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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18. 2023

1월 16일 월요일

출산휴가 1주차 월요일기. 물론 수요일이지만.

1. 출산휴가

지난주 금요일 생일을 마지막으로 13개월의 휴직이 시작됐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계산해 본 날짜, 실은 몇 달 전부터 마음속으로 정해둔 마지막 출근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막상 그날이 다가오니 어딘가 쫓기는 것처럼 밀린 일을 쳐내기 바빴다. 2주 전부터 30페이지가 넘는 인수인계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또 인수인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하는 각종 회계 업무를 마쳤다. 짐이랄 것도 없어 서랍 속 서류들을 파쇄하고, 책상 위 남아있던 뜯지도 않은 핸드크림들을 동기들에게 나눠주며 마지막 정리를 마쳤다.


마지막 출근일 남편이 연차를 내고 함께 출근길에 나섰다.  2시간 남짓의 오전시간을 마치고 환구단이 보이는 식당에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자니 출근인지, 연차인지, 휴가인지, 생일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했다 출산휴가.


2. 월요일

생일을 보내고 주말엔 짧은 호캉스를 다녀왔다. 이러나저러나 집에서도 밖에서도 숙면을 취하기 어려운 말 그대로 ‘만삭의 임산부’가 할 수 있는 가장 마음 편한 외출은 호캉스라는 것을. 그리고 곁에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곁들인.


여행 같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휴가 1일차, 여유로울 줄 알았다.


병원에서 “아기가 많이 커서 이젠 언제 나와도 괜찮으니 너무 걱정 말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나오니 안도감보다 뭐랄까 조급함이 올라왔다. 아기 손수건이랑 아기옷 빨래도 안 했는데, 게다가 아기방으로 쓸 작은방 정리는 설 연휴에나 겨우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다 갑자기 양수라도 터져 수술일자보다 일찍 낳으면 어쩌지 등등. 그 길로 아기 손수건 빨래를 시작했다. 아기 손수건은 좀 유난스러운 세탁과정이 있는데, 세제 없이 한 번 세제 넣고 한 번 그리고 세제 없이 마지막 한 번 더 총 3번 물세탁을 하고 자연건조를 한 후에 다시 건조기에 넣어 먼지를 털어야 했다.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아기 손수건 빨래에 이불 세탁, 이불 교체, 집안 곳곳에 쌓여있던 집안일을 하니 해가 져있었다. 아주 보람찼지만 13개월짜리 휴가 첫날의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침대에서 좀 더 오래 뒹굴고 까치집으로 넷플릭스나 보려고 했는데.


2. 화요일

남편이 제발 쉬라고 말할 정도의 극한의 월요일을 보내고 화요일을 맞이했다.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오기로 한 바로 그날. 몇 주 전부터 먹고 싶었던 월남쌈으로 메뉴를 정하고 설레어하며 기다렸던 날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부지런히 월남쌈 준비를 했다. 뭐 월요일엔 세탁기 3번에 청소기 1번 식세기 1번도 돌렸는데 1시간 남짓의 야채 손질쯤이야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꼬부랑할머니처럼 허리가 굽어져 펴지지 않았다. 파프리카를 썰고, 샐러드와 야채류를 준비하고, 막달이 올 때까지 먹지 않았던 파인애플도 잘라 내었다 (파인애플 심이 자궁수축과 아기 조산을 유발한다는 글을 읽고 꺼리고 있었다.)


고작 2-3시간 친구와 수다 떨며 월남쌈에 커피 한 잔 한 것뿐인데, 그것도 안방에서 부엌까지 고작 15걸음 반경에서 움직인 게 다였는데 친구가 돌아가고 2시간에나 낮잠을 잤다. 그렇게 출산휴가 이틀차도 지나갔다.


3. 수요일

출산까지 23일, 오늘은 꼭 산책을 나가야겠다는 굳은 의지로 눈을 떴다. 비록 4시간 남짓을 겨우 자고 일어났지만 그래도 나가야만 했다. 무계획이 계획인 진정한 휴가의 첫날이니까.


몸이 무거워지면서 산책은커녕 스트레칭만 해도 배가 당기고 발에 쥐가 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더니 손가락이 닿으면 몸을 동그랗게 마는 공벌레처럼 웅크러진 느낌이 든다. 소화도 안 되고, 잠도 더 안 오는 것 같고.


그렇게 집에서 10 거리의 공원으로 나왔다. 남편 없이 운전하지 않고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이 그저 ‘걸으러나오기는 처음이라 찻길에서도 뒤뚱거리며 좌우를 살피느라 바빴다. 공원에 앉아 쉬었다가  10 정도  떨어진 스타벅스로 왔다. 고작 20 분의 외출이 이렇게 뿌듯할  있나? 너무 달아 혼자 한 잔은  먹지도 못할 바닐라 라떼를 시켜놓고  자리씩 꿰차고 앉은 사람들을 구경한다. 노트북을 가지고 나온 아이들,  곁의 엄마들,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까지. 나오길 잘했다. 뱃속에서 아기도 열심히 꼬물거리는  보니 아마 누워있을 때보다  흔들흔들 요람 같은가 싶기도 하고.


내일은 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볼까. 연말정산도 해야 하고 옷정리도 해야 하는데 내일도 산책이나 나서볼까.


4. 계절

올해 들어 지난 2주는 정말 봄이라도 온 기분이었다. 미세먼지도 낭낭하고 햇살도 꽤 따뜻했다. 출퇴근하기엔 좋은 날씨였지만 외출하기는 조금 부담스러웠던 날들.


이번주가 되자마자 누가 손바닥이라도 뒤집은 것처럼 갑자기 한파가 몰려왔다. 사실 한파보다 더 무서웠던 건 “한파가 몰려옵니다.”라고 연일 외치는 기상예보기는 했지만. 보일러는 하루종일 돌아가고,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두꺼운 패딩을 입고 길을 나섰다가 손가락이 얼기 직전만큼 차가워져서는 겨우 집에 돌아왔다.


2월이 되면 조금 더 봄기운이 완연해질까? 아기가 집에 오고 나면 이제 정말 봄이 되는 걸까? 올해 벚꽃은 아기와 함께 볼 수 있는 걸까? 여름도? 그리고 돌아오는 겨울과 연말은 정말 아장아장 금방이라도 걸으려고 하는 아기와 함께 맞이하게 되는 걸까? 올해는 어쩐지 온통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조금은 기대되고 조금은 떨리는 그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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