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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31. 2023

1월 30일 월요일

출산휴가 3주차 월요일기. 마침내 아기방 꾸미기를 시작했다.

1. 빨래

출산휴가에 들어오고 마음껏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나 큰 기쁨이었다. 주말 이틀 동안 청소에 빨래에 밀린 정리정돈까지 하다 보면 어쩐지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는데, 매일 1~2시간을 할애해 집안일을 해내고 나면 집도 깨끗하고 주말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얼마나 좋은가!


다양한 종류의 집안일을 즐기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단연 빨래다. 알레르기 비염을 달고 사는 나에게 빨래(그리고 먼지 청소)는 사실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랄까. 스타일러와 에어드레서가 앞다투어 출시되던 해에 엄마는 나에게 덜컥 에어드레서를 선물했다. 매일 빨래하느라 고생하지 말고 외투나 침구류를 바로바로 에어드레서에 돌리라는 의미였다. 에어드레서의 효과는 대단하다. 특히 베개와 인형류를 살균하고 나면 코막힘 없이 뽀송뽀송하게 잠들 수 있다.


요 몇 주 한파가 지속되면서 세탁실이 꽝꽝 얼어버린 데다가 구축 아파트 거주자의 숙명처럼 매일 아침 "수도관이 동파됩니다. X동 X호 라인 세탁기 사용을 중단하세요."같은 안내방송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겨울잠에 들어가는 곰이나 다람쥐처럼 미리미리 세탁해 둔 속옷과 양말을 끌어안고 그 한파기간을 버텨내야만 한다. 다행히 잠옷과 실내복 두 종류를 번갈아 입으며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그 불편함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아기방을 꾸미고 아기 빨래를 해내야 하는 출산휴가 기간에는 조금 쥐약이었다.


출산휴가에 들어온 첫 주, 한파 대신 미세먼지가 기승이었지만 언제 다시 '세탁 금지' 명령이 떨어질지 몰라 아기 손수건과 신생아 사이즈의 옷만 겨우 세탁해 두었다. 그 이후 한파로 한참 빨래를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묵혀뒀던 빨래통을 탈탈 털어 죄다 꺼내어 돌리는 중. 출산휴가가 시작되고 몸이 퍼지기 시작하니 배가 더 커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와서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쉽지 않아 졌지만 그래도 여전한 나의 큰 기쁨인 것을! 오늘은 이불빨래를 모두 마치고, 아기 침구와 담요류를 세탁할 예정. 내일은 또 어떤 날씨가 찾아올지 모르는 겨울의 출산준비는 이렇게나 바쁘다.


2. 외출

36주 2일이었던 지난주 금요일, 마침내 마지막으로 잡아두었던 외출일정을 마쳤다. 오랜만에 출근길에 올라 친구에게 물건도 전해주고, 처음 가보는 골목 안 빵집에서 빵도 든든하게 사서 대학 후배 집으로 향했다.


임신을 확인하고 거의 7개월 이상을 매일 운전했던 길이어서 큰 무리 없이 나갈 수 있기도 했고, 10년 이상 봐온 친구들이니 언제든지 바닥에 누워 배를 떵떵거리며 편히 쉴 수 있는 모임이기도 해서 마지막 일정에 겨우겨우 꾸겨 넣어둔 참이었다. 맛있게 먹고, 예상대로 중간중간 소파에 드러누워 22개월짜리 작은 친구와 말도 안 되는 장난도 쳐가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당연히 뻗었고.


남편 없이 외출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건 이른바 '안정기'였던 20주 언저리였는데, 남편 없이 친구들 좀 만날라치면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거나 저혈압이 오곤 했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마음껏 산책하려던 욕심이 만든 불편함들이긴 했지만, 나만큼이나 나의 체력저하를 명확히 알고 있는 남편 없이 나가려니 조금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임신 후기에 들어서면서 결국 여러 이유로 친구들은 계속 우리 집으로 와주었다. 나야 편하고 즐거웠지만 주차대란과 이어지는 한파에 이 먼 곳까지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게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이른바 마지막 솔로 외출 일정을 마치고, 남편과 부부동반 모임과 친한 친구 모임을 마쳤다. 그렇게 외출을 마무리할 줄 알았는데.


월요일이 되자마자 갑자기 따분함과 외로움이 몰려와 출근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내적 눈물을 흘리고 어떤 하루를 보내야 하나 생각하던 참에 뭐 하냐며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쏜살같이 가스불과 세탁기를 멈추고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나란 사람, 육아 어떻게 잘할 수 있는 걸까. 그 길로 왕복 5만 원의 택시비를 들여 3시간 남짓의 멋진 나들이를 마치고 풀려가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고 남편과 두둑하게 저녁 챙겨 먹자마자 잠자리에서 가진통과 씨름. 외출하고 돌아오니 마음의 환기는 확실히 컸다. 물론 이제 몸이 무거워도 너무 무거워져서 모든 관절이 팅팅 붓긴 했지만.


