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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03. 2023

1월 2일 월요일

너무 쉼없이 와서 새해인지 월요일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1. 2023

연말 연초 너무 무자비하게 금요일에 2022년의 공적 일정이 끝나고 주말을 보내고 나니 2023년의 또 다른 공적 일정이 시작됐다. 연휴 하나 없이, 휴일 하루 없이 이렇게 숨 고르기도 못한 채 2023년 새해를 맞이하다니.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휴일을 챙겼는지 지난 금요일과 어제는 차가 하나도 안 막혀 출퇴근길이 널널했다. 어차피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거 차 막히는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야 나았지만 어쩐지 샘이 났다.


방학이 시작되고 단축근무로 출근시간이 한 시간 밀리면서 남편과 같이 출근을 한다. 매일 추운 아침 공기를 함께 맡고 차에 올라타면 ‘아! 여름나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겨울이면 꼬박꼬박 가던 한겨울 여름나라로의 여행이 멈춰버리니 크리스마스도 연말도 연초도 그리고 이어지는 내 생일도 조금 아쉽다. 내년 크리스마스엔 새 식구를 데리고 괌이라도 가보자고 마음먹었지만 글쎄. 과연 10개월 아기를 데리고 갈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2. 7

이제 앞으로 7번만 출근하면 휴직에 들어간다. 아주 많이 남은 것 같았는데 7번이라니. 그 와중에 금요일엔 연차, 다음 주 금요일은 태아검진시간을 활용할 예정이라 ‘휴직 전 마지막 근무_최최최종. txt’ 같은 기분이 든다.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직장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며 한 번이라도 얼굴을 더 보고 싶은 사람들과 부지런히 약속을 잡아 식사를 한다. 그중에는 입사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인연들도 있고, 함께 입사한 동기들도 있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크고 작은 수다를 떨며 무료한 시간들을 함께 보낸 선배도, 옆자리에 앉아 의지했던 동료들도 휴직을 핑계로 부지런히 만나고 있다.


7번이 지나면 아마 1년의 시간이 꼬박 지난 후에야 다시 돌아가게 될 직장인데, 얼마나 낯설고 어색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7년을 다닌 직장도 2달을 쉬고 복직하니 어려웠는데 2년도 못 채운 직장에 1년 후 복직이라니. 낯서네.


그럼에도 남은 7번의 출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인수인계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메일로 오고 간 공지사항들을 하나하나 캡처하고, 단체 대화방에서 진행했던 여러 이벤트들을 잘 정리해 각 파일의 경로와 첨부파일로 붙여두었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는 인수인계서로 채우는 법. 마지막까지 열과 성을 다하고 떠나야겠다.


3. 10년 일기장

올해는 파격적인 일기장을 샀다. 2023년에 시작해 2032년에 끝나는 10년 일기장. 마음의 짐처럼 책꽂이 한편에 꽂힐지라도 적어도 10년 중 1번의 오늘은 기록되지 않을까 싶어서.


작년과 재작년에는 일기장을 사지 않았다. 사실 일기장을 뒤적거리며 과거의 나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건 미래의 나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과거의 기록을 읽으며 매번 새로운 감상을 얻곤 했기에 절대 놓지 못했었는데 어느 순간 내려놓게 되었다.


SNS에 사진을 업로드하고 또 그 글을 내년 내후년에 ‘과거의 오늘’로 찾아볼 수 있게 되니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뒤적거릴 부지런함이 사라진 것도 한몫했다. 물론 월요일기 덕에 대략적인 기억들을 모두 이곳에서 볼 수 있어 더욱더 부담 없이 일기장을 없애버리기도 했고. 그래서 일기장이 없던 지난 두 해가 아쉽냐고 물으면 조금 아쉽다고 답하고 싶다. 영화 티켓이나 공연 티켓, 비행기 티켓과 여기저기서 받은 무용한 스티커들도 덕지덕지 붙여주는 게 일기장의 묘미인데,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쫓아올 수 없었다. 물론 사진들로 그 기억들을 단편적으로 가둬둘 수는 있겠지만.


벽돌만 한 10년 일기장에 앞으로 10년간 손때 묻은 많은 기록들을 남겨보려고 한다. 곧 태어날 나의 아기와의 기억이 곳곳에 담기겠지. 몸을 뒤집은 날, 걸음마를 뗀 날, 엄마라고 부른 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쳐 학교에 입학한 날까지. 10년 후 월요일기에 꼭 이렇게 적을 수 있었으면. ‘첫 번째 10년 일기장이 끝났다.’라고.


밤의 서점 10년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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