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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25. 2023

1월 23일 월요일

출산휴가 2주차 월요일기. 어느덧 수요일이 되었네요.

1. 한파

이렇게 추울 수가 없다. 새해 벽두부터 미세먼지가 기승이더니 설을 기점으로 갑자기 영하 18도라니. 지난주에 미세먼지가 난리여도 따뜻한 날씨만 믿고 부지런 떨며 아기 빨래를 해 둔 게 신의 한 수라 여겨질 정도로 이번주는 극악의 추위를 경험하고 있다.


어제저녁엔 5분 정도의 짧은 당근 거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뒤꽁무니에 한파의 여정이 뒤따라 집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옷을 한 겹 한 겹 벗어내는데 그 사이사이에 최강 한파, 중간 한파, 일반 추위, 서늘함이 켜켜이 쌓여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


설 연휴 내내 집정리에 친정 방문에 바쁘게 보내다 고작 하루의 자유가 생겼는데 결국 아침 일찍 백화점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고 커피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1월 말에 이런 강추위라니. 이러고 눈치 없이 꽃샘추위네 뭐네 하면서 2월에도 또 춥기만 해 봐라.


2. 당근 하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당근마켓에서 거래하는 행위를 ‘당근 하다.’라는 동사로 상대 판매자를 부르는 말로는 ’ 당근이세요?‘라는 명사로 표현된다는 문장을 읽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당근마켓이 갓 생겼을 뿐 아니라 중고거래와 관련된 영상 밈이 갓 생기기 시작하던 때여서 (예를 들면 주거래자는 양쪽 집안의 와이프인데 실제거래는 남편들이 만나 각자 전화통을 붙들고 거래를 진행하는 그런 영상들)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당근마켓으로 오고 가는지 체감하지 못했었다.


이번 연휴 내내 집을 비워내면서 집안 곳곳에 있던 미개봉 새 상품들. 세탁해 두고 결국 작아져 입지 못하는 운동복, 선물을 받긴 받았는데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결국 택만 제거한 채 걸어둔 티셔츠들을 싹 당근마켓에 올렸다. 어차피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는 집을 한시라도 빨리 비우겠다는 목적이 강했던 터라 만원에서 이만 원 사이로 올려두었더니 연휴 사이 꽤 많은 물건이 팔렸다. 옷이나 잡화야 금방 사고팔 수 있어 다행인데 작은 방을 가득 메운 시스템장이 가장 큰 걱정이자 복병이 되었다.


작은 방을 곧 태어날 아기방으로 사용하기로 하고는 설 연휴 내내 옷장을 닦고, 옷을 옮기고, 75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안 쓰는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인테리어를 하면서 새시도 바꿔두고 간접조명이 아닌 LED 조명을 달아둔 덕에 시스템장만 빠지면 금방 아기방을 세팅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연남동의 18평 신혼집에서부터 당산의 28평 아파트, 그리고 지금 집까지 늘 우리 이사트럭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시스템장을 그 누구도 덜컥 사가겠다 나서지 않았다. 가격을 깎아달라, 용달 비용 절반을 부담해 달라, 한 달 후 거래해 달라 등등 찜과 채팅은 늘어갔지만 원래 목표했던 설연휴 내에 판매하기는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짐들을 다시 장에 조금씩 쌓아두고는 작은 방문을 조금 닫아두었다. 당근이란 누가 더 조급하게 구냐에 따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라며 남편이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데, 난 이미 출산휴가 2주차가 다 지나가고 있는 걸? 당장 정리해야 하는 아기 물건이 집안 곳곳에서 채근 대고 있는 걸 외면할 수 없단다. 다음 주에는 꼭 아기방을 정리할 수 있기를! 쿨거래 원합니다!


3. 태동

어느덧 35주에 진입했다. 마음은 여전히 5주차 혹은 15주차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몸은 누가 봐도 당장 아기를 낳을 법한 만삭의 임산부. 2-3주 전까지만 해도 맞던 바지가 어느샌가 배꼽 아래로 흘러내려가 있다던가 혹은 가진 옷 중 가장 큰 사이즈의 니트를 입어도 배를 모두 가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아침저녁으로 태동도 훨씬 자주 그리고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아기의 몸도 많이 자랐는지 이제는 태동을 하는 순간마다 뱃가죽 위로 움직임이 보이기도 한다. 지난 검진에서 아기 몸무게가 2.5kg였으니 아마 이번주 검진에서는 거의 3kg에 육박할 것 같다.


만삭으로 갈수록 아기의 태동이 줄어든다고 해서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앞섰는데 그러기엔 연휴 내내 배가 너무 아파 몇 번이나 배를 쓸어내리며 조금만 천천히 움직여달라고 얘기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이제 출산까지 17일.


늘 아침 9시면 느껴지던 아가의 딸꾹질이 이젠 시도 때도 없이 느껴진다. 저녁에 누워야만 느껴지던 서라운드 태동도 이제 걷거나 앉아있어도 하루종일 느껴지기도 한다. 봄부터 겨울까지 꼬박 사계절의 임신이 곧 끝나려나보다.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잘 있다가 만나자. 건강하게만 나온다면야 뱃가죽이 찢어지는 이런 태동의 아픔 같은 건 버텨낼 수 있단다. 지난 8개월간 심장이 생기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보이고, 딸꾹질하고 발길질하는 모든 순간들이 경이로웠는데 마지막 보름의 생경한 아픔과 변화들쯤이야.


4. 외출과 가정방문

출산휴가 4주 동안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과 미리 잡아두었던 약속들을 성실히 지켜나가고 있다. 예정된 외출 일정도 더러 있긴 하지만 임신 중기에 남편 없이 나갔다가 몇 번 크게 당한 이후로는 거의 대부분의 약속에 동행하거나 혹은 친구들을 불러들여 집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내려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설 연휴 전에 잡혀있던 마지막 결혼식 일정과 호캉스, 그리고 가족 외식을 마치고 나니 이번 주 두 번의 외출이 남았다. 그중에서 오늘 잡혀있던 외출은 한파와 만삭으로 결국 가정방문으로 변경하고 간밤에 부랴부랴 컬리도 시켜뒀다. 한파가 오기 전 지난주 부지런히 했던 산책의 끝에는 늘 가진통이 따라붙었어서, 이번 주에는 살금살금 걷고 조심히 운전도 해가면서 마지막 자유를 누려보려고 한다.


그나저나 1월에 해야 하는 맘마존 꾸리기는 언제 하지. 홈캠도 사야 하고 아기 분유랑 기저귀도 미리 준비해둬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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