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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19. 2022

12월 19일 월요일

한 주 걸러 쓰는 월요일의 일기

1. 지난주엔

행사가 있었다. 아마도 휴직 전 하는 마지막 행사.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10주에 한 번씩 500여 명을 데리고 하는 행사를 다르게 고작 100명뿐이니 긴장을 놓고 있던 게 화근이었다. 월요일 출근 전 쉬이 잠에 들지 못하고 행사 체크리스트를 정리하고 새벽녘 현실보다 몇 보 앞서는 불안감으로 겨우 아침을 맞이했다.


하필이면 3주 전부터 교체 공사 중인 엘리베이터 덕에 아침부터 차에 박스를 싣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그 전주에 주문해둔 현수막까지 행사 10분 전에 겨우 도착하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행사를 마치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후덜 거리는 다리를 잡고 퇴근시간을 기다리던 그때, 하루 종일 뭉치던 배가 결국은 풀리지 않고 점점 더 솟아오른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서 걸어보았지만 배는 땡땡하게 뭉쳐 풀리지 않았다. 등을 기대어 양치를 하고 물을 아무리 마셔봐도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아 응급으로 진료를 예약하고 퇴근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왔다. 운전대를 잡을 용기가 없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에 도착해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윽고 분만실 옆 베드에 뉘어졌다. 10분에서 15분에 한 번씩 배 전체를 쥐어짜는 강한 수축이 육안으로 보이고 느껴지고 있어서 수축 검사와 태동검사를 했다. 수축이 강하면 입원을 면치못한다는 원장님의 말씀에 조금 무서웠다.


다행히 1시간 정도 링거를 맞고 또 근종 부근의 통증을 잡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까지 맞고 나니 몸이 약기운을 잘 받아주어 20분에 한 번 수축이 잡히는 정도가 되었다. 남편은 그 사이 내 직장에 들러 차를 가지고 와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강한 어조의 원장님께서 ‘슬의생’의 한 장면처럼 남편에게 어떤 상태이며 지금은 어떤 의료적 조치를 하고 있고 여기서 더 나빠질 경우 입원, 좋아질 경우 퇴원이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남편과 집에 와 죠스떡볶이를 시켜먹으며, 링겔만 맞아도 이렇게 좋다며 철없이 떠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쉬었다. 배도 골반도 다리도 모두 아팠고 우선 휴식이 필요했다. 3주 간의 회사생활은 얼마나 하드코어 했던가. 두 번의 행사, 4명의 총원 중에 2명이 공석이라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2명이 모든 일을 건사해야 했으며,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를 매주 맞이하며 온 몸으로 그 순간들을 다 겪어내야 했다. 병원에 가고 있다는 나에게 급히 연락 와 그간 단 한차례도 하지 않았던 “고생했다.”는 말을 5-6번 쏟아내는 그를 보며 참 비겁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지난주를 보냈다. 링거에 기대어 식사도 모두 배달시켜먹고 매일 1만 보 걷던 과거의 체력을 기대하지 않으며 겨우 1 천보 정도 걸어가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렇게 보내도 3일이 지나니 다시 몸이 안 좋아졌다. 무리가 가장 위험하다고 한 번 더 유사한 증상으로 오면 입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에 몸을 사리고 있다. 앞으로 휴직까지 한 달. 나는 내가 지켜야 한다. 덜 움직이고 덜 스트레스받으면서 그렇게.


2. 주말

오랜만에 태교 겸 크리스마스를 느끼기 위해 듣기로 했던 꽃 수업을 결국은 뒤로하고 골골대며 주말을 맞이했다. 퇴근하고 꽃하러 다녀오면 12시가 훌쩍 넘곤 했던 3-4년 전의 나. 그것도 지하철을 두 번은 갈아타고 버스까지 올라타 1시간 반은 꼬박 걸렸던 길이었다. 차로 움직이면 된다지만 꽃은 엄청난 기쁨과 또 체력을 요하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무리하지 않고 양해를 구했다.


양해를 구하지 못한 일정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호텔 숙박권이었다. 남편에게는 미국 고모와 미국 이모가 한 분씩 계신데, 어찌나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지 매번 미국에서 선물이 바리바리 들어오곤 하는데 이번엔 임신으로 여행을 못 가는 우리를 위해 미국 고모가 호텔 숙박권을 선물해주셨다. 정확히는 포인트와 높은 등급.