출산까지 앞으로 10일. 어떤 시간들을 보내야 아쉽지 않을까 매일 고민한다. 혹시 응급상황으로 이어질까 겁이 나 산책도 하지 못하고, 밤에 잠들기 어려울까 싶어 쉬이 커피를 들이키지도 못한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엔 여전히 비워져 있는 아기방과 구입하지 않고 미뤄둔 체크리스트가 발목을 잡기도 하고. 열흘 후의 인생이 기대가 되면서도 이제는 조금 무서운 것 같기도 하다. 멀리 유학가 있던 사랑하는 가족이 열흘 후에 완전 귀국하는 것 같은 기분. 딱 그 정도의 기분으로 맞이해 본다. 건강히 잘 있다가 와주렴.


3. 아기방 꾸미기

아기방을 꾸미면서 아니 꾸려나가면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역시나 소비 억제. 꾸민다는 표현이 아닌 꾸린다는 표현으로 정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물건 중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최대한 사용하고 과한 꾸밈이나 불필요한 심미주의에 심취해 이것저것 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가구류나 패브릭류같이 오래 같이 가야 하는 것들은 순간의 선택에 따라 몇 년은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하는 편.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한바탕 물려받았던 물건들을 지퍼백에서 모두 꺼내어 분류했다. 계절에 잘 맞지 않는 옷들도 있고, 생각보다 사용감이 많은 옷들도 있다. 그중 깔끔한 것들만 분류해 그 안에서도 또 절반을 덜어내 얼마 전 출산한 가정에 보내고, 또 12개월 이후에 입을 수 있는 옷들은 다시 지퍼백에 고이 잘 접어 넣어두었다. 그랬더니 이제야 6칸짜리 서랍장에 겨우 다 정리가 됐다. 고작 3키로의 새 생명을 맞이하는 데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정말로 필요한가 싶었다.


아기방으로 사용할 작은 방의 물건들을 비워내고, 엄마집과 집안 곳곳에 쌓아두었던 아기 물건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아기 침대를 조립하고, 아기 장난감들을 꺼내어 정리했다. 침대 커버를 벗겨내고 선물 받은 물건들의 용도를 확인해서 네임펜으로 하나하나 메모해두기도 했다. 지난 3년간 멈춰버린 여행 덕에 먼지가 소복히 쌓인 캐리어를 꺼내어 '출산 가방'도 싸두고, 당근마켓에 올릴만한 물건들은 부지런히 내다 팔고 있다.


시작은 아기방을 꾸리겠다는 다짐과 의지였겠지만 결국은 살림을 줄이고 생활을 최적화하는 작업. 80%만 채워서 살던 집을 이제 120% 채우되 정돈된 삶을 유지해야 하는 미션이 생겼다.


4. 식단

임신 기간 중 입덧을 했던 초반 3~4달을 제외하고는 큰 무리 없이 모든 음식을 먹곤 했다. 소화가 안되기 시작한 임신 중기부터 양을 줄이고 자주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아기가 조금 내려가고 숨차는 증상이 완화되는 임신 후기부터는 일반적인 양으로 꼬박꼬박 식사를 챙겨 먹곤 했다. 얼마 전 막달검사 결과에서 철분 부족과 단백질 부족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기 머리나 배둘레는 늘 주수만큼 커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이나 우려가 없던 것도 사실이었다. 일주일에 200g씩 꼬박꼬박 때로는 230~250g씩도 자라 있었고 원장님도 늘 "아기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자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더 내려놓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막달에 내려진 약간의 시련은 바로 '식단 조절'인데 매 끼니 고기와 계란, 생선과 단백질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는 고단백 식단이 처방되었다.


정상 범주인 5점대에 한참 못 미치는 3.6 정도에서 단백질이 검출되고, 임신중독증까지 가지는 않았지만(혈압이 높거나 그 외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서) 발의 부종이 유난스러울 정도로 심해졌고 폐에 약간의 물이 차있다는 결과까지 있어 무조건 하루에 50g 이상의 단백질을 섭취하라는 최종 처방이 나오게 된 것이다. 늘 잘 챙겨 먹던 탄수화물이나 당류가 단백질의 섭취를 막고 있을 수 있으니 그 부분은 줄이고 고단백 식단으로 전면 교체해 14일을 유지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조금 막막해졌다.


임신하고 고기를 일부러 찾아먹기는 했지만 과할 정도로 찾아먹는 편은 아니었고, 오히려 과일을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있었던 터라 쉽지 않게 들렸다. 게다가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매일 먹어야 하는 계란 2알, 소고기 100g, 생선 한토막은 가당치도 않았다. 거기에 가급적 저염식을 유지하라니. 그래도 수술 후 예후가 나쁠 수 있다는 말에 그 길로 마트에 들러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까지 잔뜩 사서 나왔다.


오늘 아침엔 계란 2알 (18g), 닭가슴살 1덩이 (25g)을 먹었고 점심엔 돼지 목심 1덩이 (25g)를 먹었으니 하루 할당량 채우기 완료. 오늘부터는 물도 1.5l씩 꼬박꼬박 재서 먹어보기로. 막달에 식단 조절하는 임산부가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지만 이제 남은 건 열흘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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