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Dec 26. 2022

12월 26일 월요일

2022년 한 해의 마지막 월요일에 쓰는 일기

0. 올해의 무엇

올해의 키워드: 변화 - 첫 집과 직무와 장롱면허 탈출

올해의 행운: 아이유 콘서트

올해의 영화: 헤어질 결심

올해의 책: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 황선우

올해의 발견: 부산

올해의 기쁨: 나의 작은 우주

올해의 도전: 제로페이 그리고 고양이(새송) 만나기

올해의 아쉬움: 내 욕심으로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들

올해의 다행: 나를 대신해 성진이가 나를 지켜준 순간들

올해의 발견: 일취월장 중인 남편의 음식솜씨


1. 2022   월별 정산

1: 인테리어, 생일 그리고 부산

집에서 남편과 오손도손 집을 꾸미며  달을 보냈다. 지난 연말에 인테리어(방화문은 삐걱거리고 추운 겨울 비닐로 바람만 겨우 막고 밥을 먹기도 했던) 이사를 마무리하면서 이삿짐 사이에 있던 레고를 꺼내 맞추며 연초를 맞이했다. 생일엔 미술관도 가고 월말엔 부산여행도. 부산이 그토록 좋은지 몰랐다. 바다와 도시가 함께인 .


2: 베이킹

우리의 새 주방에서 하루가 머다 하고 베이킹을 했다. 비싼 버터를 사서 마들렌을 하루에 12구씩 구워내고 비스킷에 초코 바나나 브레드까지 호기롭게 굽고 그대로 모든 틀을 접어두었다. 버터향이 버터냄새로 느껴지는 급격한 변덕. 그래도  시도마다 눈에 띄게 달라진 통통한 배꼽을 보며 즐거웠다.


3: 사무실 이전, 새 차, 할머니

매일 튤립을 보며 버텼다. 사무실을 옮겼다. 정말 바빴다. 그리고 1년의 기다림 끝에  차가 나왔다. 정신없는 회사생활과 동시에 시작된 10 장롱면허의 . 짧지 않게 아프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남원에 내려갔다. 새로 생긴 넓은 호텔을 찾아 온돌방을 예약했다. 할머니는 다행히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고 돌아가셨다. 장례도  치르게 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4: 우도, 남편 생일

시어머니의 환갑기념으로 우도에 다녀왔다. 제주도가 아니라 우도. 내려가기 전 다이소에서 어깨띠에 왕관까지 챙겨 내려갔고, 미리 예약하지 못해 제주도에서 못생긴 케이크를 픽업해서 겨우 구색을 맞춰야 할 정도로 일이 바빠 나는 고작 주말 이틀만 즐겼던 여행이었지만 정말 즐거웠다. 사우나와 노천탕을   있는 멋진 숙소에서 즐겁게 먹고 놀고 쉬었다. 어머님과 우리집 그리고 남편 여동생네까지 6 모두 낯설지만 익숙했던 우도 여행. 그리고 남편 생일에는 홈메이드 티라미수도  먹었다.


5: 제주도, 작약

마지막 직원 티켓을 소진했다. 만 원짜리 제주 비행기 티켓 그동안 고마웠다. . 5 연휴 내내 제주도 여러 바닷가를 열심히 옮겨가며 휴가를 보냈다. 비가 내린 스누피 가든도 걷고 이르지만 반바지도 꺼내 입고 푸른 사계해변을  앞마당처럼 누렸단 호사. 봄의 여왕 작약도 잔뜩 사들여 매일 ‘오늘의 작약 구경했다.


6: 양양, 초당옥수수 그리고 임신

어느 날 병원 진료를 마치고 속옷   없이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난소에 물혹이 생겨 임신 준비를 당분간 쉬어가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병원에서 나와 한낮의 서울 풍경을 내다보며 내심 서글퍼하던 순간이 또렷하게 생각난다. 알고 보니  달에 임신이 되었지만.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막국수도 먹고 한강에도 자주 놀러 갔다. 궁을 걷기도 하고 초당옥수수를 잔뜩 넣어 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7: 입덧, 해바라기, 헤어질 결심

입덧 시작. 열무국수 욕심냈다가 결국 군냄새에  입도  먹고  버렸다. 임신사실을 알리기엔 너무 이르고 컨디션은 자꾸만 떨어져 결국 여러 약속들을 저버리기 시작했다.  와중에 집으로  손님들 덕에 얼굴만 한 해바라기를 선물 받기도 하고, 업무차 롯데월드에 500명을 인솔하러 갔다가 배도, 골반도, 허리도 너무 아프고 입덧까지 올라와 크게 후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만났다. 올해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관.


8: 부산

결혼 후 출근했던 결혼기념일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근사한 식당도 하나 예약하지 못했다. 기념일 당일에 큰 행사가 있어 바빴다. 가장 힘든 여름이었지만 나를 비롯해 어떤 누구도 임신 초기의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지킬 방법은 그저 어리숙한 운전실력일지라도 걷기를 최소화하고 자차 출퇴근을 하는 법뿐이었다.  덕에 운전은 엄청 늘었지만. 난임병원을 졸업하고 옮긴 분만병원의 호방한 원장님께서 “운동, 사우나, 산책, 여행 모두 하고 싶은  다 해도 되는 ‘안정기 됐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길로 2시간에   스트레칭하며 부산까지 장거리 여행. 바다도 실컷 보고 노을도 실컷보고 좋았다.


