‘박’씨 성을 가진 과장님이 돌아가셨다. 올 초 문득 생각이 난다며 전화를 걸어서는 이직한 회사는 좋냐고 본인은 너무 힘드니 다시 돌아오라고 볼멘소리를 하던 과장님. 그냥 그렇게 홀연히 떠나셨다. 소식을 듣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프셨을까, 괴로우셨을까, 어떤 이유로 어떤 순간에 그렇게 떠나셨을까 생각이 이어졌다. 그전에 있던 모든 찰나들이 다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코로나에 잠깐 서울 본사에서 만나 수다 떨던 기억, 사투리로 쉼 없이 욕을 하시던 기억, 딸내미 사진을 슬쩍 보여주시며 말도 안 되는 업무상 부탁을 하시던 기억 같은 것들.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연신 물음표만 보내는 나에게 눈물이 앞을 가려 벌써 몇 날 며칠을 울고 계신다는 이어지는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참 사람이 살고 죽는 게 이렇게 한 순간인가 싶었다. 이렇게나 한 순간인가. 그렇게 올해의 또 한 번의 가슴 아픈 장례식에 초대되었다. 깊은 명복을 빕니다. 꼭 우리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요. 과장님.


3. 휴직

1월 중순이면 휴직 시작. 코로나 걸리기 전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아무래도 1월 초부터 휴직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출산 44일 전부터 휴직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빨라야 1월 중순이었다. 젠장.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가장 바쁜 달이 바로 1월인데, 어차피 휴직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차라리 미리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정들을 12월 중순으로 빠르게 옮기고 있다. 이왕이면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은 하고 들어가야지.


휴직이 시작되면 한 달 동안 영어 성적 하나 갱신하고, 가구를 옮기고, 방을 하나 비워 아기 물건을 채워 넣어야 하고 그전에 멀리 미뤄둔 친구들과의 약속도 지켜야 하는데. 그럼에도 어쩐지 따분할 것 같은 생각에 영어학원이라도 좀 다닐까 싶다고 했다가 남편에게 비웃음을 들었다. 몸이 날로 무거워지는데 무슨 학원, 무슨 공부. 애기 물건 세탁하다가 결국 맞이하겠지 엄마의 삶. 휴직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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