크리스마스 당일엔 아무래도 밖에 못 나올 것 같아 그 전주로 3개월 전쯤 미리 예약해둔 숙박을 위해 속옷 2장과 로션과 크림만 핸드백에 가벼이 챙겨 나왔다. 집에서 20분 거리. 수영도 헬스도 근사한 저녁도 아무것도 못하지만 집에 누워있으면 집안일이 계속 나를 기다리니까 차라리 남의 침대에 누워 쉬자는 심산으로 얼리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다. 호텔과 이어지는 쇼핑몰에서 1시간 조금 안 되게 먹을거리를 좀 둘러보다 결국 몸이 안 좋아져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까무룩 잠에 들었다.


도대체 내 체력을 어디로 모두 도망가버린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고작 2 천보 남짓을 걸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기운이 빠질 일인가 싶어서. 겨우 일어나 판다 익스프레스에 포케 한 접시를 먹고 또 잠에 들었다. 몸이 불편하고 역대급 한파에 어쩐지 으스스해 2시간에 한 번 일어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한강을 바라보기도 하고 눈 내린 여의도 공원도 구경했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몸이 되고 나니 부산도 제주도도 강원도도 어쩜 이렇게 멀기만 한지. 서울에서 서울로 겨우 움직여 쉬어가는 그 순간도 참 행복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여름으로 또는 또 다른 겨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 몸이 가벼워질까 싶다가도 지금 이 건강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려 노력한다. 아기의 이름을 부를 때, 무언가를 먹고 마실 때 우리가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인지 곱씹어보면서 누구보다 건강히 그리고 안전하게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3. 친구의 개념

나는 주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MBTI로 따지면 내향적이고 계획적인 사람들. 그럼에도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남편과는 아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남편은 외향적이고 즉흥적인 데다 계획이라곤 딱히 가지고 있지 않은 ESTP. 나는 갈수록 ENFJ에서 INFJ로 변하고 있다. 우리 둘의 정말 많은 점이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양극단에 있는 건 ‘친구’에 대한 개념이다.


나는 때로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라고 할 만큼 ‘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시간. 나의 에너지. 나의 관계. 그러니까 내가 나로서 혼자 있을 때와 동일한 수준의 편안함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관계만 가지고 간다. 그런 관계가 많을 수 없기 때문에 ‘친구’라 부를만한 존재들이 아주 적기도 하고 그 존재가 의도치 않게 일정 수 이상이 넘어가면 곧바로 불편해진다. 그 순간에서 어떤 일상을 꾸려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그냥 그 모든 관계에서 손을 떼고 싶어 진다.


내가 참석하는 경조사의 수도 ‘친구’의 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가족의 일을 치르는 만큼의 번거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움직인다. 동시에 내 경조사에 누군가가 번거로움을 감당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서운하지도 마음 쓰이지도 않는다. 안그래도 바쁜 세상에 누가 누구의 기쁨과 슬픔을 매번 다 함께해줄 수 있겠나 싶어 그저 그런가 보다 할 뿐.


그에 반해 내 남편은 아주 사회적인 사람이고 관계가 중요한 사람인 게 확실하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 온 가족이 모이는 날들이면 꼭 주목받고 싶어 안달을 낸다. 그 날들에 딱히 빼지도 않는다. 또 친구들 사이에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아마도 잘은 모르겠지만 회사나 그 외의 모든 관계에서도 그런 것 같다. 아주 광범위한 그 모든 관계를 두고 ‘친구’라고 일컫는 것만 봐도 나와 아주 다르다. 친구들의 경조사에 모두 마음을 쓰고 왠만하면 거절하지 않고 왠만하면 빠지지 않고 결국 그 자리를 채우고야 마는 성격. 나와 정반대다. 딱히 관계에 대한 계산적인 우선순위같은 건 없다. 안그래도 바쁜 세상에 관계성을 유지하느라 더 바빠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나에게 이제는 ‘아주 먼 지인’으로 분류되는 학창 시절 친구들을 남편은 여전히 ‘친구’라 부른다. 거의 20년 전 한때 좋은 시절을 함께 보냈다 하더라도 이제 그 이상의 시절이 지나 더이상 공유할 것도 없는 그저 스쳐가는 인연들일뿐인데, 때로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소중히 여기고 또 그 관계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도대체 그 관계가 어느 정도로 중요한 건지 정반대의 나는 여전히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가 안 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와 너와 내 가족과 아기의 안위일 뿐인데. 결국 나이가 들어 소진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는 때가 되면 그땐 어떻게 될까. 나는 뭐 외롭게 나와 몇 없는 친구들과 잔잔한 일상을 나누면서 그렇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늙겠지. 그럼 너는 어떨까. 나랑은 좀 다를 것 같은데. 참. 살 부비고 사는 가족인데도 마음을 같은 선상에 두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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