9: 비염,  한 번의 양양, 아이유 콘서트 

9월엔 임신성 비염으로 한 달 내내 고생했다. 추석엔 짧게나마 양양 여행을 다녀왔고 맛있는 오마카세를 먹었다. 임신하고 두 번째 스시. 산을 바라보며 책을 읽다가 바람결에 낮잠을 자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멋지게 지는 노을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망의 콘서트. 임신으로는 16주에서 20주 사이였는데 거의 활동성에 있어 황금기였다. 입덧은 멈추고 비염은 있지만 사지가 멀쩡히 체력을 받쳐주던 황금기. 어느 날은 청바지가 너무 입고 싶어 남편 바지를 입고 나갔다가 부리나케 옷가게에 들어가 고무줄 반바지를 샀다.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10: 춘천과 체력저하, 무한야근, 남편의 코로나

임신을 확인하던 6 강원도를 시작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8 부산, 9 양양에 이어 10월엔 춘천 여행을 다녀왔다. 이때부터 눈에 띄게 체력이 떨어졌다. 10월엔 교육부 프로젝트가 있어 매일 야근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 왔지만 출근길 고작 5 정도 이어지는 은행나무길을 보며 매일 계절이 지나가는 게 아쉬웠다. 야근을 마치면  골반과 허리가 부서질 듯이 아파 겨우 어기적거리며 퇴근을 하곤 했다. 남편이 데리러 와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와 지쳐 잠들었다. 남편은 내가 야근하던 주간에 코로나에 걸렸고 우리는 거의 만나지 못해 나는 음성으로 남았다.


11: 야근종료, 코로나

마침내 보고서와 프로젝트를 마치고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 지하철 역에서부터 시작된 저혈압으로 30 거리를 돌고 돌아 1시간이 넘게 걸려 집에 왔고 이윽고 코로나에 걸렸다. 정말 아팠다. 그럼에도 3월부터 11월까지 한없이 바쁘기만 했던 회사일에 쉬지도 못하다 임신하고 처음으로 일주일을 풀로  쉬었다. 동네 원스톱 의료서비스를 해주는 80년대 이후 절대 분만을 안 했을 법한 산부인과에서 초저화질 초음파로 아기의 안녕을 확인했다. 그리고  행사. 행사를 마치고 나니 배가 산처럼 불러있었다. 어느덧 임신 후기.


12: 응급진료와 비로소 시작한 엄살부리기

12월엔 사무실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정말 바빴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맞물려 5층에 있는 사무실까지 매일 계단으로 오르내리기를 3주. 격주로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한 번, 배뭉침으로 한 번 응급진료를 봐야 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음을 실감하며 연말을 맞이한다. 두 번의 응급진료 끝에야 비로소 이제 나에게는 20% 정도의 체력만이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남편이 대동하지 않는 (당장 병원에 갈 수 없는) 일정은 모두 미루거나 없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오고 연말이 왔다. 대부분의 날들을 누워서 보내다 보니 신물이 올라오고 몸무게의 앞자리가 2번이나 바뀌고 있지만 아기는 매일같이 다른 규모감을 뽐내며 내 뱃속을 유영한다. 그거면 됐다.


2. 총평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다름 아닌 ‘달리기와 탕목욕’ 일만큼 지금의 나는 아주 소소하고 소박한 것을 원하는 삶을 산다. 나에게 2022년이란 그런 한 해였다. 버섯을 불려 솥밥을 내어주는 남편에게 매일 감사의 뽀뽀를 날리고 거울과 옷장을 등진 채 건강한 보름달이 되어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내년도 딱 이만큼의 겸손한 마음으로 맞이하려고 한다. 겨우 1세트 남았다는 알림에 구입한 미니 달력과 같이 2023-2032 10년 다이어리에 매일 한 줄씩의 일기를 쓰겠다는 당차면서도 소박한 결심을 가지고 살아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어느 해보다  빛나고 행복한  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올 한 해는 매일의 바쁨과 엄마가 되었다는 기쁨과 같은 크기의 걱정과 체력저하와 물리적인 아픔이 매일 뒤섞였다. 어떤 날은 불면에 괴롭다가도 어떤 날은 지쳐 잠들었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만 1년, 새로운 집과 동네에서의 만 1년. 애써 외면하며 무감정으로 보낸 5개월과 기쁨과 걱정으로 맞이한 7개월간의 임신기간.


매일이 특별했지만 지나고 나면 그저 한 두줄로 겨우 요약되는 잔잔한 하루였던 것 같다. 올해의 마지막 월요일, 엄마가   김밥과 시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꽃게찜으로 두둑하게 저녁 먹고 여전히 월요일의 일기를   있음에 뿌듯할 뿐. 매일이 이렇게 귀하게 쌓여간다. 2022  !

매거진의 이전글 12월 19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