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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09. 2023

1월 9일 월요일

지진에 인공위성 추락까지 다사다난한 월요일의 일기

1. 미세먼지

코로나가 갓 발생했던 2020년 초, 설 연휴를 맞이해 남편과 남동생을 양쪽에 끼고 방콕에 갔었다. 여유롭게 우버이츠를 불러 팁싸마이 오렌지주스를 먹고 개운하게 일어나니 뉴스에서 코로나 관련 소식이 무서울 정도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 당시 방콕 내 확진자는 5명 정도. 우리나라는 해당이 없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였지만 공항과 태국에서는 왠지 불안함이 엄습해 미세먼지용 마스크 KF94를 잔뜩 챙겨 여행을 떠났었다. 사실 그 상황이 엄청나게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도 또 와닿지도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갑작스럽게 휴직을 권장받고, 1년 전부터 준비했던 미국 포틀랜드 여행이 비행기 결항과 전 세계로 창궐한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면서 그제야 이게 작은 전염병이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던 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코로나 초기에는 알레르기와 비염으로 고생하느라 서랍 안에 늘 100개씩 쌓아두던 KF94 덕에 마스크 대란을 겨우 넘겼다. 생각해보면 최근 일주일간의 미세먼지보다 덜한 미세먼지 농도였는데도 집안 곳곳에 마스크를 쌓아두고는 누구보다 부유하게 그것들을 낭비했던 과거의 나.


여하튼 그 이후로 100개 이상 쌓아두었던 여러 마스크 중 지난 일주일간 KF94만 쏙쏙 꺼내어 쓰느라 고생했다. 무슨 미세먼지가 이렇게도 지독하게 온 건지 눈코입귀 안 불편한 곳이 없다. 코로나 비말마스크 썼다간 콧구멍에서 새카만 먼지가 나올 것 같아 답답해도 94 열심히 쓰는 중. 으아 더 겨울 같은 날씨가 이어져도 좋으니 미세먼지 제발 이제 사라져 줬으면. 미세먼지 사라지면서 코로나도 싹 이제 좀 끝났으면 좋겠다. 어우 지겨워.


2. 군고구마에 가래떡

2주에 한 번 여성농민 공동체인 ‘언니네 텃밭’에서 꾸러미를 받고 있다. 주로 제철 채소류가 주를 이루는 편이고, 여름을 제외하고는 직접 만든 두부가 함께 온다. 자연방사 유정란 4알, 반찬 1종류 그리고 시금치, 토란대, 옥수수보리차 등 5-6개의 농산물이 종이 상자에 담겨 배송된다.


이번주 꾸러미에는 고구마가 있었다. 무안에서 농사지어 올라온 고구마에 아빠가 담가준 김장김치, 그리고 방앗간에서 갓 뽑아 올라온 가래떡까지. 누가 봐도 겨울을 상징하는 간식들로 한 끼 저녁을 든든하게 챙겨 먹었다. 집 한가운데 보일러 빵빵한 곳에 먼지 수북이 쌓인 무거운 꽃무늬 담요까지 덮으면 ‘겨울의 단상’ 그 자체였을 모습.


한창 추운 날들은 환기시키다가 온기를 다 빼앗길까 종종거리고 따뜻해지니 이제는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꽁꽁 닫고 있느라 집 안에서 뭐 시원하게 음식도 못 해 먹고 올 겨울 날씨 도통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쉽지 않다.


3. 블로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블로그에 광고글을 올려달라거나 협찬 물건을 써달라는 연락이 많이 오기 시작했다. 2010년 정도부터 꾸준히 써오던 블로그인 데다 코로나 직전까지는 일기도 곧잘 블로그에 적어오곤 했어서 애정이 남다른 곳인데, 어떻게들 알고는 문자로 쪽지로 연락이 오는지.


이러나저러나 그 덕에 블로그에 들어가 글들을 찬찬히 보고 시간이 많이 지난 여행기는 비공개로 전환하고,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를 중심으로 브런치 일기들을 블로그로 하나둘 차근차근 옮겨두었다. 게다가 임신 관련된 일기들은 나 역시도 블로그에서도 곧잘 검색해서 찾아보는 편이라 블로그에 ‘임신 N주차’라는 제목을 달아 글을 옮기니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눌러주었다.


브런치에서도 블로그에서도 역시 늘 공감하게 되는 소재들은 있으므로. 나만의 일기장에만 고이 적어두었던 글들을 만인이 의지만 갖는다면 검색할 수 있는 포털로 옮긴다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내 글들이 더 많이 읽히는 데에 조금 더 기쁨을 가져보기로 했다. 블로그에서도 브런치에서도 만납시다 우리.


4. 5번

이번주 금요일, 마지막 출근일이다. 책상 정리나 파일 정리 따위나 하며 마지막 주를 보내려고 했는데 출근하자마자 갑자기 마무리해야 하는 일부터 새로 보완해야 하는 일까지, 여느 월요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지난 10개월간 대학교 안에서도 조금은 동떨어진 어학당에서 일하면서 참 좋은 선생님, 강사님, 학생들을 만났다. 지난주 금요일엔 지난 세 계절을 함께 일한 조교님과 거의 울컥한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10개월이면 3~4개 학기, 한 학기에 고정된 행사일정이 2개 정도 있으니 학교 안팎으로 참 많은 일들을 함께해 왔다. 어학당 조교님들은 공부를 마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인연들이라 이제는 사무실에서 못 보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마저 못 본다고 생각하면 참 마음이 뭉클해진다. 좋은 인연들도 참 많은데.


게다가 유학 초기, 서류를 검토해 한국에 입국하는 비자 발급부터 함께했던 학생들이 어느샌가 사무실에 찾아와 “선생님 선생님”하고 부르는 모습도 보면서 꽤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한국어를 익히고, 친구들을 사귀고, 매 학기 수료식을 할 때마다 조금씩 늘어버린 한국어를 주체하지 못해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이야기할 땐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리곤 했다.


10개월이 모두 기뻤다고 하기엔 사실 힘들었다. 몸이 가장 힘들었고 그 10개월을 거의 대부분 임산부의 몸으로 버텨내야 해서 쉽진 않았다. 쉼 없이 돌아가는 10주의 업무 흐름도에 따라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또 그다음 10주가 코 앞에 와있곤 했다. 그래도 5번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오늘은 그저 여기저기 참 낡은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신경 쓰고 들여다봤더라면 500명이 넘는 학생들과 50명에 육박하던 강사님들이 나아짐을 느끼면서 공부하고 일하실 수 있었을까? 그저 이 정도의 얕은 애정과 책임감, 그리고 소소한 보람으로 시작해본다 휴직. 10개월간 고마웠다! 내 지난 10개월은 35페이지의 인수인계서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인연이 된다면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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